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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주해

7,18-35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7,18-35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요한에게 전하였다. 그러자 요한은 자기 제자들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19 주님께 보내며,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
20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저희를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2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2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23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24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26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27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2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29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30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31 그러니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33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4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5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에 대해 한 말을 확인시켜 주려고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자신이 죽기 전에 제자들이 힘을 얻어, 목자 잃은 양들처럼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세상이 율법의 완성이신 메시아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을 감옥에 가두는 율법의 전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내가 메시아다’라고 대답하는 대신, 당신이 ‘오실 분’임을 보여 주는 기적들을 일으키십니다. 루카는 기적들을 강조함으로써 이사야가 예고한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서 예수님의 선구자 요한의 역할은 예수님 아래에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 대해 율법 교사와 바리사이들에게 그들과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늘 나라에서는 사람의 위대함이 율법에 따른 의로움이 아니라 믿음에 따라 정해진다는 사실을 가르치려는 뜻이었습니다. 요한은 여자에게서 태어난 가장 큰 예언자지만, 예수님은 동정녀에게서 난 가장 큰 예언자로서 신명기에 기록된 모세의 예언을 이루신 분이십니다. 요한은 새 시대를 알리지만, 여자에게서 태어난 역사 속의 인물인지라 새 시대에 속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낳으신 새 시대의 사람들이 그보다 큽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임은 하느님께서 의로우신 분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회개의 세례인 요한의 세례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7,18-23 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다

요한이 제자들을 보낸 것은 질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주님에 대해 선포한 내용을 확인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제자들의 마음을 예수님께 향하도록 돌려놓았습니다.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예수님의 기적들을 직접 보고 그분을 굳게 믿도록 하려고 한 것입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율법의 전형 요한

그리스도를 예고한 요한은, 영원한 빛이 없는 감옥에 갇혀 있듯이 믿지 않는 자들 가슴에 갇혀 있는 율법의 전형입니다. 형벌에 대한 두려움과 악의의 문이 그들의 마음을 꽁꽁 묶어 놓았습니다. 율법은 복음의 허락 없이는 거룩한 하늘의 섭리를 조금도 증언할 수 없습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예수님께서 ‘오실 분’임을 증거하는 기적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당신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당신의 위대하심을 깨닫고 당신의 권능과 능력에 감탄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들이 요한의 이름으로, 당신이 오실 그분이시냐고 여쭙니다. 그러자 보십시오. 우리 구원자의 처신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분은 대뜸 ‘내가 그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당신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들 스스로 깨달아 알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들이 든든한 바탕 위에서 믿음을 받아들이고, 당신께서 하신 일들을 직접 목격하여 알게 된 지식을 가지고, 자신들을 보낸 이에게 돌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하고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전능한 말과 손길로 죽은 자를 일으켰다는 말을 들었다. 너희는 내 곁에 있으면서, ’옛날 거룩한 예언자들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걷고,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듣고, 죽은 이들이 일어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때가 되면 이 모든 일이 내 손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복된 예언자들이 예고하였다. 나는 그 옛 예언을 이루었고 너희는 그것을 목격하였다. 돌아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대로, 여러 시대에 복된 예언자들이 예고한 일들이 나의 힘과 능력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여라.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예수님의 치유 기적을 예고한 이사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고향인 이름난 지방으로 오시자마자 기적을 일으키고 가르치신 것이었습니다. 이는 오래전에 예고된 일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여러 가지 놀라운 일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다리저는 이들을 걷게 하고, 눈먼 이들을 보게 하며, 말 못하는 이를 말하게 하시는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이사 35,5). 이어서 그는 다른 놀라운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이사 35,6). 그분께서 오시고서야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유대인과 이교인 반박』)

 

7,24-28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증언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늘 나라의 큰사랑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실행하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 같은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그들보다 훌륭하며 율법을 따르는 이들의 영광은 복음에 따라 사는 이들의 영광보다 훨씬 못하다는 사실을 입증하십니다. 그래서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가장 큰 인물인 복된 세례자를 예로 드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율법에 따른 의로움에서 그보다 큰사람은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작고 요한의 그릇에 못 미치며 율법에 따른 의로움에서 그보다 못한 사람이 그보다 크다고 하십니다. 율법의 의로움으로 따지면 작지만, 하느님 나라에서, 믿음에서, 그리고 그 믿음에 따른 영광에서는 요한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믿음을 받아들인 이에게 율법을 능가하는 영광의 관을 씌워 줍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복된 세례자를 율법의 의로움에서 가장 뛰어나며 누구보다 칭찬할 만한 인물로 우리 앞에 세우십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가 그보다 크다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하느님 나라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총이며, 바로 그 믿음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온갖 축복과 선물을 받을 자격을 인정받았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모든 죄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을 나누고 하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여자에게서 태어난 가장 위대한 예언자 요한과 동정녀에게서 나신 가장 위대하신 분 예수님

그분은, 모세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신명 18,15.,18)이라 말하고 누구든지 그 예언자보다 큰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예언자시라면 어떻게 요한이 모든 예언자보다 큰 인물일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리스도를 예언자로 보지 않습니까? 여기서 저는 두 가지를 주장하고 싶습니다. 주님은 모든 예언자의 ‘예언자’시고, 요한은 누구보다도 큰사람이지만 동정녀가 아니라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에서 그렇다고 말입니다. 자기와 태생 조건이 같은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그가 가장 큰사람이지요. 그러나 본성이 다른 분과 인간을 비교할 수 없지요. 요한을 하느님의 아드님과 나란히 견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요한은 천사보다 낮은 존재로 보아야 합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

스는 성인이요 예언자다. 사실 예언자보다 더 존귀한 자다. 그는 내가 오리라고 미리 말했을 뿐 아니라 가까이에서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고 한 사람이다. 예언자가 그를 두고 내 길을 준비하러 나에 앞서 올 사람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내가 증언하노니,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 가운데 그보다 큰사람이 없다. 그러나 율법에 따른 삶에서 가장 작은 이,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도 그보다 크다. 복된 요한은 그에 앞서 태어난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여자에게서 태어났지만, 믿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지혜로운 복음사가의 말대로 더 이상 여인의 자식이라 불리지 않고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7,29-30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받아들인 사람들과 거부한 자들

 

세례로 하느님께서 의로우심이 드러나다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것은 세례를 통해 드러나지만, “너 말해 보아라. 네가 옳다는 것이 밝혀지도록”(이사 43,26)이라고 쓰여 있듯이, 사람들은 죄를 고백함으로써 의롭게 됩니다. 완고하여 하느님의 선물을 거절하지 않고 의로움으로 받아들여야 사람이 의롭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의로우시어 의로운 일들을 사랑하시니 올곧은 이는 그분의 얼굴을 뵙게 되리라”(시편 11,7)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쓸모없는 자와 죄인들이 아니라 의롭고 세례로 죄를 벗은 이들에게 선물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의롭게 되도록 주님을 의로운 분으로 알아 모십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7,31-35 하느님의 계획을 거절한 자들에 대한 심판

 

이 세대 사람들인 유대인 지도자들

“불행하여라, 좋은 것을 나쁘다 하고 나쁜 것을 좋다 하는 자들! 어둠을 빛으로 만들고 빛을 어둠으로 만드는 자들! 쓴 것을 단 것으로 만들고 단 것을 쓴 것으로 만드는 자들!”(이사 5,20). 이 말은 예언자가 우리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인들, 특히 그들의 지도자인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바로 이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두고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라고 하셨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그리스도가 신랑인 혼인 잔치

혼인 서약을 하는 자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서약이 행해지는 혼인 잔치에서 노래하고 춤춥니다. 우리가 서약을 축하할 때는 교회가 그리스도와 하나 될 때입니다. 요한은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요한 3,29)라고 합니다. 이 혼인 때 우리가 춤을 추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임금이자 예언자인 다윗도 계약 궤 앞에서 노래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그는 자기 핏줄인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신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성령 안에서 보고 기쁨에 겨워 춤을 추었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그곳에 해를 위하여 천막을 쳐 주시니 해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 같고”(시편 19,5). 그가 어떤 예언자보다 크게 노래한 것은 그들보다 더 크게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으로 그는 그보다 나중에 혼인 잔치에 오는 이들을 하나로 만듭니다. 그는 여느 때보다 훨씬 매혹적인 방식으로 자기의 서약에 우리를 초대하고, 그분의 혼인 잔치에 앞서 계약 궤 앞에서 춤을 춤으로써, 우리가 다른 서약이 이루어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춤을 춘 것은 예언자 다윗이었습니다. (토리노의 막시무스 『설교집』)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주님은 이 모든 말씀 끝에 참으로 필요한 한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지혜의 자녀가 누구냐고요? ‘지혜의 아들들은 의인의 무리다’(집회 4,11)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서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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