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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주해

7,36-50 바리사이와 식사하시고 죄 많은 여인을 용서하시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7,36-50 바리사이와 식사하시고 죄 많은 여인을 용서하시다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 하늘의 일을 하시고자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십니다. 마태오 복음에도 향유를 붓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마태오 복음서에서 시몬은 바리사이가 아니라 나병 환자입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은 교회를 나타냅니다. 회당을 나타내는 바리사이 시몬의 집으로 교회가 왔습니다.

많이 용서받아서 많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죄 많은 여인이 그랬듯이,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부어 바를 수 있습니다. 여인의 행동은, 그가 예수님을 가장 사악한 죄인까지도 용서하러 오신 하느님의 예언자로 반김을 나타냅니다. 교회는 이 여인처럼 믿음으로 예수님께 응답합니다. 그분은 장차 염소와 양을 갈라놓으실 심판자시기 때문입니다. 죄 많은 여인은 예수님께서 예언자이심을 알아보지만 바리사이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 여인은 믿는 사람이지만 바리사이는 믿는 이가 아닙니다.

각기 유대인과 이민족들을 나타내는 두 채무자의 비유에서 사랑 문제가 처음 거론됩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메시아임을 알지 못한 시몬이나 다른 바리사이들과 달리, 큰 빚을 탕감받은 여인은 큰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더 많이 사랑한 것은 더 많이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의 바탕에는 하느님의 은혜로운 계획과 예수님에 대한 여인의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입니다.

 

7,36 루카의 인물과 장소와 시간 배치

 

하늘의 일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위해 밥상에 차려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육신으로 하늘의 일을 하시기 위해 바리사이의 초대에 응하셨습니다. (페트루스 크리솔로구스 『설교집』)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의 차이

마태오는 이 여자가 그리스도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고 기록하고, 그 여자를 죄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루카는 한 죄인이 그리스도의 발에 기름을 부어 발랐다고 합니다. 복음사가들이 틀린 내용을 쓴 것이 아니라면, 두 여자를 한 사람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선행이라는 향기와 의로운 행실이라는 기름을 그리스도의 머리에 부은 이 여자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7,37-38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닦고 입 맞추고 기름을 바르다

 

교회인 여인과 회당인 바리사이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이 여자는 교회입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 곧 회당에 오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분께서 그곳, 유대인들의 파스카 축제 자리에서 당신 수난의 신비들을 세우셨고, 당신의 몸과 피로 이루어지는 성사를 드러내셨으며, 우리 구원의 비밀을 보여 주셨다는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여자는 문지기 같은 율법 교사들을 무시했습니다. 여자는 논쟁의 문을 부수었으며 잘난 체하는 바리사이 무리를 경멸했습니다. 열의에 찬 여자는 율법의 잔치가 벌어지는 커다란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여자는 그리스도께서 달콤한 술잔과 사랑의 잔치 자리에서 넘겨지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페트루스 크리솔로구스 『설교집』)

 

기름부음은 큰 사랑을 드러낸다

그리스도의 발에 기름이라도 발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시몬은 아직 그분께 기름을 발라 드리지 않았는데, 여자는 향유를 발라 드리니 복된 사람입니다. 교회 말고는 누구도 그런 향유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에는 서로 다른 향기를 품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이 모여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몸소 죄인의 모습을 취하셨으니, 교회가 창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주님의 가르침을 나타내는 상징들

그 여자는 아직 말씀과 친교에 들지 못했습니다. 아직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자기에게 있는 가장 값진 물건인 향유로 주님께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런 다음 머리의 화관, 곧 머리카락으로 주님 발을 향유로 닦아 드렸습니다. 여자는 주님 앞에서 회개의 눈물을 쏟았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가르침과 그분 고난의 상징입니다. 그분 발에 향기로운 기름을 부은 것은, 거룩한 가르침의 향기와 명성이 땅 끝까지 퍼지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시편 19,5)고 쓰여 있습니다. 향유에 젖은 주님의 발은 바로 사도들입니다. 그 향유에서 나는 달콤한 향은 그들이 성령을 받음을 예시합니다. 주님의 발은 복음을 전하고자 온 세상을 두루 다니는 사도들을 나타내는 표징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향유를 부은 여자처럼, 믿음으로 예수님께 응답하는 교회

여자는 선행을 하는 손으로 그분의 나라를 전하는 이들의 발을 잡고 있습니다. 여자는 그분께서 자기에게로 돌아오실 때까지, 사랑의 눈물로 그 발을 닦고, 찬양하는 입술로 입 맞추고, 자비의 향유를 붓습니다. 이는 그분께서 그 여자에게 돌아오시어, 유대 민족에게, 시몬에게, 바리사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리라는 뜻입니다.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분께서 당신 아버지의 위엄을 입고 오시어 염소와 양을 갈라놓는 목자처럼 불의한 자들과 의로운 이들을 가르실 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 들이지 않았다”(마태 25,42). 이 말씀은 다음 말씀과 짝을 이룹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이 여자는 그대가 ‘머리’에 해 드리지 않은 일을 발에 해 드렸습니다. 그대가 그대를 지으신 분께 해 드리지 않은 일을 여자는 지극히 비천한 이들에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가 많이 사랑했으므로 너의 많은 죄가 용서받았다.’ (페트루스 크리솔로구스 『설교집』)

 

7,39-40 바리사이가 여인의 행동을 오해하다

 

바리사이가 아니라 여인이 믿는 이였다

바리사이의 집에서 죄 많은 여자가 영광을 입습니다. 율법과 예언의 집에서 바리사이가 아니라 교회가 의로움을 인정받습니다. 바리사이 시몬은 믿지 않았지만 여자는 믿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아는 돌판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판에 새겨진 율법의 집입니다. 율법에는 은밀한 죄가 깨끗해지는 신비가 없습니다. 따라서 율법에서 모자랐던 것이 복음에서 완전하게 채워집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더러운 입술이 예수님 발에 입 맞추고 거룩해지다

우리 주님께서는 평범한 것들로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몰래 그분 옷자락을 만진 이가 치유를 받았다면, 공개 석상에서 당신 말씀으로 기적을 이루시는 것쯤이야 능히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더러운 입술이 그분 밭에 입을 맞추고 거룩해졌다면, 순결한 입술이 그분 입에 입을 맞추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죄 많은 여인은 그의 죄를 용서해 주러 온 발의 은총을 자신의 입맞춤으로 받았습니다. 그는 의사이신 분의 발을 향유로 위로해 드렸고, 주님께서는 그의 고통을 깨끗이 낫게 해 주셨습니다.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그분께서는 배를 채우려고 초대에 응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을 의롭게 만드시는 그분께서 죄 많은 여인의 회개를 위하여 당신 스스로 오셨던 것입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7,41-43 두 채무자의 비유

 

유대인과 다른 민족을 나타내는 두 채무자

두 채무자는 하늘의 채권자에게 빚을 진 유대 민족과 다른 민족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이 채권자에게 빚진 것은 물질의 부가 아니라 덕행의 부요함입니다. 진중함, 의로움을 닮은 모습, 고백의 음성 같은 것이 이 부요함을 결정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지금 지니고 있지 않다면 나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애써 노력해야 하늘의 채권자에게 진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습니다. “제 빚을 탕감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는 자는 불행합니다. 채무자인 우리가 애써 노력해야만 빚을 탕감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주님께서 모르셨다면, 죄의 용서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몸소 겪으신 매질과 십자가와 죽음과 매장에 대하여 우리가 하느님께 갚아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지 않았다면 나는 불행합니다! 감히 말하건데, 베드로는 되갚지 못했고 그래서 더욱 사랑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되갚지 못했습니다. 너무 많은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로마 11,35). 바오로 사도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님께 되갚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십자가로, 죽음을 죽음으로 갚는다 해도, 그분에게서, 그분에 의해, 그분을 통해 받은 모든 것을 어떻게 갚겠습니까? 우리의 빚은 사랑으로, 받은 바 선물은 자선으로, 부요함을 은혜로 갚아 드립시다. 많이 받은 자는 많이 사랑합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시몬을 이해시키고자 비유를 들려주시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속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시몬이 곧바로 대답합니다.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상냥한 말씀이 차가운 가슴을 파고들었고, 향기로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말씀을 듣기 전에는 속으로 비난하던 자가 말씀을 듣고 나서는 드러내 놓고 찬양했습니다. 겸손하고 부드러운 말은 원수마저도 복종시켜 경의를 표하게 합니다. 겸양은 가까운 친구들 사이뿐 아니라 자기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도 효력을 미칩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7,44-48 예수님께서 여자의 죄를 용서하시다

 

여자의 죄를 기적적으로 치유하시다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의사의 기쁨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의사이신 당신을 의심하는 바리사이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여자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분은 광장에서 표징을 행하셨고,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셔서는 밖에서 행하신 것보다 더 큰 표징을 일으키셨습니다. 밖에서는 병든 육신을 고쳐 주셨지만, 안에서는 병든 영혼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 밖에서는 라자로를 죽음에서 살려 내셨고, 안에서는 죄 많은 여자를 죽음에서 살려 내셨습니다. 영혼이 떠났던 육신에 살아 있는 영혼을 돌려주셨고, 죄 많은 여자 안에 살던 무거운 죄를 몰아내셨습니다. 그러나 눈먼 바리사이는, 눈앞에 벌어지는 기적으로도 모자라는지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놀라운 일들을 끝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그리스도께 입 맞추기

입맞춤은 사랑의 표시입니다. 복음서에서 주 예수님의 행적을 읽고 그분을 거룩한 사랑으로 기리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발에 입 맞춥니다. 경건한 입맞춤으로 주님의 발자취를 더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찬례의 입맞춤으로 그리스도께 입 맞춥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않으며, 아가를 부르며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입 맞추기를 소망합니다. 복된 마리아께서 그분의 모든 말씀에 귀를 기울이셨듯이, 교회는 복음서나 예언서가 낭독될 때 그 말씀에 귀 기울이고 모든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합니다. 교회만이 신부처럼 입을 맞춥니다. 입맞춤은 혼인 서약이자 혼인 생활의 특권입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교회가 작은 이들과 비천한 이들에게 기름 발라 주듯이 기름부음을 받으신 그리스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발을 씻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기름을 바르고, 향유를 부어드립니다. 교회는 상처 입은 이들을 돌보고 지친 이들을 어루만져 주고 은총의 향유로 적셔 주기도 합니다. 교회는 이 은총을 부유하고 힘 있는 이들에게만 아니라 비천한 이들에게도 부어 줍니다. 교회는 모든 이를 똑같이 대합니다. 모든 이를 품에 받아들이고 똑같이 어루만져 줍니다.

그분께서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이 바로 그분의 발입니다. 복음서의 여인은 바로 그 발을 닦아 드린 것입니다. 비천한 이들의 죄가 용서받을 때, 잘못이 지워질 때, 형벌이 면제될 때, 그 여자는 눈물로 그 발을 적십니다. 하느님 백성의 가장 작은 이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은 그 발에 입을 맞춥니다. 연약한 이들에게 온유하신 그분의 은혜를 느끼게 하는 사람은 이 발에 향유를 바르는 사람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이런 순교자들과 사도들 안에서 당신께서 영광스럽게 되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7,49-50 평안히 가거라

 

여자의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당신이 그 예언자임을 보여 주시다

그분은 빚이 많은 자와 적은 자를 모두 용서하고, 작은 이와 큰 이에게 모두 자비를 베푸시고자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선의를 입지 않은 이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자비가 어떤 것인지 보여 주는 한편, 그에 대한 보증으로 여인을 옥죄고 있는 많은 죄에서 그를 풀어 주셨습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이런 말씀이야말로 참으로 하느님다운 말씀입니다. 이는 지극히 높은 권위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죄지은 자는 벌을 받도록 율법이 정해 놓았지만, 하느님께 임명받지 않고서야 누가 감히 율법을 넘어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은 곧바로 여자를 자유롭게 해 주신 한편 바라사이와 함께 식탁에 앉았던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느님이신 말씀께서는 단지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며, 비록 사람이 되셨지만 사람의 한계를 훨씬 넘어선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거듭 용서하시다

첫 번째 용서는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로 이루어집니다. 두 번째 용서는 순교의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며, 세 번째 용서는 자선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구원자께서는 ‘네게 있는 것을 주어라. 보아라, 어를 위하여 모든 것이 깨끗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번째 용서는 우리에게 잘못한 형제들을 용서할 때 주어집니다. 주님이요 구원자께서는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4-15)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시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다섯 번째 용서는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할 때’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이켜 놓는 가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고 또 많은 죄를 덮어 줄 것입니다”(야고 5,20). 여섯 번째 용서는 넘치는 사랑을 통하여 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사도도 “사랑은 많은 죄를 덮어 줍니다”(1베드 4,8)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어렵고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참회를 통해 얻는 일곱 번째 용서도 있습니다. 죄인은 침상을 적시는 눈물로 자기 죄를 씻어 내며, 그에게는 “낮에도 밤에도 제 눈물이 저의 음식이 됩니다”(시편 42,4). (오리게네스 『레위기 강해』)

 

죄를 용서하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사랑이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선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죽음에 내줍니다. 사랑은 선합니다. 그래서 죄를 용서합니다. 우리 영혼을 “죽음처럼 강한” 사랑으로 옷 입힙시다. 죽음이 죄의 끝이듯이, 사랑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으니까요.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5-7). 자신의 선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남의 선을 추구하겠습니까? 세례의 물을 통한 죽음은 모든 죄를 묻으며, 온갖 허물을 용서할 만큼 강력합니다. 복음서의 여인은 이런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거룩한 순교자들의 죽음 또한 강력합니다. 그것은 이전의 모든 허물을 없애 주지요. 그런 죽음은 무엇에도 못지않은 사랑의 행위이므로, 순교자들의 고난과 맞먹는 죽음은 죄의 형벌을 없애 줄 만큼 강력합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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