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18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하느님 나라의 신비 1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2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3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4 많은 군중이 모이고 또 각 고을에서 온 사람들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5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6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 싹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 9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비유의 뜻을 묻자, 1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11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12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3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14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5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16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17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 루카는 몇몇 여자들이 재산을 내놓아 예수님과 열두 제자를 시중든 사실을 기록합니다. 사도들도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처럼 여자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분이시며, 세상이 생겨났을 때부터 토양을 경작하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씨가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뿌려져서 죽어야 합니다. 씨는 길바닥이 아니라 길 안, 곧 길이신 그리스도 안에 뿌려져야 합니다.
8,1-3 여자들이 예수님을 돕다
예수님의 본보기를 따르는 사도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거룩하게 살아가는 여인들을 데리고 다녔으며, 그 여자들이 자기들 재산으로 사도들의 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거든, 복음서를 읽고 사도들이 예수님의 본보기를 따라 그렇게 했음을 알라고 하십시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승의 노동』)
8,4-8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씨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진실로 모든 선한 것을 뿌리는 분이시여. 우리는 그분의 농지입니다. 영의 열매를 수확하는 일은 모두 그분에 의해 그분에게서 비롯합니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는 말씀으로 이를 알려 주셨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씨가 자라려면 먼저 썩어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함께 부활을 생각해 봅시다. 밤이 잠자고 낮이 일어납니다. 낮이 떠나고 밤이 돌아옵니다. 농작물을 살펴보고 파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봅시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갑니다. 그리고 땅에 씨를 뿌리지요. 씨들이 땅에 떨어져 시들고 껍질을 벗고 썩습니다. 주님의 위대한 섭리는 바로 그 주검을 다시 살리시어, 싹이 돋고 자라나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로마의 클레멘스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길이신 예수님 안에 뿌려진 씨앗
만일 우리가 ‘말씀’을 듣고 우리 땅에서 곧 싹이 돋았는데 완전히 자라 열매를 맺기 전에 말라 버린다면, 우리 땅은 ‘바위’라고 불릴 것입니다. 우리가 들은 말씀은 귀를 파고 들어가 깊이 뿌리를 내려 행실로 열매를 맺고 내일을 위한 씨앗을 그 안에 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땅에 뿌려진 씨앗은 자기가 지닌 가능성에 따라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재, 어떤 것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또한 우리가 맺는 열매에는 독보리나 가라지가 들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길가가 아니라, “나는 길이다”라고 하신 길 안에 뿌려지면 하늘의 새들이 열매나 가지를 쪼아 먹지 못합니다. (오리게네스 『창세기 강해』)
8,9-10 비유의 뜻
믿는 이들에게 드러난 신비
구원자의 말씀은 언제나 감추어져 있다고들 합니다. 복된 시편의 저자도 그분을 우리에게 드러내 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입을 열어 격언을, 예로부터 내려오는 금언들을 말하리라(시편 78,2). 그분께서 옛날에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보십시오. “많은 군중이 모이고 또 각 고을에서 온 사람들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늘 나라 신비를 알 자격이 없었으므로 그들에게는 말씀을 어둠 속에 감추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 나라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믿음을 품어 안을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에게는 허락되었습니다. 완전한 지혜이신 그분께서 우리에게 비유와 비밀스러운 말씀과 “현인들의 말씀과 수수께끼를 이해”하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비유란 눈에 보이는 사물에 관한 말이 아니라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적인 것의 표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유는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을 가리킵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을 방편으로 삼아, 마음에만 보이는 미묘한 것들을 아름답게 그려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8,11-15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하시다
선한 씨를 길에서 채 가는 악마
씨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길에 떨어진 씨들은 그 말씀을 들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어서 구원받지 못하도록 악마가 와서 그들의 마음에서 말씀을 채 갑니다. 길바닥에 떨어진 씨가 채여 가는 것은 땅이 굳어 있기 때문입니다. 길바닥은 많은 사람이 밟고 다니는 까닭에 어디나 단단하고 거칩니다. 어떤 씨앗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죽에 놓이게 되어 아무 새나 쉽게 채 갑니다. 마음이 굳어 있고 고집스러운, 즉 길바닥처럼 딱딱한 사람들은 거룩한 씨앗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거룩하고 신성한 훈계가 그들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그리하여 영광스런 덕행의 결실을 거두게 하는 ‘말씀’을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더러운 마귀들, 곧 사탄에게 어울리는 짓밟힌 길바닥으로 만들었습니다. 사탄이라는 자는 절대로 거룩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이들이여, 그대들의 열매 맺지 못하는 볼모의 가슴을 열고 거룩한 씨앗을 받아들이십시오. 잘 경작된 풍요로운 밭이 되어, 그대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일어나게 할 열매를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감사할 줄 모르는 영혼은 악으로 가는 큰길이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이는 한 탈렌트를 받고서 그것을 준 이의 선의를 우습게 본 사람처럼 감사할 줄 모르는 영혼의 모습입니다. 그 땅은 씨를 받아들이는 데 너무 굼떠서, 온갖 악으로 가는 큰길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 길에는 스승께서 밭 가는 사람처럼 오셔서 굳은 마음을 갈아엎고 씨를 뿌릴 장소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악한 자를, 씨를 쪼아 먹는 새로 묘사하셨습니다. 그분은 가슴속에 묻혀 있는 가르침을 악마가 억지로 캐내어 가져가는 젓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그분은 귓바퀴에 머물러 있는 복음의 음성을, 땅에 떨어져 아직 그 품에 묻히지 못한 곡식의 씨앗으로 묘사합니다. 새들에게는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 땅의 날개 아래 감추어진 씨를 캐어 내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혼란에 빠뜨리고 믿음을 잃게 하는 박해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서,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다.” 믿음이 입증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말씀에만 의존하고 그 신비를 헤아려 볼 마음을 먹지 않습니다. 그들의 신심에는 수액이 없고 뿌리도 없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들어와,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즐거워합니다. 복음의 신비를 가르치는 교사에게 기쁘게 배우고 그들을 칭찬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깊은 생각과 판단하는 마음 없이, 정화되지 않은 의지로 이 일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나오자마자 거룩한 가르침을 잊고 습관적인 생활로 돌아갑니다. 자신의 장래를 위하여 덕이 될 만한 그 무엇도 자기 안에 모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상황이 평온하고 시련이 없을 때도 그들은 좀처럼 신앙으로 살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어지럽고 비틀거리는 상태로 살아갑니다. 하물며 박해가 닥치고 진리의 원수들이 구원자의 교회를 공격할 때에는 그 싸움에 나서기는커녕 방패를 내던지고 도망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단단한 땅에는 말씀이 뿌리박지 못한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좋은 주님께서 당신의 자비를 보여 주셨습니다. 단단한 땅이 아직 일구어지지 않았지만 그분은 그 위에도 씨를 뿌리셨습니다. 이 땅은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라고 하며 돌아서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기적에 감동했지만 시험받을 때에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 유다 같은 사람들입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씨의 숨을 막는 세상 걱정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구원자께서 뿌리신 씨 가운데 영혼 안에 제대로 자리 잡은 씨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씨가 싹을 틔우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세상 걱정이 그것의 숨을 막고 쓸데없는 부분만 웃자라 말라 버립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말합니다. “줄기에 이삭이 패지 못하니 알곡이 생길 리 없다. 알곡이 생긴다 하여도 낯선 자들이 그것을 집어삼켜 버리리라”(호세 8,7). 우리 모두 끈기 있게 가시덤불을 제거하고 해로운 잡초를 뿌리 뽑는 능숙한 농부가 되어 깔끔하게 일군 밭고랑에 씨를 뿌려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확신을 가지고,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시편 126,6)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우거지고 잡초로 뒤덮인 땅에 씨를 뿌리는 사람은 두 가지를 잃습니다. 첫째는 씨를 잃고, 둘째는 수고한 보람을 잃습니다. 우리 안에서 씨가 잘 자라 꽃 피우게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세상 걱정과 재물을 모으게 만드는 괜한 염려를 마음에서 쫓아 버려야 하겠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재물 대신 자선의 신앙
자선과 신앙이 그대를 떠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날마다 죽음이 곁에 있음을 기억하고, 무덤이 벌써 그대를 가둔 것처럼 행동하십시오. 세상 일로 염려하지 마십시오. 세상 걱정과 부자 되려는 욕망은 좋은 씨의 숨을 막는 가시덤불입니다. (두미움의 파스카시우스 『그리스 교부들의 질문과 답변』)
좋은 씨가 내는 좋은 결실
이 좋은 씨는 감탄할 만합니다. 기름지고 잘 가꾸어진 땅에서는 백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가장 좋은 땅에서는 백 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하거니와, 그렇게 풍성한 결실을 보아 그 땅이 기름진 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한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가 하느님의 입이 되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민족들이 너희를 행복하다고 하리니 바로 너희가 기쁨의 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말라 3,12). 해로운 것을 모두 제거한 순결한 마음 밭에 떨어진 거룩한 말씀은 뿌리를 깊이 내리고 곡식 이삭 같은 싹을 냅니다. 그다음에는 건강한 잎을 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무르익게 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8,16-18 교리교육을 잘 들으라는 훈계
하느님 말씀은 등불과 같다
등불은 눈에 보이는 등불이 아니라 비유입니다.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동경 위에” 놓습니다. 집안의 그릇들은 영혼의 능력을, 침상은 몸을 나타냅니다. ‘들어오는 이들’은 선생의 가르침을 듣는 이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거룩한 교회를 “등경”이라고 표현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그것은 세상 만민을 비추고, 진리의 빛으로 집 안에 있는 이들을 밝히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거룩한 지식으로 채웁니다. (오리게네스 『루카 복음 주해 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