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루카 복음 주해

8,26-39 게라사인들 지방의 마귀 들린 사람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7|조회수1 목록 댓글 0
8,26-39 게라사인들 지방의 마귀 들린 사람


26 그들은 갈릴래아 맞은쪽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저어 갔다.
27 예수님께서 뭍에 내리시자, 마귀 들린 어떤 남자가 고을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는 오래전부터 옷을 입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집에 있지 않고 무덤에서 지냈다.
28 그가 예수님을 보고 고함을 지르고서 그분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말하였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께 청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29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그 더러운 영이 그를 여러 번 사로잡아, 그가 쇠사슬과 족쇄로 묶인 채 감시를 받았지만, 그는 그 묶은 것을 끊고 마귀에게 몰려 광야로 나가곤 하였다.
30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군대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에게 많은 마귀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31 마귀들은 예수님께 지하로 물러가라는 명령을 내리지 말아 달라고 청하였다.
32 마침 그 산에는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그래서 마귀들이 예수님께 그 속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33 마귀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34 돼지를 치던 이들이 그 일을 보고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35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나왔다.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들이 떨어져 나간 그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예수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36 그 일을 본 사람들은 마귀 들렸던 이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알려 주었다.
37 그러자 게라사인들의 지역 주민 전체가 예수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 주십사고 요청하였다. 그들이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 되돌아가셨다.
38 그때에 마귀들이 떨어져 나간 그 남자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를 돌려보내며 말씀하셨다.
39 “집으로 돌아가, 하느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을 다 이야기해 주어라.”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일을 온 고을에 두루 선포하였다.

▶ 마귀 들린 사람을 보지 못한 이들에게 이 기적 이야기는 낯선 이야기입니다. 벌거숭이 남자나 사슬, 광적인 행동, ‘지하’라는 말, 돼지들의 떼죽음 등, 이런 자세한 묘사는 사람을 점령한 마귀들의 잔인함을 잘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힘에 사로잡힌 이들을 해방시켜 주십니다. 마귀들이 예수님께 하는 말에서 교활함과 거만함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을 뵙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라고 고백하는 마귀 들린 자가 예수님에 대해 이단자들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 기막힌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 계획을 위하여 마귀에게 이름을 물으십니다. 그 사람을 마귀에게서 풀어 주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귀 들린 자가 무덤이라는 감옥에서 풀려나 회심하자 그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귀들은 사라졌고 두 번 다시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돼지들이 물에 빠져 죽은 뒤에 마귀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이야기는 그 궁금증에 아무 답도 주지 않는 한편, 다른 몇 가지 상황에 눈길을 돌리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에게 돼지들을 장악할 힘이 없음을 보여 주시고자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십니다. 마귀들이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돼지도 장악할 수 없다면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인간에게는 더더욱 아무런 힘을 미치지 못합니다.

 

8,26-27 벌거벗고 무덤에서 사는 마귀 들린 남자

 

마귀의 잔인함을 보여 주는 마귀 들린 사람

벌거숭이 몸으로 그는 죽은 자들의 무덤 사이를 헤맸습니다. 더없이 비참한 꼴로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귀가 얼마나 잔인하고 불결한 존재인지 보여 주는 증거였습니다. 마귀들인 사람을 사로잡으면 곧바로 그에게서 모든 축복을 빼앗고 맑은 정신을 거두어 가며 이성까지도 완전히 박탈해 재앙의 본보기로 만들어 버립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8,28-31 마귀들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겁내다

 

두려움과 오만이 담겨 있는 마귀들의 반응

게라사인들 지방의 마귀 들린 남자, 정확히 말하면 마귀 떼가 그리스도의 발치에 엎드려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께 청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이 말에 담긴 뻔뻔함과 오만 섞인 두려움을 눈여겨보십시오. 겁이 나서 외치는 말인데도 오만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입니까?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이는 원수의 오만함을 그대로 보여 주는 말입니다.

아울러, 모든 것을 능가하시는 그리스도의 무상한 위엄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저항할 수 없는 힘과 짝을 찾아볼 수 없는 권위를 지니신 그분께서는 단지 뜻하시는 것만으로 사탄을 궤멸시키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이단자들보다 마귀들이 예수님의 정체를 더 잘 안다

악마들도 이 이름의 참된 본질을 알고 있습니다. 이단자들에게 죄가 있음을 사도들의 설교가 아니라 마귀들의 입이 밝혀 줍니다. 마귀들은 자주 소리를 쳤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광이 있습니까?” 이 마지못한 고백에 담긴 진실은 누구에게나 복종할 것을 요구하고, 악마들은 그 이름의 능력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그 능력이 그들을 제압하여, 그들은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던 몸을 떠납니다. 그리스도의 본질을 알고서 그분께 합당한 경의를 바칩니다.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임을 당신께서 이루신 기적들과 당신의 이름으로 증명하십니다. 이단자여, 그대들은 주님의 정체를 고백한 마귀들의 말에서 과연 피조물의 이름과 양자 됨의 은혜를 찾아볼 수 있는가?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 『삼위일체론』)

 

구원 계획을 위해 예수님께서 마귀의 이름을 물으시다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에게 이름을 대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군대입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그에게 많은 마귀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과연 그것을 모르셔서, 우리들처럼 뭔가 놓친 것을 알아내려고 물으셨을까요?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물으신 것은 구원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수많은 마귀가 한 사람의 영혼을 점령하여 가련하고 더러운 광기를 심어 놓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뜻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마귀 들린 벌거숭이 남자는 다른 민족들을 나타낸다

마태오 복음은 게라사인들의 지방에서 마귀 들린 사람 둘과 예수님께서 마주쳤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루카는 마귀 들린 남자가 벌거벗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자기 본성과 덕이라는 덮개가 없는 사람은 누구나 벌거숭이입니다. 복음사가들이 왜 마귀 들린 사람 수를 다르게 기록하는지요? 마귀 들린 자의 수는 다르지만 신비는 동일합니다. 마귀 들린 사람은 악덕으로 뒤덮이고 벌거벗은 채로 오류에 노출되어 죄짓기 쉬운 다른 민족들의 표상입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8,32-33 마귀들을 쫓아내시다

 

돼지들 속으로 들어간 마귀들

게라사인들은 자기들끼리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므로 밖으로 나오거나 주님의 기적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돼지가 물에 빠져 죽자, 그들은 자기들 울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 벌을 받은 ‘군대’는 이 세상을 상징합니다. 주님께서는 마귀들에게 사람 대신 돼지 속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을 들으셨던 그분께서 산 위에서 사탄과 그의 핵심 세력인 군대와 전쟁을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자, 주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을 물에 빠져 죽게 하십니다. 이로써 마귀 들린 남자를 지켜 주시던 자비로우신 분의 능력이 드러났습니다. 마귀들은 그분께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지옥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고 애걸했습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마귀 들린 자는 돼지처럼 산다. 그래서 돼지가 그 마귀들을 물려받는다

사람들은 스스로 재앙을 부릅니다. 돼지처럼 살지 않는 사람은 악마가 결코 그를 점령하지 못합니다. 혹시 악마의 힘이 그에게 미쳐도, 그것은 그를 파멸시키는 힘이 아니라 시험하는 힘이 됩니다. 주님께서 오신 뒤 악마는 선한 사람을 더럽힐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변덕스런 자들만 골라서 파멸시키려고 합니다. 자기가 강한 자들 눈에는 하찮게 보이고 힘 있는 자들 손에는 파멸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자는 약한 사람들만 괴롭힙니다. 사람들은 “어째서 하느님은 악마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가?” 하고 묻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선한 사람들은 단련시키고 악한 사람들은 벌주기 위해서라오. 그것은 죄에 대한 벌이기 때문이오.’ 이는 율법에 따른 일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들에게 벌로 열병, 전율, 악령, 눈멂을 비롯한 온갖 재앙을 내리시니까요.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8,34-37 돼지 치던 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반응

 

마귀들은 우리도 돼지도 다스릴 힘이 없다

돼지 치던 이들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 배울 것이 또 있습니다. 사악한 마귀들은 제 세력권 안에 있는 자들에게 잔인하고 고약하게 굴고 상처를 입히고 배반합니다. 서둘러 돼지들로 하여금 비탈을 내리 달려 물에 빠져 죽게 한 것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청을 들어주신 것은, 일어난 일을 통하여 마귀들이 무자비하고 야만스러우며 부드러움이라고는 모르고 어떻게든 제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자들에게 해를 입힐 생각만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려는 뜻이었습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음란하고 추잡하고 음담패설을 즐기고 불순하고 혐오스러운 죄에 기꺼이 몸을 담그는 자가 있다면, 하느님께서는 그가 악마의 수중에 떨어지도록 두시어 지하로 떨어져 저주받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귀의 손에 떨어지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옳은 일을 행하는 데 게으르지 않으며, 영예로운 일을 갈망하고, 복음의 계명을 지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덕성스럽고 칭찬할 만한 삶의 방식을 따른다면, 우리에게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8,38-39 마귀 들렸던 남자의 반응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라고 쓰여 있습니다. 사람들이 파멸할 때는, 철학자도 회당의 지도자도 그들을 치유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만이 사람들의 죄를 없애실 수 있지만, 그들이 그분의 치유를 받아들일 경우에 한합니다. 그분은 원하지 않는 자들을 고쳐 주고 싶어 하지 않으시며, 게라시인들처럼, 당신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하는 나약한 자들은 금방 등지고 떠나십니다. 그들은 회당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자기네 마을에서 나와, 그분께 떠나 주십사고 청했습니다. 그분을 몹시 무서워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왜 치유받은 사람을 받아 주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셨을까요? 아마 그 일을 자랑거리로 삼지 않으시려고, 그리고 집이라는 것이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에 지나지 않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본보기를 보여 주시려고 그러셨을 것입니다. 그 남자가 마음으로 치유를 받아들였기에,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무덤을 떠나 영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셨습니다. 마음의 무덤이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사람이 하느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