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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주해

8,40-56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7|조회수1 목록 댓글 0
8,40-56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다


40 예수님께서 되돌아오시자 군중이 그분을 맞아들였다. 모두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41 그때에 야이로라는 사람이 왔는데 그는 회당장이었다. 그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자기 집에 가 주시기를 청하였다.
42 그에게 열두 살쯤 되는 외동딸이 있는데 그 아이가 죽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리로 가시는데 군중이 그분을 밀어 댔다.
43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의사들을 찾아다니느라 가산을 탕진하였지만, 아무도 그를 고쳐 주지 못하였다.
44 그가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자 즉시 하혈이 멎었다.
45 예수님께서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모두 자기는 아니라고 하는데, 베드로가 “스승님, 군중이 스승님을 에워싸 밀쳐 대고 있습니다.” 하였다.
4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다. 나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나는 안다.” 하고 말씀하셨다.
47 그 부인은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음을 알고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기가 무슨 까닭으로 예수님께 손을 대었으며, 또 어떻게 즉시 병이 나았는지 온 백성 앞에서 아뢰었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49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어떤 이가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스승님을 수고롭게 하지 마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50 예수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대답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아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51 그리고 그 집에 가셔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당신과 함께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
52 사람들이 모두 아이 때문에 울며 가슴을 치는데, 예수님께서는 “울지들 마라.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53 그들은 아이가 죽은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예수님을 비웃었다.
54 예수님께서는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아이야, 일어나라.”
55 그러자 아이의 영이 되돌아와서 아이가 즉시 일어섰다. 예수님께서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지시하셨다.
56 아이의 부모는 몹시 놀랐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 열두 살 된 소녀를 살리시고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여자를 고쳐 주심은 예수님께서 생명이요 부활이심을 그대로 입증합니다. 이 두 이야기에는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열두 살 된 소녀는 이제 막 여인으로 들어설 즈음에 죽음을 맞으려 하고, 열두 해 동안 하혈하는 여자는 앞의 여자 아이가 살아온 만큼 병을 앓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는 살려 주시고 다른 하나는 고쳐 주십니다. 하혈하는 여인이 숨어서 예수님 옷자락으로부터 치유를 받는 것은 그가 부정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숨기는 행위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나고, 여자의 숨은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연과 마귀 들림과 질병을 다스리는 권능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세 가지 기적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이라는 마지막 기적으로 이어집니다.

 

8,40-42 야이로의 딸이 죽어 가다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증거하는 두 가지 기적

유대인 회당장이 와서 구원자의 발 앞에 엎드려, 죽어 가는 딸을 살려 달라고 애원합니다. 아이는 목숨이 위태로웠습니다. 구원자께서는 그의 간청을 들으시고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초대한 사람 집으로 걸음을 서두르시며, 이제 거기서 일어날 일이 당신을 따르는 많은 이에게 유익이 되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이미 당신의 신비를 아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죄를 몸소 지시고, 죄와 그 결과로 우리에게 온 죽음을 함께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가는 도중에 고질병으로 고생하던 한 여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의사들도 속수무책으로 아무도 그 여자의 하혈을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자 즉시 하혈이 멈추었습니다. 그렇게 드러난 영광스러운 기적은 그리스도의 여정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사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열두 해

하혈하는 여자는 주님께서 회당장에게 ‘믿어라, 네 딸이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열두 살 된 소녀의 영혼을 그 몸에 다시 불러오실 수 있는 분이라면 자신의 열두 해 동안 앓고 있는 병을 물리쳐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께서 ‘믿기만 하여라. 네 딸은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여자는 다짐했습니다. ‘저분이 대가로 요구하시는 믿음을 나는 드릴 수 있어!’ 그분의 입에서 치유가 나왔고, 주님께서는 그 여자가 입으로 믿음을 고백할 것을 대가로 제시하셨습니다. 분명한 치유를 주시고 분명한 대가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 여자는 모든 사람이 듣는 자리에서 고백했지만, 그의 병이 숨겨져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눈먼 사람의 눈을 열어 주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을 미쳤다고 했고, 라자로를 살려 내셨을 때는 그 광경을 눈으로 보고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열두 살 된 소녀를 되살리신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열두 살 딘 아이 몸에 다시 생기가 흐르게 하실 수 있으셨던 분은 열두 해 동안 흐르던 피를 멈추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병을 고칠 수 있으셨던 분은 다른 병도 고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소녀를 죽음에서 되살려 내어, 온 지체를 활기차게 만드신 분께서 여인의 태도 고칠 수 있었습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8,43-48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다

 

야이로의 딸은 회당을 나타내고 여인은 교회를 나타낸다

민족들의 무리는 의사들에게 가산을 탕진한 여인과 같습니다. 민족들의 무리도 자연의 선물을 잃어버리고 생명의 유산을 낭비했습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부끄러워할 줄 알고, 경건히 믿고, 겸손하여 수줍어하는 것을 물려받았습니다. 여인은 수줍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고, 믿음으로 그분께 다가갔고, 경건한 마음으로 그분을 믿었고, 지혜로움으로 자기가 나았음을 알았습니다.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을 믿은 거룩한 백성은 자기들 죄를 부끄럽게 여겨 죄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와서 하느님을 믿었고, 주님께 간청함으로써 깊은 신심을 드러냈습니다. 지혜를 입은 그들은 자기들이 건강해졌음을 알았습니다. 여인이 뒤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은 이유는 “주 너희 하느님을 따르고 그분을 경외해야 한다”(신명 13,5)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회당장의 열두 살 된 딸이 죽어 가고 여인의 하혈이 열두 해 동안 계속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회당이 번창하는 동안은 교회가 고난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한쪽의 약함이 다른 쪽의 이득입니다. 유대인의 거부로 구원이 다른 민족들에게로 넘어갔습니다. 한쪽의 종말이 다른 쪽의 시작이며, 그 시작은 본성의 시작이 아니라 구원의 시작입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여자는 예수님의 신성을 증언하고 예수님은 여자의 믿음을 증언하시다

존재의 감추어진 자손이셔, 영광받으소서. 여인을 괴롭히던 숨겨진 고통이 당신의 치유를 세상에 선포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여자로 보이지 않는 당신의 신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당신의 치유를 통하여 아들의 시성이 알려졌고, 그 치유를 통하여 고통받는 여인의 믿음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여인이 그분을 알렸고, 또 그분과 함께 여인이 알려졌습니다. 진리가 진리를 선포하는 자와 함께 알려진 것입니다. 여인은 그분의 신성을 증언했고, 그분은 여인의 믿음을 증언하였습니다. 여인은 그 답으로 그분께 믿음을 쏟아부었고 주님께서는 그 보답의 결과로 여인에게 치유를 베푸셨습니다. 그분의 권능이 빛나며 하느님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함으로써 의사들이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이로써 큰 믿음은 치료술을 능가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표징들

“회당장의 집에서 어떤 이가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스승님을 수고롭게 하지 마십시오.’ 하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예수님께서 율법으로 예고하시고 복음서에서 완성하신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회당장의 집에 가신 주님께서는 몇 사람에게 임박한 부활을 목격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많은 이가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울지들 마라.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아이가 죽은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예수님을 비웃었다”고 합니다.

믿지 않는 자는 비웃습니다.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들의 죽음에 울지만, 부활을 믿는 이들은 죽음이 아니라 잠을 봅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주님의 거룩한 옷자락

그때 나약하고 수줍은 여인이

그분의 거룩한 옷자락에 손을 대자

곧바로 복된 치유가 일어났으니,

여러 해 동안 여인을 괴롭혀 온

하혈이 멈추며

여인의 뺨에서 창백함이 사라졌도다.

(프루텐티우스 『매일 찬가』)

 

예수님께서 여인의 태를 고쳐 주신 이유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나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나는 안다.” 많은 의사가 여인의 병을 고쳐 보려 했지만, 오직 한 분, 우리의 의사이신 주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의 옷자락 술이 여자의 몸에 닿으니 여자의 고통이 곧바로 뿌리째 뽑혔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인간의 실용적 지혜로 무장한 치료술이 침묵하는 곳에서 사람의 겉옷을 입은 신성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분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 세상에 내려오셨기에 사람이 그분의 힘을 훔쳐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표징들을 통하여 당신의 신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의 인성만을 믿는 믿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인성을 보여 주심으로써 당신이 낮은 존재임을 높은 존재들이 믿게 하셨고, 당신의 신성을 보여 주심으로써 당신이 높은 존재임을 낮은 존재들이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몸소 사람의 육신을 취하심으로써 사람이 신성을 얻을 수 있게 하시고, 당신의 신성을 보여 주심으로써 당신의 인성이 짓밟히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평안히 가라는 인사는 여인에게 주어진 승리의 관이다

치유받은 여인이 몰래 숨어 버렸다면, 주님께서는 그에게서 승리의 관을 빼앗아 버리셨을 것입니다. 감추어진 고뇌 속에서 밝게 빛난 신앙이 공개적으로 관을 쓰게 된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인에게 “평안히 가거라”하고 말씀하시며 그에게 우아한 관을 엮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그에게 주신 평안은 승리의 관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평안히 가라”고만 하시지 않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 관의 주님이 누군지 사람들이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 입에서 나온 ‘평안’이 여인의 믿음에 씌워 준 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여인의 건강을 회복시켜 준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면, 주님께서는 분명 그 믿음에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그분께서 이렇게 물으신 것은 손을 댄 사람이 누군지를 밝히려는 뜻이었습니다. 여자는 첫째는 그분 뒤에서 다가갔고, 둘째는 그분의 옷자락을 만짐으로써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그분을 공경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당신을 공경한 여자이니 어느 누구보다 영예롭게 해 주신 것은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8,49-56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다

 

아이 아버지를 위로하시다

회장당 집에서 온 심부름꾼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스승님을 수고롭게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죽은 딸이 다시 살아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생각조차 못하고 슬픔과 절망과 허탈에 빠져 넋을 잃은 아이 아버지를 보셨습니다. 불행한 사건은 굳건한 마음도 뒤흔들어 확신을 잃어버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돕고자, 따뜻한 위로의 말씀으로 그의 기운을 북돋아 주시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아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날 사람들에게 죽음은 잠이다

주님께서는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라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웃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아이가 죽은 줄 잘 아시면서도,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하늘의 기적을 보여 주기는커녕 죽은 아이를 죽지 않았다고 말하는 주님께 영광 돌려드리기를 줄곧 거절하는 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병든 자를 일으키는 것은 그리스도께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이가 죽었다고 알고 있는 것을 아시고, 그분은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잘못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본성이 생명이신 그분께 죽음이란 없습니다. 따라서 죽은 자의 부활을 굳게 소망하는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죽은 이를 가리켜 ‘잠자는 사람’이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 6,8)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그리스도께서 소녀를 일으키시다

죽은 아이가 누워 있는 집에 도착하신 주님께서는 거룩한 사도 셋과 아이의 부모만 방 안으로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기적을 일으키시는 방법은 실로 하느님께서 하실 만한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야, 일어나라.’ 그러자 아이의 영이 되돌아와서 아이가 즉시 일어섰다”고 합니다. 주님의 한마디 말씀의 능력과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명령의 위력을 보십시오. 죽음과 부패를 씻어 버리는 손끝에서 나오는 생명이여! 이것들이 바로 믿음의 열매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옛적에 모세는 그 손으로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지시하시다

여인이 치유를 받았을 때 주님께서는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시어, 여인의 치유를 모든 사람에게 알리셨습니다. 이 소녀의 경우에도 주님께서는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하시며, 아이가 죽은 줄로 알고 있던 구경꾼들에게 아이의 소생을 보여 주시고, 당신을 비웃던 자들을 믿는 사람으로 돌아서게 하셨습니다. 죽었던 아이가 되살아나는 것을 목격한 자들의 증언은 장차 일어날 주님의 부활을 예고하는 증언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본 이들은 결코 그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아이가 음식을 먹음으로써 되살아났음을 입증하다

회당장 딸의 주검 앞에서 사람들은 곡을 하고 악사들은 연주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다고 확실하게 믿었기에 장례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 한마디에 아이의 영이 되돌아와서, 누웠던 몸이 벌떡 일어났고 음식을 먹음으로써 되살아났음을 입증했습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교회는 회당장 딸처럼 일어나서 거룩한 음식을 먹는다

예수님께서는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아이를 치유하신 다음,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렇게 생명을 입증하여 유령이 아니라 아이가 실제로 되살아났음을 사람들이 믿게 하신 것입니다. 지혜이신 분께서 손을 잡아 주신 이들은 복됩니다. 저는 그 의로우신 분께서 제 손과 행동을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말씀께서 제 몸을 잡으시어 당신께 더욱 가까이 끌어 주시고, 사람을 속이는 영에게 등 돌리고 구원을 향하게 하시며, 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지시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십니다. 신성한 몸과 피로 거룩한 제단을 가득 채우신 ‘지혜’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잠언 9,5). 앞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과부의 아들을 살려 내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몇 사람만 목격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외아들을 잃은 과부 어머니가 너무나 절박한 고통을 받고 있었기에, 그 고통이 지속되는 것을 염려하신 주님께서 지체 없이 자비를 베푸신 것입니다. 교회는 과부의 아들을 통하여 즉시 믿게 되고 유대인은 비록 소수지만 회당장의 딸을 통해 믿게 됩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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