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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주해

9,28-36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7|조회수1 목록 댓글 0
9,28-36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28 이 말씀을 하시고 여드레쯤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29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30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32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33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34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35 이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36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 이 일이 일어난 여드렛날은 여드렛날에 이루어질 부활을 예시합니다. 주님과 함께 산에 오른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는 교회의 아들들입니다. 창차 하느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승리를 목격하고 믿음의 순수함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영광을 보게 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시나이 산 ‘바위 굴’의 두 증인인 기둥으로서 예수님과 제자들 곁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예언을 나타내며,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은 당신께서 예언자들의 주님이심을 알려 주기 위해 그들과 함께 계신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루카만이 모세와 엘리야가 나눈 거룩한 대화 내용을 기록합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신비, 곧 세상을 떠나실 일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잠결에 제자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인간의 무지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위한 초막을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습니다. 그들을 덮은 구름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그들을 적십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러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전에 아버지께서 영원토록 아드님과 함께하시리라는 아버지의 음성이 제자들에게 들립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라는 위대한 현현은 우리에게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는 삶의 신비를 보여 줍니다.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일들이 있지만 그분의 때가 올 것이고, 제자들이 다시 선포에 나서는 새날이 올 것입니다.

 

9,28-29 예수님의 모습이 달라지다

 

하느님 나라의 질서 : 수난 다음의 영광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곳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여기서 ‘하느님의 나라’는 장차 땅의 주민들에 나타나실 당신을 둘러싼 영광을 뜻합니다. 그분은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에 싸여 오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받아들인 이들을 그 놀라운 일의 목격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세 제자를 뽑아 산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놀랍도록 밝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바뀌어 옷마저 번개처럼 번쩍이고 빛처럼 반짝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 곁에 서서 머지않아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주시는 신비와 십자가 위에서의 고귀한 고통을 뜻합니다. 모세 율법과 거룩한 예언자들의 말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미리 보여 준 것 또한 사실입니다. 모세 율법은 예형과 그림자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보여 주었습니다. 거룩한 예언자들은 이와 다른 방식으로, 장차 때가 되면 그분께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 모두의 구원과 생명을 위해 나무 위에서 죽음을 당하시리라고 예고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그분과 함께 서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일종의 설명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과 예언을 경호원으로 거느리고 계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부활을 예시하는 여드렛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죽음을 맛보지 않았으며 부활의 영광을 목격할 자격이 있는 이들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여드레쯤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사가가 “이 말씀을 하시고 여드레쯤 되었을 때”라고 밝힌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는 이들은 부활 때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여드렛날에 일어났고, 많은 시편이 ‘제8도’로 부르도록 되어 있습니다(시편 6,1). 이는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당신께서 부활 때 당신의 약속을 새롭게 하시기 때문임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런데 마태오와 마르코는 그 일이 엿새 뒤에 있었다고 합니다. ‘엿새 뒤’는 육천 년 뒤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 보시기에는 천 년이 하루 같으니까요. 그리고 그 육천 년이 이미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보다는 엿새를 하나의 상징으로 이해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엿새 동안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시간을 통하여 사건들을 이해하고 세상과 사건들을 통해 시간을 이해합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교회의 아들들이다

세 사람만 선택되어 산으로 따라갔습니다. 순결한 믿음으로 삼위일체의 신비를 간직한 사람만이 부활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은 사람이었고, 요한은 주님께서 당신 모친을 맡긴 사람이었으며, 야고보는 첫 번째로 주교좌에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9,30-31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모세와 엘리야는 시나이 산의 두 증인이다

우리는 시나이 산에서 주님 앞에 서 있었던 두 증인을 내세웁니다. 모세는 “바위 굴” 안에 있었고, 엘리야도 바위 굴 안에 있은 적 있습니다. 주님의 모습이 거룩하게 변했을 때 타보르 산에 있던 그들은 주님의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머지않아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분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예루살렘의 키릴루스 『예비신자 교리교육』)

 

예언자들의 주님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 곁에 나타난 것은 그분께서 예언자들의 주님이심을 제자들이 알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산에서 거룩한 모습으로 변하셨고, 그래서 제자들은 그분께서 돌아가신 뒤에도 모습이 달라지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입고 계시던 옷도 변했습니다. 옷을 입고 있던 몸도 주님께서 다시 일으키시리라는 사실 또한 제자들이 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아무도 손 댈 수 없는 영광을 당신 몸에 입히신 분께서는 누구나 맛보는 죽음에서 그 몸을 다시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루카만이 모세와 엘리야가 나눈 이야기 내용을 언급한다

루카는 모세와 엘리야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그분과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그는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에 싸여 나타났으며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산에서 주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분의 수난과 부활에 대해 말한 모세와 엘리야는 주님 안에서 완성된 율법과 예언의 계시를 나타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에 싸여’ 나타났다고 복음사가는 표현합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관처럼 씌워 주실 총애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장차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질 일, 곧 그분의 떠나심을 이야기했다고 말합니다. 그분을 믿는 이들에게 구원자의 수난은 특별한 찬양의 대상입니다. 그분의 은총이 아니면 결코 구원받지 못함을 되새길 때마다, 위대하신 그분의 은총을 떠올리며 찬미하고 증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자 베다 『복음서 강해』)

 

9,32-35 베드로의 반응과 하늘에서 난 소리

 

제자들이 잠결에도 주님의 영광을 보다

제자들은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난 상태였지만, 베드로와 함께 있던 다른 제자들도 주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무한한 신성의 위엄은 우리 육신의 인식을 압도합니다. 육신의 눈이 날카롭다고 해도 태양의 빛살조차 정면으로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타락한 인간의 지체가 어찌 하느님의 영광을 견뎌 낼 수 있겠습니까? 악덕의 때를 모두 씻어 내어 깨끗하고 아름다워진 육신의 옷이 부활을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너무나 깊은 잠에 취해 있어서 잠에서 깨어난 뒤에야 부활의 밝은 빛을 보았을 것입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베드로의 때 이른 열성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필리 1,23). 부지런한 일꾼은 찬양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더욱 탄복한 베드로가 사랑하는 마음과 경건한 행실로 초박 셋을 짓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는 비록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는 했지만, 무분별한 생각이 아니라, 때 이른 열성에서, 경건의 열매를 쌓아 올려 거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의 무지는 그가 처한 조건에 기인하지만 그의 약속은 경건한 헌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인간의 조건은 필멸의 운명입니다. 유한한 육신이 하느님을 위한 초막을 지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하느님 나라가 왔다고 생각한 베드로

그때는 하늘의 섭리가 펼쳐지기 시작한 단계였고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세상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세상을 위해 고난당하시려는 목적에서 손 떼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분은 육신의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로 죽음을 무너뜨림으로써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제자들을 적시는 구름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을 덮은 것은 인간의 감정 같은 것으로 어두워지지 않고 오히려 비밀을 드러내는 거룩한 영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하느님의 말씀이 들릴 때 나타납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엘리야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고 모세도 하느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만이 볼 수 있는 거룩한 아드님을 가리킵니다. 그분을 주님으로 묘사하는 말씀이 들릴 때 그들은 뒤로 물러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구름은 빗물이 되어 우리를 적시거나 비바람을 쏟는 검은 구름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느님의 음성에서 비롯하는 믿음의 이슬로 사람의 마음을 적시는 빛나는 구름이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영원토록 공존하심을 확인해 주는 하느님의 음성

아버지의 목소리는 제자들에게 모세와 엘리야의 말을 듣지 말라고 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말씀을 듣는 것이 먼저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하러 오신 분입니다. 하늘의 음성은 그들에게 복음 진리의 빛이 구약의 모든 예형과 모호한 표징들보다 앞서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십자가의 순간이 가까워 오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운 계획에 따라,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의 믿음이 비틀거리지 않도록 그들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부활을 통해 주님의 인성이 하늘빛에 의해 들어 올려지리라는 것도 그들에게 계시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들려온 아버지의 음성은 아들이 당신의 신성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과 영원토록 공존하시는 분임을 거듭 확인해 줌으로써, 그분께서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이 스승의 죽음을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당신의 신성 안에서는 이미 아버지 하느님에 의해 영광을 누려 오셨지만, 돌아가신 뒤에는 곧 인간으로서 영광을 누리시리라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연약한 육신의 존재들인지라, 하느님 음성이 들리자 겁이 나서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습니다. 주님은 모든 일에 자애로운 주인이신 까닭에 말씀과 손길로 그들을 위로하며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존자 베다 『복음서 강해』)

 

9,36 제자들이 침묵을 지키다

 

바보처럼 보이지 않도록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 주님께서 분부하셨습니다.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힘이 내릴 때까지 기다려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사도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사람들의 혼란을 바로 잡는 한편 자신들의 영광을 위하여 사도들이 죽은 자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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