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16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1 그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11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13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14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16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
▶ 열두 사도가 교회 주교들의 활동을 예시합니다. 그러면 일흔두 제자는 사제들을 나타냅니다 .일부 초기 교부들에 따르면, 바르나바와 함께 소스테네스, 마티아, 타대오 등이 이 일흔두 명에 포함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일흔두 제자를 “이리 떼 가운데 양처럼” 보내신 것은 종말에 늑대와 새끼 양이 평화롭게 뒹굴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닐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이사 11,6)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이리 떼 가운데의 양인 그들은 살아남게 하실 것이며, 박해의 한가운데에서도 이리들로부터 그들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의존하므로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로 파견됩니다. 그들은 장사꾼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이들입니다. 평화를 비는 인사는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평화의 자녀들만이 그 인사를 받을 것입니다. 평화의 인사는 아버지의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 조금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러 갈 때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을에는 그들 밭에 묻은 먼지까지 털어 버림으로써,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소돔보다 더 무서운 응징을 받게 되리라는 표징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일흔두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티로와 시돈보다 혹독한 형벌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말하는 큰 영예를 얻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실 때, 그것은 그분의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제자들을 물리치는 것은 예수님과 그분의 아버지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말하는 것이 곧 복음이 능력입니다.
10,1-2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미래의 사제직을 나타내는 일흔두 제자
열둘이라는 사도의 수는 주교직의 시작을 명시합니다. 세상의 말씀을 전하라고 주님께서 파견하신 일흔두 베자는 사제직 가운데 낮은 직급으로 뽑힌 이들, 말하자면 오늘날의 평사제를 나타내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성직의 서열을 매길 때 열두 사도를 앞에 두고 일흔두 제자를 나중에 두는 것이 마땅합니다. 대사제의 몸 안에서 더 높은 지위에 앉을 이들이 구약의 대사제처럼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존자 베다 『성막과 제구』)
바르나바, 소스테네스, 마티아, 타대오 등이 일흔둘에 속하다
사도들의 이름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흔두 제자의 이름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바르나바가 확실히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사도행전과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도 그의 이름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소스테네스도 일흔두 제자 가운데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 코린토 교회에 편지를 쓴 사람입니다. 교회 전승은 유다 대신 사도로 뽑힌 마티아와 또 그와 함께 후보로 지명되었던 요셉 유스투스도 일흔두 제자에 속했다고 전합니다. 또 타대오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전합니다. 여러분은 구원자의 제자들이 일흔둘보다 더 많았으리라는 점을 알 것입니다. 부활하신 뒤에 케파가 그분을 가장 먼저 뵈었고, 이어서 열두 제자가 뵈었다고 바오로 사도는 이야기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나타나신 다음 한꺼번에 오백 명이나 되는 형제들에게 나타 나셨거니와, 그들 가운데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그가 이 서간을 쓸 때까지도 살아 있었다고 합니다.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10,3 이리 떼 가운데 양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는 제자들
주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뽑아 둘씩 짝을 이루어 당신에 앞서 보내셨습니다. 왜 둘씩 짝을 지어 보내셨을까요? 짐승들을 방주에 들일 때도 각기 정해진 수에 따라 그리고 부정한 짐승은 교회의 성사로 정결하게 하여 암수 짝을 이어 들여보냈습니다. 짐승들은 서로 적대하며 사으대를 잡아먹습니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 떼를 위해서라면 이리들을 겁낼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제자들을 이리 같은 세상의 먹이로가 아니라 은총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착한 목자의 이런 예지는 이리가 양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지켜 줍니다. 그분께서는 “늑대와 새끼 양이 함께 풀을 뜯고”라는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이리 떼 가운데로 양들을 보내셨습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그리스도를 목자로 둔 제자들은 이리 떼 가운데에서도 살아남는다
주님께서는 순진한 ‘양들’인 거룩한 사도들에게 제 발로 이리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십니다. 양이 이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평화밖에 모르는 사람이 잔인한 맹수를 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돕고 모든 악에서 구해 내리라. 내가 사나운 짐승들을 길들이리라. 이리들을 양으로, 박해하는 자들을 박해받는 이를 돕는 자로 바꿔 놓을 것이다. 이 일꾼들에게 잘못하는 자들을 거룩한 일의 동역자로 만들겠다. 내가 모든 일을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할터이니 그 누구도 내 뜻을 거스르지 못하리라’.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10,4-12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이들에게 이르시다
제자들은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의지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하고 구원으로 부르라고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돈주머니와 여행 보따리, 신발마저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이 고을에서 저 고을로 바삐 다녀야 할 몸입니다. 주님의 이 명은 거룩한 사도들이 생필품도 사용해서는 안 죈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발을 신었느냐 벗었느냐가 무슨 큰 문제이겠습니까? 다만 이렇게 명하심으로써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살아가는 일을 온전히 당신께 맡기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기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그분께서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시편 55,23)고 노래한 성인을 닮아야 했습니다. 그분은 당신 일꾼들에게 필요한 것을 넉넉히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장사꾼이 아닌 선포자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들씩 짝을 지어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그러셨듯이, 보수를 받지 말고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이 말씀은 목자이신 당신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는 한 그들이 어떤 해도 입지 않으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격려하시며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요한 13,20)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그들이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장사하는 사람으로 여겨질 것을 우려하여 돈을 지니지 말라고 이르십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모든 사람에게 평화의 인사를 하라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누가 평화의 아들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도 빼놓지 말고 이 평화를 전해,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평화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우리 탓이 아니니 우리의 평화를 잃지 않을까 염려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빌어 준 평화는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이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그 사람보다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른다면, 그와 우리에게 유익한 일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꾸짖음과 은총』)
사도의 임무가 방해받지 않도록 길에서 인사도 하지 마라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라는 말에 ‘길에서’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엘리사가 종에게 지팡이를 주면서 그것을 가져가 아이 얼굴 위에 놓으라고 시킬 때, 길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인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2열왕 4,29). 이는 길에서 누구와 이야기하느라고 자기 임무를 이행하는 일이 늦어지지 않도록 부활 선포의 직무를 서둘러 수행하라는 뜻입니다. 인사를 나누려는 마음까지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경건한 임무 수행에 방해가 되는 인사치레를 삼가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명이 떨어졌을 때는 당분간 인간의 도리를 무시해도 됩니다. 인사를 나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 더 좋은 일입니다. 하늘이 내리신 일을 방해하는 것이 곧 죄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정에 끌린 행위가 성스런 임무를 속이거나 방해하면, 그 임무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금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린 응징의 표징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마태 10,14). 이 말씀은 당신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을 응징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그들을 물리친 사람들에게 길에서 묻은 먼지까지 돌려줄 것입니다. 그 길을 지나는 이들이 그 길로 다시 돌아오리라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의로운 사람의 먼지를 돌려받았으므로, 회개하지 않는 한, 의인들의 응징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을 더럽힌 것은 그들의 진흙탕이 아니라 먼지였습니다. 심판 날에는 그 고을보다 소돔이 더욱 견디기 쉬울 것입니다. 그곳에 간 천사들은 소돔에서 표징을 보여주는 대신 소돔 자체를 창조의 표징으로 삼았습니다. ‘어떤 고을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곳을 떠나 다른 고을로 가거라. 한 곳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다른 곳으로 피하여라.’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당신 제자들에게만 하셨습니다. 그들은 소수였고 지그 막 새로운 소식을 전하기 시작한 단계였기 때문입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10,13-15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은 불행하다
배척당한 일흔두 제자
주님께서는 또, 율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 자들보다 복음을 따르면 안 된다고 판단한 자들이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10,16 그리스도론적 원칙에 따른 대리자
제자들에게 당신 말씀의 전달자라는 큰 영예를 내리시다
주님께서 거룩한 사도들에게 주신 큰 권한과 그들을 크게 칭찬하신 일, 또 최고의 영예를 내리시어 영광스럽게 해 주신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이 얼마나 큰 영예입니까?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존엄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런 하느님의 선물입니까? 비록 땅의 자식들인 사람이지만 그들에게 하느님 같은 영광을 입혀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 말씀을 맡기시며, 그들을 물리치거나 감히 거역하는 자들은 벌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거부당할 때, 바로 당신이 거부당하는 것임을 알려 주십니다. 그들을 물리치는 죄는 곧 그들을 보낸 당신을 물리치는 죄요, 당신을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를 물리치는 죄라고도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 둘레에 든든한 벽을 세워 안전한 보호망을 쳐주십니다. 이런 제자들이니 사람들이 마땅히 두려워하도록 그리고 그들이 결코 다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살펴 주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그리스도를 위하여 말하기
만유의 주님께서 복음의 능력을 당신 사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에 의해 우리 또한 진리, 곧 하느님 아드님의 가르침을 받았지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이레네우스 『이단 반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