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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주해

10,25-37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8|조회수0 목록 댓글 0
10,25-37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 율법 교사는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지만, 자신이 육화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만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율법의 길이 곧 생명의 길임을 확인해 줍니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은 두 날개, 곧 이 두 계명 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율법을 아는 것은, 거룩한 육화의 신비를 아는 것이며, 이는 곧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지닌 착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다. 형제나 친척만 아니라 낯선 사람들도 모두 우리의 이웃입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의 상처를 싸매 준 것으로 보아 이 사마리아인은 여러 가지 치료 도구를 지니고 다녔음이 분명합니다. 그가 돌아오는 다음 날은 주님의 날, 곧 부활의 날입니다. 그가 여관 주인에게 준 두 데나리온은 복음을 선포하는 성경이고, 여관 주인은 신비들을 관리하는 집사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율법 교사들은 초주검이 된 사람은 자기들이요, 이웃으로서 자비를 베푼 이는 예수님임을 깨닫기 전에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이웃으로 불리기를 바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이웃을 사랑하듯이 그분을 사랑합니다.

 

10,25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

 

육화의 신비

육화의 신비를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율법 교사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가 율법과 그 안에 감추어진 가르침의 뜻을 지정으로 안다면 지금 그대가 시험하려는 분이 누구신지 모를 리 없소. 그대는 그분을 당신께 다가오는 이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분으로 보지 않고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보고 있소. 모세는 그대에게 여러 가지로 임마누엘을 그려 보여 주었소. 그대는 희생 제물로 바쳐진 양. 그러나 당신의 피로 파괴자를 무찌르고 죽음을 무너뜨린 어린양에게서 그분을 보았소. 그대는 거룩한 법이 모셔진 계약 궤의 모양에서 그분을 보았소. 그분은 아버지의 말씀이시며, 본성에 따라 아들이신 그분은 계약 궤 안에 계시듯 당신의 거룩한 육신 안에 계셨소. 그대는 커룹들이 덮고 있는 성막 안 속죄판에서 그분을 보았소.’ 그분은 우리 죄가 용서되는 속죄판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인간으로서도, 지성적 존재이며 하늘의 거룩한 권능인 사람들에게 찬양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보좌를 그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10,26-28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가르침의 두 날개

율법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묻는 이에게 주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가르침이 새의 두 날개와 같은 이 두 계명, 곧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을 통하여 높이 들어 올려집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율법을 알면 주님의 육화를 알게 된다

이 대목은 율법 전문가를 자처하지만 법조문만 잘 알 뿐 그 정신은 모르는 자들의 정체를 드러내 줍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율법의 첫 줄부터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율법의 첫 계명을 가지고 곧바로 그 사실을 입증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는 말씀으로 아버지와 아들께서 함께 거룩한 육화의 신비를 알리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율법 교사에게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라고 하시자.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 자기 이웃이 누군지 모르는 그는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는 율법도 모릅니다. 율법이 진리를 선포할진대, ‘진리’를 모르는 자가 어떻게 율법을 알겠습니까?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10,29 누가 이웃인가?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이웃이다

주님은 율법을 비키고자 하여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줄 준비가 갖추어진 사람만이 예리코로 내려가던 사람의 이웃이었다고 가르치십니다. 비유의 끝에 가서 이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사제도 레위인도 아니었습니다. 율법 교사 자신이 대답했듯이,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 그의 이웃이었습니다. 구원자께서는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고 하십니다. (오리게네스 『루카 복음 강해』)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다

자기 형제 가족, 친척 또는 친족들을 이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던 사람 이야기를 통해 누가 우리의 이웃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 이웃이며, 우리는 아무도 해쳐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형제나 친척만 이웃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르는 사람에게는 나쁜 짓을 해도 괜찮은가요? 하느님께 벌 받을 생각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모두에게 이웃입니다. 한 분 아버님을 모셨으니까요. (히에로니무스 『시편 강해집』)

 

10,30-35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예리코는 이 세상의 표상이다

죄를 지은 아담은 낙원, 곧 “천상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이곳으로 추락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들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영원한 지복을 누리던 아담이 아니었습니다. 세속의 죄로 돌아서자 그는 강도들 가운데로 떨어졌습니다. 하늘의 명령에서 멀어져 죄에 쉽게 넘어가는 존재가 되지 않았더라면 아담은 강도들 가운데로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강도는 먼저 우리가 입은 영적 은총의 옷을 훔쳐 가고 그 뒤로도 계속 우리 몸에 상처를 입힙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을 더럽히지 않고 잘 지킨다면, 강도의 공격에 끄떡없을 것입니다. 아담처럼 먼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보호의 손길을 잃고, 믿음의 외투를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는 길을 가던 사마리아인이 상처를 싸매 주지 않았더라면 인류 전체가 타락하고 말았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던 것입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착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이다

그 비범한 사마리아인은 사제와 레위인이 패해 지나쳤던 이를 피해 가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그 이름의 뜻을 알면 좋게 여길 분파 사람들을 멀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이라는 단어에는 ‘지키는 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지키는 이’가 누구일까요? “소박한 이들을 지켜 주시는”(시편 116,6) 주님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겉으로 드러난 사마리아인이 있고 드러나지 않은 사마리아인이 있습니다. 그 사마리아인이 지금 내려가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셨다가 하늘로 올라가신 분, 하늘에 계시는 사람의 아들입니다. 그분께서는 자비의 은총으로 우리와 우리 친척을 받아 주시어 이웃이 되어 주셨습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우의적 해석

예리코로 내려가던 사람은 아담입니다. 예루살렘은 낙원이고 예리코는 세상이며 강도들은 원수의 권력입니다. 사제는 율법, 레위인은 예언서 그리고 사마리아인은 그리스도입니다. 상처들은 불복종이고, 노새는 주님의 몸, 원하는 자는 누구나 받아 주는 여관은 교회, 두 데나리온은 아버지와 아들, 여관 주인은 교회의 수장이고, 다시 오겠다는 사마리아인의 약속은 주님의 재림을 가리킵니다.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는 사마리아인이야말로 진정 ‘지키는 이’요, 율법과 예언서보다 가까운 이웃입니다.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자신이 그 사람의 이웃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1코린 11,1)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우리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강도 만난 사람을 가없이 여길 수 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상처를 싸매 주고 기름과 포도주를 발라 주고 노새에 태우고 그의 짐을 대신 져 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께서 그렇게 하라고 격려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라는 말씀은 율법 교사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기보다 우리와 모든 이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원토록 영광과 권능을 누리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오리게네스 『루카 복음 강해』)

 

의사에게는 치료제가 많다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 의사는 필요한 치료제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치료제입니다. 어떤 말씀은 상처를 싸매고 어떤 말씀은 기름을 바르고 또 어떤 말씀은 포도주를 붓습니다. 그분은 엄정한 규범으로 상처를 싸매시고, 죄의 용서로 기름을 바르시고, 포도주로 소독하듯 심판의 꾸짖음으로 상처를 소독하십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이튿날을 부활의 날

여기서 말하는 ‘이튿날’이 “이날은 주님께서 만드신 날”이라고 성경에 쓰인 주님 부활의 날입니다.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두 데나리온은 두 계약을 나타낸다

두 데나리온은 영원한 임금님의 모습이 드러나 있는 두 계약입니다. 그분께서 상처를 입은 값으로 우리가 치유되었습니다. 그 고귀한 피가 우리를 구원하여 마지막 죽음의 아픔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여관 주인은 신비들을 관리하는 집사다

상처 입은 사람을 돌보아 주는 여관 주인은 행복합니다. 예수님께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씀을 들은 사람은 행복합니다. 훌륭한 집사는 넉넉하게 씁니다. 자기가 받은 지식을 설교와 선간에 넘치게 담은 바오로 사도는 훌륭한 집사입니다. 그는 주님의 명령을 몸과 마음으로 무절제할 정도로 열렬히 따랐고, 그리하여 집사의 영적 훈계로 많은 사람을 깊은 슬픔에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는 자기 여관을 잘 운영하는 주인이었습니다. 그의 여관에서 나귀는 “제 주인이 놓아 준 구유를 알고”, 양 떼는 안전하게 보호받습니다. 그는 가축우리 밖에서 먹이를 찾아 울부짖는 이리들에게 양들이 습격받기 쉽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10,36-37 자비를 베푼 사람

 

우리 이웃이 되기 바라시는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강도를 만나 매 맞고 반죽음 상태로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도와준 이가 당신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언자는 “저는 그들이 제 이웃인 양, 형제인 양, 기꺼이 그렇게 하였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본디 신성은 우리의 인성보다 높고 우월하므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다른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은 당신의 선하심 때문이고, 우리가 서로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하느님의 선하심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상신을 온전히 누리도록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우리는 그분을 온전히 누리기 위하여 서로에게 자비를 베풉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교 교양』)

 

그리스도를 이웃으로 사랑하라

우리 상처를 보살펴 주는 이보다 더 가까운 이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분을 우리 주님으로 사랑하고 우리 이웃으로 사랑합시다. 몸의 지체들에게 머리만큼 가까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도 사랑합시다. 하나 된 몸 안에서 어려운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이들을 사랑합시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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