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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주해

12,13-21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8|조회수0 목록 댓글 0
12,13-21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 사람이 구해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불멸하는 우산이다. 예수님을 유산 분배의 중재인으로 불러서는 안 됩니다. 탐욕은 사람들을 갈라지게 하고 사랑은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합니다. 탐욕은 우상숭배의 한 형태입니다. 이 보편 원리가 선물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로 이어집니다. 그는 과연 교만하고 겁 많은 바리사이처럼, 선물 받은 것을 쌓아 두어 탐욕의 죄를 범할 것인가? 가난한 사람의 굶주린 배가 곳간보다 더 안전한 창고입니다.

이 부자는 하느님 사랑이 장차 올 세상에 필요한 유일한 준비물인 선한 행실이라는 습관을 낳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아는 이들은 준비 없이 최후를 맞아서는 안됩니다. 죽은 뒤에는 덕과 자비만이 우리를 따라옵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것이란 재물이 아니라 덕행을 사랑하는 것이며, 생명과 구원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12,13-14 유산 분쟁

 

구해야 할 것은 불멸하는 유산이다

이 단락은 주님을 고백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함을 일러 줍니다. 탐욕이 덕행을 그르치는 일이 자주 있기에, 주님께서는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개인으로 세웠단 말이냐?”고 하시며 탐욕의 죄를 멀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목적이 있어서 내려오신 주님께서는 재산 다툼을 해결해 주는 재판관이나 중재인이 되는 속된 일을 거절하십니다. 그분은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시고 상벌을 내리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무엇을 구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그것을 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크고 작은 일에 소리를 질러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아우가 꾸중을 들은 것은 지당합니다. 속된 일로 하늘 청지기를 성가시게 했으니까요. 사람은 모름지기 돈이 아니라 불멸하는 유산을 구해야 하지만, 형제 사이에 유산을 나눌 때는 공정한 재판관의 판결을 따를 것이 아니라 신심을 중재인으로 삼아야 합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탐욕은 갈라지게 하고 사랑은 하나 되게 한다

자기 형과 불화하여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청한 자의 말을 주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는 “스승님, 제 형더러 일러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일러 달라고 했나요?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말해 보아라, 사람아, 네가 유산을 나누어 받기를 바라는 것은 네가 속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누가 나를 너희의 유산 분배자로 세웠단 말이냐? 나는 흩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모으려고 왔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탐욕은 사람들을 갈라지게 하고 사랑은 하나 되게 합니다. 그런데 ‘탐욕을 경계함’이 ‘사랑으로 자신을 채움’이 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사랑을 자기 몫으로 돌려받은 우리는, 형 때문에 주님을 성가시게 한 아우처럼 우리 형제 문제로 그분을 성가시게 합니다. 하지만 탄원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그는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라고 했지만, 우리는 “스승님, 제 형더러 제 유산을 나누어 가지라고 일러 주십시오”하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12,15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탐욕은 우상숭배와 같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지한 채로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유익한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그분은 우리에게 탐욕은 악마의 함정이요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지혜로운 바오로 사도는 “탐욕은 우상숭배”(콜로 3,5)라고까지 합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막대기와 돌을 섬기는 자들의 더러움과 맞먹는 것이 바로 탐욕이기 때문입니다. 탐욕은 악한 영들의 올가미입니다. 그것으로 사람의 영혼을 옭아매어 지옥의 그물로 끌어내립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께서는, 삼가 조심하여 크고 작은 모든 “탐욕을 경계하고” 상대가 누구든지 속임수로 그의 재산을 훔치지 말라고 분명하게 이르십니다. 탐욕은 하느님과 인류가 다 싫어하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12,16-20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재물에 파묻혀 자선에 눈감은 자

엄청나게 많은 소출을 거둔 그 부자가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라고 걱정합니다. 그는 미래를 내다보지 않습니다. 눈을 들어 하느님을 바라보지도 않습니다. 마음을 위해 하늘의 보물을 얻는 것은 조금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그 마음이 보상으로 가져다줄 것에 대한 관심도 없습니다. 괴로워하는 이들을 동정하지도 않고, 그들의 아픔이 그의 연민을 자극하는 일도 없습니다.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우리는 그에게 말합니다. ‘이 부자야, 너에게는 곡식과 재물을 쌓아 둘 곳간이 있다. 그러나 네 수명은 어디 있느냐? 하느님의 명령으로 너의 명줄이 짧아졌다.’ 이렇게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가난한 이들의 굶주린 배는 곳간보다 안전한 창고

“재산은 사람의 ’목숨을 보장해 준다”(잠언 13,8)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어리석은 부자에게 그런 재산은 없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어 자기 목숨을 보장받지 않고 썩어 없어질 곡식을 쌓아 두는 데 바빴습니다. 네, 장차 그 앞에 서야 할 주님을 위하여 아무것도 내어놓지 않아 속절없이 멸망할 참이었는데도, 그는 썩어 없어질 곡식을 쌓아 두기만 했습니다. 최후의 심판 날에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마태 25,42)는 말을 들을 때 그는 눈길을 어디로 돌려야 할까요? 그는 사치스럽고 불필요한 잔치를 벌여 자기 영혼을 채우려 하며 가난한 이들의 굶주린 배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굶주린 배가 자신의 곳간보다 더 안전한 창고임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가 자기 곳간에 쌓아 둔 것들은 도둑이 당장이라도 훔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것들을 가난한 이들의 배에 쌓았더라면, 물론 이 세상에서 모두 소화되었겠지만, 하늘에서는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재산은 사람 목숨을 보장해”(잠언 13,8)줍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선행의 습관

악마는 우리가 힘껏 노력할 때조차 음모를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힘을 새로 가다듬어야 합니다. 기름진 밭과 좋은 기후 덕분에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면, 현재의 것들에 만족하여 “먹을 것이 많으니 먹고 마시며 즐기자”는 마음이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거룩한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을지 모릅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승의 삶은 짧고, 누구나 예고 없이 죽음을 맞이하니까요.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아는 사람은 준비 없이 최후를 맞아서는 안 됩니다. (대 레오 『설교집』)

 

죽은 자의 동반자

재물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쓸데없이 재물을 쌓아 둡니다. 그는 곳간이 가득 차자 누구를 위하여 그것들을 모아 두는지도 모르고(시편 39,7) 새로 수확한 곡식을 쌓아 둘 곳간을 증축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은 세상에 남고, 사는 동안 모은 재물은 유산으로 상속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들은 본래 우리 것이 아닙니다. 덕행만이 죽은 자의 동반자입니다. 자비만이 우리를 따라옵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늘 나라와 첫 번째 거처로 인도합니다. 하찮은 재물을 잘 활용하게 함으로써 죽은 자를 위해 영원한 거처를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명하십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루카 16,9).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12,21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지 못한 사람은 어리석은 부자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려면

사람의 생명이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으며 재물이 생명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님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야말로 복된 사람이요, 영광스런 희망을 지닌 사람입니다. 누가 그런 사람일까요? 재물이 아니라 덕을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루카 10,42)이지요. 그의 손으로 가난한 이들의 궁핍을 채워 주고,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없는 이들의 슬픔을 달래 주는 사람 말입니다. 그는 위에 있는 곳간에 재물을 모으고 하늘 창고에 보화를 쌓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덕행의 이자와 바르고 흠 없는 삶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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