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9 회개와 무화과나무의 비유 1 바로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5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6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
▶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재물을 피로 물들게 한 사건은, 자기 생일에 요한의 목을 벤 헤로데를 수치스럽게 하려고 빌라도가 저지른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다른 갈릴래아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희생 제사가 순결하지 못해서 살해당했다는 혐의는 있지만, 그들이 무슨 특별한 죄를 저질러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구원자로서 그들의 세계에 개입하시는 당신에 대해 알려 주십니다. 그분의 가르침에서 무화과나무는 하느님께서 구원하러 오신 인류 전체를 가리킵니다. 구약에서 포도밭과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은유로 자주 쓰입니다. 무화과나무를 베어 내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을 심는 것은, 다른 민족들이 하느님의 이스라엘에 편입됨을 암시합니다. 주인에게 중재하는 포도 재배인은 예수님은 또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한 초기의 사도들을 나타낸다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서 실현된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복음을 전하고, 세상의 파멸이 미루어지도록 중재하며 간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포도 재배인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 년째 되는 해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르기 위해 농부로 오시는, 그분의 육화가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13,1-5 갈릴래아 사람들의 피와 실로암 탑
헤로데 생일에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이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사건에 대하여 말씀드렸는데, 그날은 요한의 목이 잘린 헤로데의 생일잔칫날이었습니다. 헤로데가 불법으로 요한을 죽인 것을 안 빌라도가 사람을 보내 잔치 자리에 있던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헤로데를 해칠 수는 없기에 그에게 수치를 안겨 주고자 그의 생일잔치에 온 자들을 죽인 것입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주님을 구실로 다시 화해할 때까지 사이가 나빴지요. 빌라도가 제물을 사람의 피로 물들게 한 것은 로마 제국이 희생 제사를 금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빌라도는 그들이 법을 어기고 제사 드리는 것을 알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들을 죽였습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제물이 부정했다
빌라도에게 죽임을 당해 피로 제물을 물들인 갈릴래아 사람들을, 악마의 지배 아래 부정한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로 보는 상징적 해석이 있습니다. 배반자 유다가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의 피를 넘기기로 마음먹었듯이, 그런 자들의 기도는 죄가 됩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13,6-9 무화과나무의 비유
무화과나무는 회당을 나타낸다
주님께서 또 하나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포도 지배인에게 일렀다.” 이는 율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삼 년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 간 세 번의 시기를 가리킵니다. 그렇게 단련될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들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무화과나무는 회당의 표상입니다. 주인이 거기서 믿음의 열매를 보고자 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삼 년 동안 그들에게 구원자이신 당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무화과나무를 뽑아 버리려고 하시는 모습은 저 옛날 모세에게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탈출 32,10)고 말씀하시던 하느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말릴 구실을 주셨던 것입니다. 여기서도 그분은 포도 재배인에게 나무를 뽑아 버리라고 하십니다. 포도 재배인은 일 년만 더 기다렸다가 그때도 열매를 맺지 않으면 그때 뽑으시라고, 그렇게 자비를 베푸실 것을 간청하고 주인은 청을 들어줍니다. 하지만 그는 벌을 거두어 주십사는 청원 끝에 모세와 달리, “내 징벌의 날에 나는 그들의 죄를 징벌하겠다”(탈출 32,34)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우리는 유대인이 가라지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선택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온전한 밀도 아닙니다. 선택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세 번에 걸친 주님의 방문
주님께서는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에 대해서도 꼭 하실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간청합니다.
이 나무는 인류를 나타냅니다. 주님께서는 첫 해, 곧 족장 시대에 이 나무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이듬해에 해당하는 율법과 예언의 시대에도 찾아오셨습니다. 바야흐로 복음과 함께 세 번째 해가 밝았습니다. 아무래도 나무가 베이게 생겼는데 자비로운 이가 자비로운 이에게 청합니다. 그는 주인이 얼마나 자비로운 분인지 드러내려고 간청합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거름은 겸손을 뜻합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나무가 한쪽에는 열매를 맺고 다른 쪽에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오셔서 그것을 갈라놓으실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가 무슨 뜻이겠습니까? 한 집단에도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회당을 나타내는 무화과나무
우리의 구원자를 십자가에 못 박은 이스라엘은 마땅히 재앙에 떨어지고, 예루살렘은 함락되며, 그 주민들은 적의 칼에 학살당할 운명에 놓였습니다. 그들의 집은 불에 탈 것이고 하느님의 성전마저 무너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유대인의 회당에 빗대신 듯합니다. 성경은 유대인들을 포도나무나 올리브 나무 또는 숲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다른 민족들이라는 새 나무가 심기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는 이런 말과 같습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이 무화과나무가 있는 자리를 비우게. 그러면 다른 나무가 그 자리에 자라나든가 아니면 다른 나무를 심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른 민족들이 그 자리로 불려 가 이스라엘의 상속재산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백성, 낙원의 식물, 선하고 영예로운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 나무는 열매 맺는 법을 알고 있거니와, 그것은 영원불멸이신 하느님을 그림자와 예형만으로가 아니라 성령과 진리 안에서 순수하고 흔 없이 섬기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