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8-21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들 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19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21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
▶ 하느님 나라가 겨자씨에 비유되는 까닭은 씨앗이 뿌려져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모습이 믿음이 커 가는 것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겨자씨가 산을 옮길 수 있는 믿음에 비유됩니다. 하느님 나라가 겨자씨와 같다면, 믿음은 한 알의 겨자씨다. 그리스도의 겸손은 땅에 뿌려진 하찮은 씨앗처럼, 그리스도의 지고하심은 그분의 부활과 승천으로 표현됩니다. 제자들은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그들의 위선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은 반면, 군중은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예수님의 누룩을 먹어야 합니다. 그분의 가르침과 기적들은 하느님 나라가 작고 하찮아 보이고 감추어져 있지만, 이미 와 있음을 알려 주는 표징들입니다. 그리스도는 빵이시므로 그리스도의 교의는 누룩입니다. 교회는 이 그리스도의 누룩을 온 세상에 퍼뜨리며, 사탄을 이긴 위대한 해방이 이미 예수님 안에서 실현되었고, 그 승리의 전모가 언젠가는 완전하게 드러나리라고 선포합니다.
13,18-19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하느님 나라가 겨자씨와 같은 이유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습니다. 그 나라가 하늘의 말씀 한마디로 왔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는 들음으로써 받아들여지고 믿음으로 씨 뿌려집니다. 믿음을 통하여 뿌리내리고 희망으로 자랍니다. 그 나라는 신앙 고백으로 퍼져 나가며 덕행으로 넓어집니다. 그러면서 많은 가지로 뻗어 나갑니다. 그리고 영적 통찰력을 지닌 권능들인 하늘의 새들을 그 가지들로 부릅니다. 제 가지들을 그들의 아늑한 보금자리로 내주는 것입니다. (페트루스 크리솔로구스 『설교집』)
겨자씨와 같은 하느님 나라와 믿음
하느님 나라가 겨자씨와 같고 믿음이 겨자씨와 같다면, 믿음이 곧 하느님 나라요 하느님 나라가 곧 믿음인 것이 분명합니다. 믿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하느님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와 믿음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믿어라” 같은 말씀을 읽습니다. 믿음이 온전한 베드로는 사람들을 그 나라로 들어가게 해 주는 열쇠를 받았습니다(마태 16,19).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겨자씨 같은 예수님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겨자씨를,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던 거룩한 순교자들에 견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는 성경 말씀을 보아, 저는 겨자씨를 그리스도로 풀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씨앗처럼 겸손하셔서 인간으로 태어나셨고 하늘에 오르심으로써 나무처럼 커지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실 때는 씨앗이시고 부활하실 때는 나무이십니다. 시장하실 때는 씨앗이시고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실 때는 나무이십니다. 그분은 한편으로는 인간이 처한 조건의 메마름을 견디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신의 신성으로 풍성함을 베푸십니다. 매 맞고 조롱받고 모욕당하실 때 주님은 씨앗이고, 눈먼 이를 보게 하고 죽은 자를 일으키고 죄를 용서하실 때 주님은 나무이십니다. 복음서에서 그분은 당신을 씨앗으로 표현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토리노의 막시무스 『설교집』)
13,20-21 하느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우리 안에서 누룩처럼 적용하는 말씀
누룩은 조금만 넣어도 금세 반죽 전체에 퍼져 제 성질을 고루 전달합니다. 하느님 말씀도 우리 안에서 이처럼 작용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받아들이면, 말씀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게 만듭니다. 우리 머리와 가슴에 고루 배어 들어 우리를 영적으로 만듭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1테살 5,23). 만유의 하느님께서는 거룩한 말씀이 우리 지각의 깊은 속까지 쏟아부어졌음을 분명하게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이성적이며 거룩한 누룩을 마음에 받아들입니다. 이 값지고 거룩하고 순결한 누룩 덕분에 세속의 사악함에 물들지 않고 그리스도의 깨끗하고 거룩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교회 안에 숨어 계신 그리스도
그 밀알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영적 누룩이시니까요.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는 우리가 받은 덕에 활기를 불어넣는 누룩이라고 생각합니다. 밀가루 안의 누룩이 겉모양이 아니라 그 능력으로 밀가루를 능가하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선조들과 육신으로는 같지만 비교할 수 없는 신성으로 그들을 능가하십니다. 거룩한 교회는 복음서에서 여인의 모습으로 예시됩니다. 우리는 이 여인의 밀가루요, 여인은 하늘 지혜의 빛이 우리 영을 속속들이 모두 덮을 때까지 우리 마음속 내밀한 곳에 주 예수님을 숨겨 둡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그리스도의 교의가 누룩이다
밀가루 ‘서 말’은 육신. 영혼. 영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그 안에 사는 영의 진실입니다. 교회를 예시하는 여인이, “마음속에 감추어진”(1베드 3,4) 인격 전체가 부풀어 오르고 하늘 빵(요한 6,31)이 은총으로 나타날 때까지, 이 ‘서 말’을 영적 교의를 누룩으로 부르는 것은 옳습니다. 빵은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는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1코린 10,17)라고 합니다. 육의 욕망이 성령을 거스르지 않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이 육을 거스르지 않을 때(갈라 5,17) 발효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몸의 생실을 죽이면”(로마 8,13), 영혼은 하느님의 숨을 통해 생명의 숨을 얻었음을 알라, 세상의 속된 균들을 멀리합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누룩을 퍼뜨리는 교회
여자가 누룩을 가져간 것은 교회가 주님의 인자하심 덕분에 위로부터 사랑과 믿음의 기운을 받았음을 뜻합니다. 여자가 밀가루 서 말 속에 그것을 집어넣자, 반죽이 온통 부풀어 올랐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온 세상이 하늘 나라에 대한 사랑으로 타오를 날을 그리며, 소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에 복음을 퍼뜨림을 상징합니다. (존자 베다 『복음서 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