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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주해

14,1-24 안식일 치유, 식사에 초대받은 자의 예절, 혼인 잔치의 비유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9|조회수0 목록 댓글 0
14,1-24 안식일 치유, 식사에 초대받은 자의 예절, 혼인 잔치의 비유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2 마침 그분 앞에 수종을 앓는 사람이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셨다.
4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
5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6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15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그분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17 그리고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
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19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20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일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22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자,
23 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 예수님께서 한 지방 지도자로부터 안식일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분은 기적을 일으키시고, 바리사이인 집주인과 손님들에게 가르침을 베푸십니다. 안식일이 바리사이들이나 종교 지도자들과 논쟁을 하는 계기가 됩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영적 제물인 거룩하고 덕성스러운 삶으로 하느님께 자기를 바치는 것임을 그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식사에 초대받은 이들에게,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주시는 선물인 겸손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바리사이들에게 이 잔칫상에서 그들이 보여 준 것 같은 허영을 추구하지 말고 온유하고 겸손한 당신 삶을 본받으라고 권하십니다. 예수님은 교만한 자들과 겸손한 자들을 확실하게 구별하십니다. 하늘고 땅을 오르내릴 수 있는 야곱의 층계는 우리가 들어 올려지거나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인생 여정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버려진 이들을 식사에 초대하는 것, 그 자체가 복된 일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들은 되갚을 수 없고, 우리가 받는 보상은 가난한 이들이 의인들의 참된 안식일 식탁에 앉을 마지막 잔치 자리에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겸손은 메시아 시대의 특징이며, 죄 고백도 겸손의 특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받지 않은 사람의 말에 하느님 나라에 대해 알려 주는 비유로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이라는 거룩한 음식이 차려진 사랑의 잔치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음식을 먹도록 초대받은 사람들은 순결하여 흠 없는 이들입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잔치를 베푸는 사람은, 저녁에 어린양으로 바쳐지는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잔칫상을 마련하신 아버지 하느님이십니다. 파견된 종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면서 종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잔치에 오라는 초대는 그리스도 안에 모든 사람을 위한 하느님 나라의 선물이 준비되어 있음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이런 영광스런 선포 후에 따르는 비유는 영적인 것에 무관심하고 세상일에만 마음이 가 있어 잔치에 올 수 없다고 핑계 대는 세 부류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종이 돌아와 초대받은 이들이 거절했다고 보고하자 집주인은 그에게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눈멀고 다리저는 이들을 데려오라고 이르십니다. 이들은 기존 종교와 관계없는 유대인들을 나타냅니다. 종이 집주인에게 이들을 다 데려왔는데도 자리가 남아 있다고 하자 집주인은 그를 도성 밖, 곧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민족들에게로 보냅니다. 세상 모든 민족을 품으시려는 예수님의 바람이 다른 민족들을 부른 이 초대로 이루어졌습니다.

 

14,1-6 안식일 치유

 

치유, 식사, 관대한 손님 접대

먼저 그리스도께서는 수종 앓는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육체적으로 방탕한 생활이 그의 영혼을 억누르고 영의 빛을 꺼뜨렸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리스도께서는 겸손을 가르치십니다. 잔칫상에서 높은 자리에 앉으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부드러운 말로 가라앉히십니다. 거칠게 강요하는 대신 인간적으로 설득하시고, 이성으로 설득의 효과를 더 크게 하시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으로써 교만을 벌하셨지요. 그분은 더 나아가 여기에 인간성을 연관시키십니다. 가난하고 나약한 이들과 연관된 말일 때는, 주님의 표현이 조금 달라집니다. 관대한 손님 대접으로 상을 받게 될 사람들에게도 탐욕의 경향이 있습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바리사이들의 이익을 위하여

지위가 높은 한 바리사이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속셈을 아셨지만 초대에 응하여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그분은 초대받은 이들을 말씀과 기적으로 가르쳐 참된 베풂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셨고, 복음서를 통해 우리까지도 가르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들이 당신의 권능과 인간을 넘어서는 영광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될 것임을 아셨습니다. 그들은 그분께서 하느님이시자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우리와 같은 모습이시지만 당신의 본성을 바꾸시거나 하느님이시기를 그만두지 않으셨음을 믿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모르는 바리사이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임무를 이행하고자 초대받은 손님이 되셨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그분께서 안식일에 금지된 행위를 하여 율법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을까 지켜보았습니다.

율법에 따라 그대들의 일을 맡은 관리들은 안식일에도 정해진 희생 제물을 하느님께 바쳐 왔소. 성전에서 제물을 잡고 그에 따르는 모든 의식을 행해 왔소. 아무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고 법도 그에 대해 아무 말하지 않소. 안식일 법은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소. 그것은 하나의 예형이었소.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안식일을 합리적으로 지키는 것, 달콤한 영적 향기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우리의 임무요, 죄짓기를 그치고, 모든 덕행에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며 거룩하고 칭찬 들을 만한 삶을 하느님께 예물로 바치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율법은 안식일에 자비 베푸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쁜 뜻을 품고 침묵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몰인정과 파렴치를 설득력 있는 논리로 반박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안식일에 자비를 베푸는 일을 율법이 금한다면, 어째서 그대들은 우물에 빠진 이를 건져 내는 것입니까? 만유의 하느님께서는 친절을 멈추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분은 선하시며 당신 백성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14,7-14 혼인 잔치 자리의 첫째와 꼴찌

 

우리에게 겸손하고 온유하기를 권하시는 예수님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이는 도둑질하다 들켜서 훔친 물건을 도로 내어 놓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그것을 가질 자격이 없으므로 가지고 있던 것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윗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은 그 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의 자리여야 마땅한 자리를 남에게 양보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헛된 자만에 차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받아 마땅한 명예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는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 앉게’ 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남들보다 윗자리에 앉고 싶은 사람은 그 자리를 하늘의 명으로 얻을 것이요 하느님께서 주시는 명예로 관을 쓸 일입니다. 그는 마땅히 빛나는 덕행으로 다른 사람들을 앞서야 합니다. 덕행의 법칙은 뽐내지 않고 자기를 낮추는 마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가장 소중하게 여길 덕목으로 겸손을 꼽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성인의 길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겸손을 사랑하라’고 썼지요.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겸손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

겸손한 신앙인이 있고 교만한 신앙인이 있습니다. 교만한 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자신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온전히 바쳐진 순결함이 인도하는 곳은 틀림없이 더 높은 곳이지만,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입니다. 스스로 낮아지기만 하면 높이 오를 수 있는데, 어째서 높은 자리를 탐하여 높이 오르려고 합니까? 그대가 그대를 들어 높이면 하느님께서 그대를 끌어내리실 것입니다. 그대가 그대를 끌어내리면 하느님께서 그대를 들어 높이실 것입니다. 사람이 한마디도 보태거나 뺄 수 없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오르내리는 야곱의 층계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 질 것이다.” 우리가 만일 참된 겸손에 이르러 이승에서 자기를 낮춤으로써만 오를 수 있는 하늘 높은 곳에 닿고자 한다면, 선한 행실로써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야곱이 보았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그 신비한 층계를 세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르고 내린다 함은 우리가 자신을 높일 때 낮아지고 자신을 낮출 때 높아짐의 의미합니다. 그 층계는 이 세상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을 가리키며, 우리 마음이 겸손할 때 주님께서 그것을 하늘에 닿도록 세워 주십니다. 그 층계의 양쪽 장대는 우리의 영과 육이고, 그 두 장대 사이에 하느님께서 겸손과 수양 같은 여러 가로대를 마련해 주셨거니와, 우리는 그것들을 밟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해 위로 올라갑니다. (베네딕토 『구도 규칙』)

 

식사에 초대받은 가난한 이들

가난한 이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한 데 대한 백 배의 보상은 하느님께서 하시던 모든 일에서 쉬시고 거룩한 날로 삼으신 이렛날, 곧 나라의 때에 주어질 것입니다. 그날이야말로 의인들의 참된 안식일, 지상의 일을 하지 않아도 되며 하느님께서 차려 주신 온갖 맛난 음식으로 배불리 먹는 날입니다. (이레네우스 『이단 반박』)

 

14,15-24 혼인 잔치의 비유와 행복 선언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함께 식탁에 앉아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직 영적인 사람이 못 되어 그리스도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믿는 이들 가운데 하나도 아니었고 세례 받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여 받는 상이 육신과 관계된 것이라 생각한 듯합니다. 그들이 너무나도 마음이 무뎌 당신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지라, 그리스도께서는 비유를 들어 장차 그들을 위해 시작될 시대의 성격을 설명하셨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하늘 음식인 예수님 말씀

거룩한 ‘사랑’이야말로 숭고하며 구원의 힘을 지닌 하느님의 창조물입니다. 아가페, 곧 ‘사랑’은 실제로 하늘 음식이며 ‘말씀’께서 베푸시는 잔칫상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1코린 13,7-8).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다른 모든 것이 사라져도 사랑은 이 모든 맛 좋은 양념과 함께 하늘에서 땅으로 한결같이 내려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제가 없어지고 말 양식(1코린 6,13)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3). 모든 법과 말씀이 사랑에 달려 있습니다(마태 22,40). 여러분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한다면(마르 12,30-31) 하늘에 마련된 잔칫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잔치는, 성경에 나와 있듯이, 저녁 식사라고 불립니다. 여기에도 사랑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아직 완전한 사랑은 아니며 다만 서로 나누는 착한 마음의 표현일 따름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초대하는 이는 아버지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초대하는 이를 아버지 하느님으로 이해합니다. 비유는 진실을 나타내지만 진실 자체는 아닙니다. 우주의 창조주시요 영광의 아버지께서 온 세상을 위해 그리스도를 기리는 위대한 잔칫상을 마련하셨습니다. 세상의 마지막 시기에 아드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어나셨습니다. 그때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음의 고통을 겪으셨고,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인 당신 몸을 우리에게 주시어 먹게 하셨습니다. 밤이 되어 횃불을 밝힐 때 모세 율법에 따라 어린양이 바쳐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초대하시는 식사를 저녁 식사라고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사람들을 부르러 나간 종은 그리스도시다

성경은 사람들을 부르러 간 사람이 종이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이실 것입니다. 말씀이신 하느님께서는 본성에 따라 하느님이시며 당신을 계시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하느님의 하느님이신 그분은 만유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의 인성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종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비록 종의 모습을 취하셨을망정 그분은 다름없이 하느님이신 주님이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온 세상에 선물을 주시다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아버지 하느님께서 땅의 주민들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 선물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를 용서하셨고 모든 더러움을 씻어 주셨고 성령과 교제하게 하셨으며 영광스러운 당신의 자녀가 되어 하늘 나라에 받아들여지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의 계명들로 다른 누구보다 먼저 이스라엘을 이 복된 자리에 초대하셨습니다. 그분은 시인의 목소리를 빌려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내가 나의 임금을 세웠노라”(시편 2,6). 여기서 ‘나’는 아버지 하느님이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핑계 대는 자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한 가지 목적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핑계를 댔다는 것입니다. 세상일에 골몰한 그들은 영적인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육신의 사랑에 정복된 자들은 거룩함과 거리가 멉니다. 그들은 탐욕스럽게 재물을 추구합니다. 아래에 있는 것들을 찾느라, 하느님께서 위에 마련해 두신 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사라지고 말 지상의 밭과 이랑들을 차지하는 것보다 낙원의 즐거움을 얻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초대를 거절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

사람들이 초대를 거절했다는 말을 들은 집주인은 화가 나서 종에게 명하였습니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밭 때문에, 가축 때문에, 자식을 얻으려고 초대를 거절한 그들은 누구입니까? 틀림없이 유대교 회당의 지도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재물이 많았고, 힘들여 이익을 얻는 데 온 마음이 가 있는 탐욕의 노예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큰길에서 부름 받은 다른 민족들과 버림받은 자들

집주인은 건방진 부자들에게서 다른 민족들에게로 돌아섭니다. 그는 선한 사람은 더욱 굳건하게 하고 악한 사람 선한 사람 가리지 않고 초대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늑대와 새끼 양이 함께 풀을 뜯고”(이사 65,25)라는 말씀처럼, 그는 가난한 이들, 눈먼 이들, 다리저는 이들을 불러 모읍니다. 이는 장애인들도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며, 주님의 자비는 죄인들의 나약함을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누구든지 주님 안에서 자랑하는 자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치욕에서 건져진 것을 자랑할 일입니다.

집주인은 종들을 한길로 보냅니다. 지혜는 “바깥에서 외치”(잠언 1,20)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그들을 골목으로 보냅니다. 죄인들이 넓은 길을 버리고 생명으로 이끄는 좁은 길로 돌아서도록 부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인은 종들을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보냅니다. 현세의 것들에 대한 욕망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은 선의 길로 미래를 향해 달려갈 것입니다. 황무지와 경작지를 가르고 맹수의 습격을 막는 울타리처럼, 그들은 선과 악을 분별하고 악령의 유혹에 맞서 튼튼한 믿음의 성채를 쌓습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초대받은 다른 민족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으로 잔치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 귀한 초대를 가볍게 여겨 거절한 것은, 세속의 헛된 망상에 마음이 쏠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초대받았고, 이어서 다른 민족들이 초대받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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