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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주해

15,1-10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은전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9|조회수0 목록 댓글 0
15,1-10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은전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투덜거린 것은,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한 행실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비유는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것입니다. 삼위일체로부터 오는 거룩한 치료법을 가리키는 비유인 것입니다. 아버지는 하느님을, 목자는 그리스도를, 여인은 교회를 나타냅니다.

잃은 양을 찾아다니는 목자는 인내의 덕을 보여줍니다. 목자는 양을 어깨에 메고 와야 했지만 그러면서도 기뻐합니다. 목자의 어깨는 회복의 짐을 진 십자가의 두 팔입니다. 거친 들판에서 고생하던 양은 목자의 어깨에서 기운을 되찾고 생수가 흐르는 푸른 초원으로 갑니다. 착한 목자가 길 잃고 헤매는 양을 찾아 데리고 오지만, 그를 받아들여 잔치를 베푸는 이는 아버지입니다.

잃은 은전의 비유는 잃은 양의 비유의 주제를 강조합니다. 되찾은 은전은 회복된 신앙이고 구제된 영혼입니다. 하느님 모습으로 빚어진 타락한 죄인이 회복되어 교회로 돌아오자, 교회는 기뻐하며 잔치를 벌입니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늘 전체가 기뻐합니다.

 

15,1-2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반기시다

 

세리들과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바리사이들이여, 어째서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세리들과 죄인들을 꾸짖으시기는커녕 그들에게 구원의 방편을 마련해 주셨다는 이유로 투덜거리는 것입니까? 그분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당신 자신을 비우고 우리처럼 되시어 인간의 남루함을 입으셨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15,3-10 잃은 양의 비유와 잃은 은전의 비유

 

세 비유는 삼위일체를 가리킨다

복음사가는 아무 이유 없이 세 비유를 나열한 것이 아닙니다. 잃었다가 되찾은 양의 비유, 잃었다가 되찾은 은전의 비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의 비유(루카 15,24)를 통해 우리는 삼중 처방으로 상처를 치유받습니다. 아버지와 목자와 여인은 누구입니까? 하느님 아버지, 그리스도, 그리스도 교회입니다. 그대의 죄를 대신 자신 그리스도는 그대를 메고 가십니다. 교회는 찾아 나서고, 아버지는 받아들이십니다. 목자는 메고 오고, 어머니는 찾고, 아버지는 옷을 입히십니다. 먼저 자비가 오고, 그다음에는 중재가 이루어지고, 마지막에는 화해를 이룹니다. 셋이 각기 다른 것을 보완하지요. 구원자는 건져 내시고, 교회는 중재하고, 창조주는 화해시키십니다. 성스런 행위의 자비로움은 똑같지만 은혜는 우리의 공과에 따라 달라집니다. 지친 양은 목자에 의해 회복되고, 잃어버인 은전은 발견되고, 아들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온전히 회개하여 떠나갔던 길을 되밟아 아버지에게 돌아옵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길 잃은 자들을 기다려 주시는 주님의 인내

주님의 비유에서는 크나큰 인내가 보입니다. 길 잃고 헤매는 양을 찾아 나서 결국 찾아내고야 마는 목자의 인내입니다. 참을성이 없으면 양 한 마리쯤 쉽게 포기했겠지만, 목자는 참고 견디며 끝까지 찾아다녔습니다. 그러고는 몹쓸 죄인을 인내심 있게 참아 주듯이 어깨에 메고 돌아오십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인내심 많은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반가이 맞고 옷 입히고 먹이고, 참지 못해 화내는 맏아들에게 대신 변명까지 해 줍니다.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난 것은 아버지가 아들의 회개를 껴안았기 때문입니다. 회개가 좋은 결과를 맞은 것은 아버지의 인내 덕분입니다. (테르툴리아누스 『인내론』)

 

그리스도의 어깨 위에서 십자가의 두 팔에 안기다

아담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 양이 그리스도 어깨에 메인 것을 기뻐합시다. 그리스도의 양 어깨는 십자가의 두 팔입니다. 거기에 저는 제 죄를 얹었습니다. 그 고귀한 멍에를 멘 목 위에서 저는 쉬었습니다. 양은 겉모양은 달라도 모두 같습니다. “우리는 여럿일지라고 한 몸”(1코린 10,17)이니까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27).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19,10)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찾아 나서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1코린 15,22)이기 때문입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푸른 풀밭으로 돌아간 양

병든 양 한 마리 무리에서 벗어나

우거진 수풀 속을 헤매며

찔레 가시에 흰 털가죽 찢기고

가시나무 덤불에 여린 몸 찔리는데,

지칠 줄 모르는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아내,

이리 떼 쫓으며 든든한 어깨에

되찾은 양 둘러메고

우리로 데려와

상처를 치료하고

더러워진 몸을 닦아 줍니다.

푸른 풀밭

잔잔한 물가로 데려다 주니

그곳에는 날카로운 가시도

찔레 덤불도 없고

가시 돋친 줄기 휘두르는

털북숭이 엉겅퀴도 없지요.

그곳은 드넓은 숲

종려나무들 자라고

우거진 풀들은 푸른 잎 숙이고

거울처럼 잔잔한 개울에

제 모습 비치는 월계수

끝도 없이 꽃을 피웁니다.

(프루덴티우스 『매일 찬가』)

 

양을 되살리는 착한 목자

길 잃고 헤매지 않는 이들은 남겨 두고, 착한 목자는 그대를 찾아 나섭니다. 그대가 숙이고 들어오면 그는 등 돌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친절하게 그대를 자기 어깨에 태우고는 잃었던 양을 찾았다며 기뻐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대가 방황을 그치고 돌아오기를 문간에 서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에게로 돌아가기만 하십시오. 그대가 아직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아버지가 달려와 그대 목을 껴안을 것입니다. 회개로 깨끗해진 그대를 사랑으로 껴안아 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혹시 곁에 서 있다가, 그대가 너무 쉽게 받아들여졌다고 대드는 사람이 있으면, 좋으신 아버지께서는 그대를 위해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대 바실리우스 『서간집』)

 

잃은 은전은 믿음을 뜻한다

영혼의 값은 믿음입니다. 복음서의 부인이 집 안을 샅샅이 뒤져서 찾은 잃어버린 은전은 믿음을 뜻합니다. 복음서는 여인이 등불을 켜고 집안을 쓸었다고 말합니다. 부인은 잃었던 은전을 찾자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함께 기뻐합니다. 믿음을 잃거나 믿음을 값으로 치르고 얻은 은총을 잃을 때, 영혼이 입는 상처는 매우 큽니다. 그대의 등불을 밝히십시오.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였거니와, 이는 영혼의 눈을 가리킵니다. 영의 기름으로 타오르는 등불을 밝히고 집 안을 샅샅이 비추십시오. 그대 영혼의 구원, 잃은 은전을 찾으십시오. 사람이 그것을 잃으면 큰 시련이요 그것을 찾으면 큰 기쁨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타락한 죄인이 돌아옴을 기뻐하다

두 번째 비유는 잃어버린 것을 은전 한 닢에 비유합니다. 숫자 일은 완전한 수이며 옹근 전체인 십의 한 부분입니다. 십이라는 수 또한 완전한 수이며 한 단위를 마감하는 마지막 숫자입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만유의 하느님의 모습을 입은 존재임을 잘 보여 줍니다. 그 은전은 아마 임금의 모습이 찍혀 있는 데나리온이었을 것입니다. 타락하여 길을 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발견되어, 거룩함과 의로움을 입고 그분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잃은 것을 찾기 위해 부인은 등불을 밝혔습니다. 길 잃은 자들이 그 불빛 덕분에 구원받자 하늘의 천사들이 기뻐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께서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천사들이 기뻐한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느님과 뜻을 같이하는 그들은 구원받은 이를 위해 잔치를 베풀고, 구원자의 온유함을 끝없이 찬미합니다.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부르시어 진리를 깨치게 하실 때, 하늘의 천사들이 얼마나 큰 기쁨에 찰까요? 그때 사람들은 죄의 더러움을 벗고 죽음의 사슬에서 풀려났겠지요. 모든 방랑과 타락에서 떠나와서 말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얻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당신 나라의 부유함을 우리에게 주시는 아버지

잃은 은전을 찾은 부인은 그저 조금 기뻐하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황제의 초상은 교회의 등록부입니다. 우리는 양이고요. 그분께서 우리를 물가에 쉬게 하고 기뻐하실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우리는 양 떼입니다. 함께 풀밭을 찾읍시다. 우리는 은전입니다. 값을 잃지 맙시다. 우리는 아들입니다. 서둘러 아버지께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상속재산으로 받은 영적 고귀함을 허비하고 땅의 쾌락에 빠졌다고 해서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당신의 보물을 주셨기에, 믿음의 부는 줄어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주셨지만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며 당신께서 주신 것을 하나도 잃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대를 받아 주시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꺾인 이들을 일으켜 세우시는”(시편 146,8) 분이시기에, 그대가 아직 길 위에 있을 때 달려와 그대 목을 껴안으십니다. 입을 맞추시며 그대에게 신의와 사랑을 약속하실 것입니다. 그대는 아직도 불안하여 몸이 굳어 있지만 그분은 자식의 존귀함을 돌려주셨습니다. 벌 받은 것을 생각하여 겁에 질려 있는 그대에게 그분은 입을 맞추십니다. 그대는 책망받을 것을 두려워하지만 그분은 잔치를 마련하십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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