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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22,6-11 바오로가 자신의 회심에 대해 이야기하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5|조회수3 목록 댓글 0
22,6-11 바오로가 자신의 회심에 대해 이야기하다


6 그런데 내가 길을 떠나 정오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7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8 내가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여쭙자, 그분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9 나와 함께 있던 이들은 빛은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소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10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 줄 것이다.’
11 나는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어, 나와 함께 가던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갔습니다.

22,8 나자렛 사람 예수

 

우리는 살아가는 태도로써 복음을 행한다

복음서 안에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행하신 모든 선행이 담겨 있습니다. 창녀였으나 회개하여 죄 많은 상태에서 온전히 회복한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집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향기로운 냄새를 맡게 된 이야기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르 14,9)라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해 준 일은 예수님께 해 드린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친절을 베푼 이들에게 하신, “너희가 이들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을 친절히 맞아들인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웃에게 하는 모든 선행은 복음서에 담기며, 그 복음서는 천상의 서판에 기록되어 모든 것에 관한 지식을 얻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 누구나가 읽는 복음서입니다. 한편으로 복음서에는 예수님께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단죄하는 부분도 들어 있습니다. 유다의 배반과 “없애 버리시오”(요한 19,6. 15)02, “그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못 박으시오!”(루카 23,21) 하고 외친 사악한 군중, 그분께 가시관을 씌우고 조롱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같은 것이 모두 복음서에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배반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배반한 사람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사울은 박해자였을 때,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 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직도 예수님께 가시관을 씌우며 그분을 모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서도 그것이 자라 열매를 맺도록 힘쓰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시로 예수님께 관을 씌움으로써 사악한 존재로 복음서에 담겨 읽을거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알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 안에 계시며 이성적이고 거룩한 모든 생명체 안에 존재하시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환대받으시며 영광스럽게 되셨는지, 또 그분께서 어떻게 모욕을 받으시고 조롱받으시고 매질을 당하셨는지 알게 될 이들이 우리가 저지른 일들에 대해 읽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 모든 이야기를 한 것은 우리가 행한 선행들과 걸려 넘어진 이들의 죄도 복음서에 담겨 영원한 생명을 가리키거나 질책과 영원한 수치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뜻에서였습니다. (오리게네스 『요한 복음 주해』)

 

22,9 나와 함께 있던 이들은 빛을 보았다

 

소리만 들은 바오로 일행

앞에서는 이 환시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사도 9,7)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무슨 소리를 듣기는 했으나 분명한 말을 듣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들어도 듣지 못하는 이들

바오로와 함께 가던 일행은 그곳에서 빛은 보았으나 그분의 목소리를 귀에 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앞의 이야기에서 바오로의 눈이 멀었을 때는 그의 동료들도 그 목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의 말이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소리를 듣고 그것을 머릿속에 담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들은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사람은 의심 많은 귀로 인하여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하며, 그것은 불분명한 고리가 바람을 흔든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라토르 『사도행전』)

 

22,11 함께 가던 이들의 손에 이끌리다

 

눈부신 빛

우리 주님께서는 저 위에서 겸손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당신 교회의 지도자들이 겸손하게 말하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겸손하게 바오로에게 말씀하셨는데 “어째서 바오로의 눈에 크게 탈이 난 것입니까?” 하고 묻는 사람들은 바오로의 눈이 손상을 입은 것은 그곳에서 겸손하게 말씀하신 우리의 자비로우신 주님 때문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의 눈에 탈이 난 것은 환히 빛나던 너무나 밝은 빛 때문이었습니다. 그 빛은 바오로가 저지른 짓 때문에 그에게 내린 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었다”는 바오로의 말대로, 그 빛의 강렬한 관선이 그에게 충격을 입힌 것입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우리 주님에 관한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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