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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23,6-11 사두가이들과 바리사이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5|조회수0 목록 댓글 0
23,6-11 사두가이들과 바리사이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다


6 그리고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사두가이들이고 일부는 바리사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바오로는 최고 의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형제 여러분, 나는 바리사이이며 바리사이의 아들입니다.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7 바오로가 이런 말을 하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회중이 둘로 갈라졌다.
8 사실 사두가이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주장하고, 바리사이들은 그것을 다 인정하였다.
9 그래서 큰 소란이 벌어졌는데, 바리사이파에서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 강력히 항의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면 어떻게 할 셈입니까?”
10 논쟁이 격렬해지자 천인대장은 바오로가 그들에게 찢겨 죽지 않을까 염려하여, 내려가 그들 가운데에서 바오로를 빼내어 진지 안으로 데려가라고 부대에 명령하였다.
11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오로 앞에 서시어 그에게 이르셨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 구약성경에 천사와 영에 관한 말이 있습니다. 루카가 ‘천사’와 ‘영’이라는 단어를 부활에 대한 희망을 뜻하는 말로 사용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바오로의 가르침에서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다는 바리사이들의 발언이 바오로에 대한 바리사이들의 변호로 여겨지고, 따라서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합법적인 한 가지 형태로 인정되어 로마인들이 말하는 ‘공인된 종교’의 범주에 들어 보호받게 되는 것이 루카가 바랐던 바였을 수도 있습니다. 회심 때를 제외하면 예수님께서는 바오로에게 네 번 나타나시는데,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루카가 환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이 전하는 이야기가 하느님의 행위에 관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고, 환시의 형태는 대개 예수님과 성령이 교회에게 지시를 내리고 힘을 북돋아 주는 형식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집트에서의 체류와 탈출을 약속하셨듯이, 그리스도께서도 바오로에게 그렇게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생에서 우리를 어떻게 위로하시는지를 바오로를 통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23,6 부활과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다

 

형제 여러분, 나는 바리사이입니다

선한 사람들이 합의를 하면 언제나 유익한 결과가 따르고, 악한 사람들이 하는 합의는 하나같이 선한 이들에게 해롭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분열하여 자기들이 합의하에 결박했던 사람을 풀어 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홍해도 갈라지지 않았을 때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길을 막았지만, 갈라지자 그들을 이집트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그가 앞에서 자랑삼았듯이 자신이 ‘바리사이들의 아들’이며 또, 우리가 성경에서 보듯이, 바리사이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예언서와 율법을 배웠다고 증언한 것입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23,8 사두가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사도가이

사두가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대단한 얼간이인 그들은 아마 하느님도 모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이 있다는 사실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23,9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다

 

의미가 모호한 구절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면 어떻게 할 셈입니까?” 이 문장의 뜻이 애매모호합니다. 뜻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 필요한 단어들이 빠졌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위험을 모면하도록 어떤 말을 하라고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일러 준 것이라면, 그는 지금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해야 온전한 문장일 것입니다. ㅡ그렇지 않다면 바리사이들의 말은 ‘보시오! 이자는 분명히 부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소. 그것은 이자가 영이나 천사에게서 부활에 관한 이런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오’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암모니우스 『성경 주해 선집』)

 

23,11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환난 속에 있을 때 주어진 위로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이라는 말로 먼저 그를 칭찬하십니다. 그런 다음 바오로가 로마를 향해 장차 어찌 될지 모르는 길을 가도록 두려움 속에 놓아두시지 않습니다. 너는 그곳에 가게 될 뿐 아니라 그곳에서도 이처럼 대담한 증언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오로가 이곳에서 살아날 뿐 아니라 그 위대한 도시에서도 목숨을 건지고 훌륭한 관을 쓰는 영예를 입게 되리라는 것을 알려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오로가 위험에 처하기 전에 나타나시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 중에 있을 때 우리를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위험 한가운데에서도 우리를 단련시키는 분이시니, 환난 중에 나타나시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이집트와의 싸움

성경은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창세 46,3)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이집트가 상징하는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에페 6,12) 싸우게 되었을 때 겁내거나 주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까닭을 알고 싶다면, 나의 약속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너를 다시 데리고 올라오겠다”(창세 46,3-4). 그래서 그는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전투도 원수인 악마들이 불러온 시련도 겁내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1코린 15,10). 예루살렘에서 그에 대한 음모가 이루어지는 동안 그가 말씀과 주님을 선포하기 위해 힘껏 싸우며 애쓸 때도, 주님께서는 그의 곁에 계시면서, 이스라엘에게 하셨던 것과 같은 말씀을 그에게 해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바오로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오리게네스 『창세기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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