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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26,24-32 아그리파스 임금이 믿음을 받아들이기 바라는 바오로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5|조회수6 목록 댓글 0
26,24-32 아그리파스 임금이 믿음을 받아들이기 바라는 바오로


24 바오로가 이렇게 변론하자 페스투스가 큰 소리로, “바오로, 당신 미쳤구려.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미치고 말았군.” 하고 말하였다.
25 바오로가 대답하였다. “존귀하신 페스투스 님, 나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진리와 양식에 따라 말을 하고 있습니다.
26 임금님은 이것들을 알고 있으므로 내가 그분께 담대히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므로, 임금님은 이것들 가운데에서 하나도 놓치지 않으셨다고 나는 믿습니다.
27 아그리파스 임금님, 예언자들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압니다.”
28 아그리파스가 바오로에게, “당신은 조금 있으면 나를 설득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행세하게 만들겠군.” 하고 말하였다.
29 그러자 바오로가 대답하였다. “조금 있든 오래 있든, 나는 임금님만이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이들이 이 사슬만 빼고 나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30 임금과 총독과 베르니케와 그 밖에 그들과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일어나
31 퇴장하여 서로 말하였다. “저 사람은 사형을 받거나 투옥될 만한 일은 하지 않는군요.”
32 아그리파스는 페스투스에게 “저 사람이 황제께 상소하지 않았으면 풀려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 루카는 페스투스의 반응과 아그리파스의 반응을 대조시킵니다. 페스투스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들을 이야기하는 바오로의 말에 놀란 듯 보이고, 아그리파스는 영리하게 옆길로 새어 이 예언들이 촉구하는 바를 회피합니다. 이 단락은 로마 정부의 권력자들이 바오로의 무죄를 인정하는 말로 끝납니다.

 

26,24 바오로, 당신 미쳤구려

 

참되게 미치다

페스투스는 사슬에 묶인 바오로를 미쳤다고 보았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을 박해자에서 사도로 변하게 한 놀라운 계시의 내용을 모두 이야기했고, 공개 연설의 형식과 격렬함을 빌려 우리 구원자의 뜻으로 계시 된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해 논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 돼지를 치게 된 방탕한 아들은 어리석게 미친 것이었지만, “‘우리가 정신이 나갔다면 하느님을 위하여 그러한 것이고, 우리가 정신이 온전하다면 여러분을 위하여 그러한 것입니다’(2코린 5,13)라는 사도의 말은 영적으로 미친, 다시 말해, 참되게 미친 것을 가리킵니다.”

시편 저자의 이 노래도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주님께 신뢰를 두며 오만한 자들과 거짓된 변절자들에게 돌아서지 않는 사람!”(시편 40,5).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26,27 임금님, 예언자들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압니다

바오로의 이 말은 아첨이 아니라 진실을 말한 것입니다. 아그리파스는 유대인들의 율법과 의례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예언자들이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결여된 그는 이 진리가 그리스도 주님에 관한 것인지 몰랐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26,29 이 사슬만 빼고

 

나약한 이들을 위해 자기의 자랑거리도 하찮게 이야기하는 바오로

바오로의 말은 아첨이 아닙니다. 바오로는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이들이 이 사슬만 빼고 나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하느님께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자신을 묶고 있는 사슬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 그 사슬이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기라도 한 듯 자랑하는 바오로가 여기서는 이 사람들을 위해 그 사슬을 업신여기는 투로 말합니다. 그들이 아직도 너무 약하기 때문에 짐짓 겸손하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이 된 나 바오로”(에페 3,1), “나는 이스라엘의 희망 때문에 이렇게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사도 28,20),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2티모 2,9)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그저 사슬에 묶인 것이 아니라 ‘죄인처럼’ 묶여 있었습니다. 그가 어떤 좋은 일 때문에 그렇게 묶여 있는 것이라면, 그 사실은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영광의 사슬

바오로가 이렇게 행동한 것은 비탄에 빠져 있거나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지혜와 영적 예지가 넘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비신자인 이민족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대목이 보여 주는 바오로의 행동은 “나는 율법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율법 밖에 있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1코린 9,21)라는 자신의 말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의 행동에 담긴 뜻은 이것입니다. 다른 민족 사람은 사슬이나 환난이라는 말을 들으면 당장 달아날 것입니다. 그는 사슬의 힘을 모릅니다. 그를 먼저 신자가 되게 합시다. 말씀의 맛을 보게 합시다. 그러면 그는 이 사슬을 향해, 그것도 자발적으로 달려올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사람들을 서서히 십자가로 인도한 바오로

그들은 지금까지 우리의 교의에 대한 거짓된 이야기만을 들어 십자가에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거기에다가 사슬 이야기까지 한다면, 그들의 불만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호감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그 이야기를 뺀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영광으로 여기는 것을 아직 맛보지 못했기에, 사슬에 묶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참된 삶에 대해 알고 나면, 그들도 이 차꼬의 아름다움과 이 사슬의 특별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우리 말을 듣는 청중들이 십자가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바오로는 왕궁을 안내하는 사람처럼 조직적으로 절차를 밟았던 것입니다. 그는 아직 바깥에 서 있어서 현관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왕궁 내부를 다 보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왕궁 안으로 들어와 모든 것을 찬찬히 보기 전에는, 왕궁의 아름다움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26,32 상고하지 않았으면

 

범법자로 취급받은 바오로

그들은 바오로에게 호의적인 판결을 내립니다. 그들은 “당신 미쳤구려”라고 하고서는, 사형선고를 면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의 사슬도 풀어 주었습니다. 사실 바오로가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예 그를 풀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가 사슬에 묶여 떠나게 된 것은 섭리였습니다. 바오로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2티모 2,9) 겪었습니다. 그의 주님께서 ‘강도들과 같은’ 취급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강도들과 공통점이 하나도 없으셨던 것처럼, 바오로도 그랬습니다. 놀라운 사실이 그것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 그런 죄인들과 뒤섞여 있었는데도, 그들에게서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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