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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28,17-22 바오로가 로마의 유대인들을 불러 모으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5|조회수3 목록 댓글 0
28,17-22 바오로가 로마의 유대인들을 불러 모으다


17 사흘 뒤에 바오로는 그곳 유다인들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이 모이자 바오로가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백성이나 조상 전래의 관습을 거스르는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도, 예루살렘에서 죄수가 되어 로마인들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18 로마인들은 나를 신문하고 나서 사형에 처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나를 풀어 주려고 하였습니다.
19 그러나 유다인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나는 내 민족을 고발할 뜻이 없는데도 하는 수 없이 황제에게 상소하였습니다.
20 그래서 여러분을 뵙고 이야기하려고 오시라고 청하였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희망 때문에 이렇게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21 그러자 그들이 바오로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유다로부터 당신에 관한 편지를 받은 일도 없고, 형제들 가운데 누가 와서 당신에게 불리한 보고나 이야기를 한 일도 없습니다.
22 그러나 이 분파가 어디에서나 반대를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의 생각을 직접 듣고 싶습니다.”

▶ 주해가들은, 루카는 왜 바오로가 신자들과 만난 일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유대인 지도자들과 접촉한 일만 보고하는지 의아해합니다. 이는 분명 바오로가 여러 번 이야기한 사실, 곧 이 만남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다른 민족에게 전해지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과 반대되는 것을 시사합니다. 바오로는 법적으로 무죄하며 ‘이스라엘의 희망’ 때문에 묶여 있는 것이라고 짧게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유대인 지도자들이 사용한 ‘이 분파’라는 단어는 어떤 사상 학파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어디에서나 반대를 받는’ 이들로 묘사됩니다.

 

28,17 그곳 유대인들의 지도자들

 

악을 이겨 내어 악을 파멸시키다

바오로는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의견을 달리한 채 떠났습니다. 우리에게 안전해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그 반대인 것들을 통해서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이롭게 전개되는 것은 참 놀랐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드리지요. “파라오가 아기들을 모두 나일 강에 던져 버리라고 명령하였다”(탈출 1,22)고 합니다. 아기들이 모두 강에 버려졌다면, 모세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며, 왕궁에서 자라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구원받은 것은 영광스럽게 살 때가 아니라 신분이 드러났을 때였습니다. 그것은 그의 현명함과 풍부한 지략을 보여 주시고자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일이었습니다. 유대인은 그를 위협하며 “나를 죽일 작정이오?” 하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그를 도왔습니다. 그가 광야에서 환시를 보고, 적절한 기한이 다 차고, 그가 광야에서 지혜를 배우고 안전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를 두고 꾸민 모든 계략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아론이 그랬듯이 그도 더욱 명성을 쌓았습니다. 그들은 그에 대항해 일어났지만 그럼으로써 모세의 지위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민수기 16), 그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나중에는 동판 때문에 더욱 칭송을 받았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다들 아실 테니, 뒷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시련은 다가올 생에서는 물론 이승에서도 위대한 선을 가져옵니다. 악과 관련해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갈대로 불과 싸우면, 갈대가 불을 끄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을 더 키우며 자기는 타고 맙니다. 악은 덕이 더 밝게 빛나게 하는 연료요 바탕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불의를 유익한 것으로 돌려놓음으로써 우리의 성품은 더욱더 빛나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일을 꾸미는 악마는 그것을 이겨 내는 이들을 더욱 빛나게 만듭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28,22 이 분파가 어디에서나 반대를 받는다는 것

이단이 있을 필요성

유대인들은 그리스도 신앙을 이단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어디에서나 반대를 받는다’는 이유였습니다. 보시다시피, 유대인들 스스로 그리스도께서 어디에서나 선포되고 있음을 증언합니다. 그러나 이 절의 말씀에서 보듯, 모두가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일부 유대인과 다른 민족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이단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참신앙을 따르지 않습니다. 사실, 이단이 존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선민들 드러나고, 시메온이 그리스도를 두고 한 다음의 예언이 이루어질 터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많은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루카 2,34). (암모니우스 『성경 주해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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