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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28,23-31 바오로가 예수님에 관해 가르치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5|조회수2 목록 댓글 0
28,23-31 바오로가 예수님에 관해 가르치다


23 그들은 바오로와 날짜를 정해 두었다가, 많은 사람을 데리고 바오로의 숙소로 찾아왔다. 바오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에게 설명을 하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들을 들어 예수님에 관하여 그들을 설득하였다.
24 그러자 어떤 이들은 바오로의 말을 받아들이고 어떤 이들은 믿지 않았다.
25 그들이 이렇게 서로 의견을 달리한 채 떠나려고 할 때에 바오로가 한마디 덧붙였다. “성령께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하신 말씀이 지당합니다.
26 곧 이 말씀입니다. ‘너는 저 백성에게 가서 말하여라.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27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28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느님의 이 구원이 다른 민족들에게 보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들을 것입니다.”
29 바오로가 이 말을 마치자 유다인들은 서로 많은 논쟁을 하며 돌아갔다.
30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 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31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

▶ 유대인 지도자들과 만난 바오로는 “하느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들을 들어 예수님에 관하여 그들을 설득”하며 복음을 가르치고 직접 설명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반응은 둘로 갈라지고, 지도자들은 그 자리를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이런 행동은 바오로의 비난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의 태도와 관련하여 신약성경에 자주 사용되는 구절을 인용한 바오로의 비난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내치셨음을 단언하는 말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앞에서 바오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백성과 다른 민족에게 빛을 선포하시리라”(사도 26,23)고 이야기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바오로의 연금 생활이 어떠했는지 다시 한 번 언급하며 그가 땅 끝인 이곳에서 자유롭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다는 진술로 끝납니다. 현대 주해가들은 사도행전의 마무리 방식에 대해 여전히 많은 의문을 가집니다. 루카의 세 번째 작품이 소실된 것인지? 아니면 루카가 죽어서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것인가? 아마도 가장 유력한 대답은, 루카도 마르코처럼 수수께끼 같은 끝맺음으로 자신의 기록은 여기서 끝나지만 이 이야기는 각 세대와 각 개인 안에서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로마에서 바오로는 기적에 의존하지 않고 믿음을 강조하는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바오로가 율법과 예언서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었던 것, 특히 이방 세계의 중심지가 바오로로 하여금 장차 그것을 정복할 메시지를 퍼뜨리게 하는 연단이 되어 주었다는 사실이 위대한 기적입니다.

 

28,23 바오로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설명을 하다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기적을 일으키지 않은 바오로

여기서 바오로는 기적으로가 아니라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으로 그들이 아무 소리 못하게 합니다. 그는 늘 이렇게 합니다. 바오로에게는 기적을 일으킬 능력이 있었지만, 이제는 믿음에 기적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을 가르친 것 자체가 위대한 기적이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28,25 성령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은 바오로가 아니다

“성령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표현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천사들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고 하니까요. 바오로는 “성령께서 하신 말씀이 지당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평범한 말이 아닙니다. 천사의 말을 전할 때, 우리는 ‘천사의 말은 지당합니다’라고 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은 지당합니다”라고 하거나 “성령께서 하신 말씀은 지당합니다”하고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신들이 믿지 않는 것은 나 바오로가 아니라는 뜻이며,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28,27 저 백성의 마음은 무디다

 

무딘 마음은 의지의 문제다

우리가, 그들의 마음이 무딘 것이나 귀가 무딘 것은 그들의 의지 때문이지 본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바오로는 “그들이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그 죄가 어디에 있는지를, 곧 그들의 자유의지에 잘못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28,31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가르치다

 

로마를 정복한 바오로

성경은 바오로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그는 형체 있는 어떤 것이나 현세의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는 “내가 에스파냐로 갈 때 지나는 길에 여러분을 보고 가게 되기 바랍니다”(로마 15,24) 라고 한 바 있습니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그 머리는 모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것이 보이십니까? 그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는 영혼을 지닌, 하늘보다 높은 곳에 있는 인간이었습니다. 첫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바오로,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워 맑은 정신이 되게 하고 그들의 잠을 완전히 떨쳐 버리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에 관해 바오로는 “내가 여러분에게 갈 때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가 함께 지내리라”(로마 15,29)고 하였고, “예루살렘으로 성도들에게 봉사하러 떠납니다”(로마 15,25)라고도 하였습니다. 이는 “나는 내 동족에게 자선기금을 전달하고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려고 돌아왔습니다”라는 사도행전의 말이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지금 하늘에 더욱 가까이 가 있습니다. 로마는 사슬에 묶인 그를 받아들여, 그가 왕관을 쓰고 찬양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여러분과 함께 지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 시간의 시작이었습니다. 무적의 존재였던 그는 전리품에 또 전리품을 쌓았습니다. 코린토는 그와 두 해 동안 함께했고, 아시아는 세 해 동안 그와 함께했으며, 이 도시는 두 해를 함께했습니다. 그 뒤 완전함의 경지에 올랐을 때, 그는 이 도시에 다시 왔습니다. 이처럼 그는 피신하였다가, 온 세상을 채운 다음 자신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사도행전 이후의 행적

사도행전을 저술한 루카는 바오로가 로마에서 만 이 년 동안 수인 생활을 하며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했다는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자신에 대한 변론을 한 다음 다시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파견되었고, 이 도시에 두 번째로 왔을 때 순교를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바오로는 연금 생활을 하던 이때 티모테오에게 보내는 둘째 서간을 쓰면서, 자신이 한 첫 번째 변론과 곧 닥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또한 바오로는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2티모 4,16-17)라고 합니다. 그의 이 말은 그를 통해 복음 선포가 완수되도록 하기 위하여 이 첫 번째 로마 방문 때 그가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평이한 진술입니다. 이 말에서 ‘사자’는 네로를 가리키는데, 그자가 이렇게 불린 것은 그자의 잔인함 때문이었습니다. 바오로는 이후에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같은 말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영 안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주님께서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2티모 4,18) 같은 말을 덧붙임으로써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는 같은 편지에서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2티모 4,6)라는 말로 이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한편 바오로는 자신의 첫 번째 변론 때 루카도 그곳에 없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을 쓸 때에는 루카가 자신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도 합니다(2티모 4,11). 그러므로 루카가 사도행전을 쓴 것이 그때였을지 모릅니다. 바오로와 함께 있을 때까지의 역사를 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바오로의 순교가 루카가 기록한 바오로의 로마 체재 기간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우리의 추론에서 나온 말들입니다. 사실 네로는 처음에는 온화한 편이었으니, 자신의 가르침에 관한 바오로의 변론이 쉽게 받아들여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네로는 파렴치한 행동을 일삼게 되면서, 사도들을 비롯한 사람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2026년 3월 24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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