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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7,1-8 스테파노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일에 대해 설교하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4|조회수1 목록 댓글 0
7,1-8 스테파노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일에 대해 설교하다


1 대사제가 “그게 사실이오?” 하고 묻자
2 스테파노가 말하였다. “부형 여러분, 들어 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자리를 잡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영광의 하느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3 ‘네 고향과 친족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하고 이르셨습니다.
4 그리하여 그는 칼데아인들의 땅을 떠나 하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죽은 뒤, 하느님께서는 그를 하란에서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땅으로 옮겨 오게 하셨습니다.
5 그때에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곳에서는 한 치의 땅도 상속 재산으로 주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가 아직 자식이 없는데도, 그와 그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이 땅을 소유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6 하느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후손은 남의 나라에서 나그네살이하며 사백 년 동안 종살이를 하고 학대를 받을 것이다.
7 그러나 그의 후손들이 종이 되어 섬길 민족을 나는 심판하겠다.’ 하느님께서 또 이르셨습니다. ‘그 뒤에 그들은 빠져나와 이곳에서 나를 섬길 것이다.’
8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할례의 계약을 맺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여드레째 되는 날에 할례를 베풀었으며, 이사악은 야곱에게, 또 야곱은 열두 선조에게 할례를 베풀었습니다.

▶ 루카는 스테파노의 설교와 그에 뒤이은 순교는 옛 이스라엘과 새 이스라엘이 완전히 갈라지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스테파노는 하느님 백성의 역사를 위대한 세 인물, 아브라함과 요셉 그리고 모세를 통해 개괄합니다. 그 역사에서 이스라엘이 늘 불충했음을 지적하고, 청중들에게 그들이 조상들의 배반을 완성하고 있다며 힐책합니다.

 

7,2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느님

스테파노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것은, 그의 아버지가 죽은 뒤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분명 자기 아들과 더불어 자리 잡고 살던 하란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살기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지낼 때 이미 하느님 말씀이 있었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7,3 네 고향과 친족을 떠나라

 

하느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여라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고향을 떠난 것이 율법에 어긋난 것이 아니며 하나의 유형이라는 것을 스테파노는 보여 줍니다. “그리하여 그는 칼데아인들의 땅을 떠났다”하고 말합니다.

그는 지금 유대인들은 본디 페르시아 땅 출신이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언정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따라야만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선조도 하느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자기 아버지가 묻힌 곳과 가진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정신적인 떠남

“그리하여 그는 칼데아인들의 땅을 떠나”라는 말은 몸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떠났다는, 곧 칼데라인들과 그들의 땅과 영원히 관계를 끊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칼데아를 떠난 그해에 메소포타미아로 왔으며, 얼마 동안 하란에 살다가 약속의 땅으로 왔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세 가지 포기

우리는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고향과 친족과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말씀으로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행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네 고향’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이 세상과 세상의 부를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두 번째로 ‘친족’은 과거 생활 방식과 행동 양식 그리고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혈족이나 인척 관계로 인해 우리가 지니게 된 악덕을 뜻합니다. 세 번째로, ‘네 아버지의 집’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자취를 뜻합니다. (요한 카시아누스 『담화집』)

 

7,5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복종에 대한 상

스테파노는 여기서 이 약속이 아브라함이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할례가 지시되기 전에, 제사가 바쳐지기 전에, 성전이 서기 전에 주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또 이 사람들이 할례나 율법을 받은 것은 덕을 쌓았기 때문이 아니며, 오직 순종했기 때문에 땅을 상으로 받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할례가 이미 주어진 그때도 약속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하느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창세 15,18)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것을 사람들에게서 받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가 땅을 상속 받으리라고 약속하셨는데 그가 그곳에 머무르는 내내 그것을 받지 못하였다면, 그는 분명 의인들의 부활 때 그의 후손들, 곧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을 믿는 이들과 함께 그것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주님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은 교회입니다. (이네네우스 『이단 반박』)

 

7,6 그의 후손이 남의 나라에서 나그네살이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시련받는 것을 허락하신다

그 약속이 얼마나 오래전에 이루어졌으며, 전제나 할례에 대한 이야기 없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잘 보십시오. 여기서 스테파노는 하느님께서 그들이 심한 고통을 겪는 것을 허락하셨으며,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그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땅을 약속하시고 그것을 주신 분께서는 먼저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분께서는 나라를 약속하셨지만 우리가 시련을 통해 순종을 배우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자유는 결국 사백 년이 지나서야 왔습니다. 그런데 나라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이상한 일입니까? 그분은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시간은 그분의 말씀을 거짓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남의 땅에서 나그네살이하다

하느님의 미 말씀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사백 년 동안 학대받거나 노예살이를 하게 되리라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후손들이 사백 년 동안 떠돌게 될 것이며 그동안 노예살이를 하게 될 때도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창세 21,12)라고 쓰여 있으므로, 이사악이 태어난 해로부터 이집트를 떠난 해까지가 405년이고, 그동안 그의 후손들은 가나안 땅이나 이집트에서 떠돌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백 년 동안의 고생은 이사악이 하녀의 아들에게 학대를 받기 시작한 다섯 살 때부터 계산한 기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7,7 그들이 하느님을 섬길 것이다

 

하느님께는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온갖 방법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께는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온갖 방법이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대목은 하느님의 그런 풍부한 능력을 그 어느 곳보다 확실히 드러내 줍니다. 비록 역경 종살이와 학대, 살육을 거치지만 민족의 수는 늘어났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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