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사도행전 주해

7,54-60 스테파노의 순교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4|조회수3 목록 댓글 0
7,54-60 스테파노의 순교


54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스테파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테파노는 이 말을 하고 잠들었다.

▶ 스테파노가 사람의 모습을 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을 본 것은 그의 충성에 대한 격려요 그가 받을 상의 표징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함께 싸우며 도움을 주시는 분으로 서 계시며 이 환시는 그분을 심판자로 언명하는 신앙 고백문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스테파노는 불합리한 일로 가득한 이 삶이 무엇인지 우리를 죽이려 하는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용서와 자기희생의 정신을 보여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이승에서의 죽음은 끝이 아니며, 더 훌륭한 것 또는 훨씬 나쁜 어떤 것의 시작입니다.

 

755 스테파노는 하느님의 영광을 보았다

 

육신의 모습으로

복된 스테파노는 주님을 보았다고 합니다. 부활 이후인데도 주님께서는 육신을 지닌 모습이셨고, 승리를 거둔 스테파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성을 보았다고 이야기합니다. (키루스의 테오도레투스 『에라니스테스』)

 

7,56 하늘이 열려 있다

 

더욱 굳세어진 스테파노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히 하느님의 아들이시자 온전히 사람의 아들이셨는데 왜 복된 순교자는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사람의 아들’이라고 했을까요? 이 증언으로 유대인들이 자기들이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과 그가 하느님임을 믿지 않기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떠올려 그들의 불신앙이 무너진다면 그럴 것입니다. 이리하여, 복된 순교자가 더욱 굳세게 버티도록 하늘 나라의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이 죄 없는 사람이 돌에 맞아 땅에 쓰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하느님이시오 인간이신 분께서 관을 쓰신 모습으로 하늘에 나타나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하느님 오른쪽에 앉아 계시다(마르 16,19)고 한 마르코의 말과도 모순되지 않습니다. 앉아 있는 자세는 심판하는 이의 자세이며 보이지 않게 ‘지금 만물을 심판하시는 그분’께서는 ‘만물의 심판관으로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종말에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스테파노에게 당신을 보여 주신 그리스도

마음에 빛이 있어 하늘이 열린 것을 본 스테파노, 그리스도께서 하고 계신 일을 볼 수 있었네. 순교자 앞에 나타나신 그리스도. 우리 신앙은 앉아 계신 그분 모습을 즐겨 말하나 스테파노가 존 것은 서 계신 모습, 천둥을 호령하시는 분과 하나 된 바로 그 ‘육신’께서 스테파노 안에서 스스로를 영광스럽게 하신다. 이승에서 누구도 확신 없이 싸우는 일이 없도록, 그 증인에 대한 상으로 하느님의 성채 안에서 주님의 육신이 계시되도다. (아라토르 『사도행전』)

 

완전한 순교자의 길을 간 스테파노

그는 모든 면에서 순교의 ‘선도자’를 본받았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이들을 위해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기도함으로써 가르침을 완성했습니다. (이레네우스 『이단 반박』)

 

조력자로서 서 계셨던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조력자로서 서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힘들게 싸우고 있는 스테파노를 도와주고 싶어서 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순교자에게 관을 씌우려는 듯 서 계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앉아 계신 그분을 두려워하는 일이 없도록, 그분께서 여러분을 위해서도 서 계시도록 하십시오. 그분은 심판을 하실 때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불완전한 이들은 심판하시고 신과 같이 된 이들에게는 심판하는 권한을 주십니다. (암브로시우스 『서간집』)

 

7,58 스테파노의 죽음

 

그리스도처럼 성문 밖에서 고난을 겪은 스테파노

하늘 나라와 당신의 영광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세상에서 뽑으신”(요한 15,19) 주님께서도 성문 밖에서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스테파노도 세상의 나그네처럼 도성 밖에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스테파노는 이승에서는 영원한 도성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장차 올 도성을 온 마음을 다해 추구했습니다. 마침내 박해자들이 돌을 집어 들자 이 순교자는 그 순수한 마음의 눈을 햐늘로 향했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바오로 안에서 역사하신 하느님의 권능

이 일이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보여 주기 위해 저자가 바오로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이야기하는지 보십시오. 그 모든 일을 보고도 바오로는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를 처벌하는 일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7,59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느님께서 표징을 통해 사람들을 부르시다

이것은 스테파노의 얼굴이 천사처럼 보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계략을 그들이 당신을 생각하게 만드는 도구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에게 했던 것처럼 역시 성 밖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음 그 자체가 고백이요 선포였습니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사람들이 돌을 전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자신이 죽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보이고 또한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쓰러지는 것이 일어나는 것

오, 순교자여, 행복한 죽음을 가져오는 싸움에 나서시오. 처벌이 영광이요 쓰러지는 것이 일어나는 것인 순교, 살해당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상으로 받는 불멸을 얻는다. 보라, 이처럼 죽는 자격을 얻음은 끝없이 복된 삶의 시작이었네. (아라토르 『사도행전』)

 

7,60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분노에서 벗어나라

싸움은 늘 필요한 것이 아니지만, 담대함은 늘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분노하여 그런 일을 한다면, 그것은 미숙한 열정으로 보일 뿐 담대함은 아닙니다. 온화하게 그 일을 하는 것이 진정한 담대함입니다. 담대한 언명은 성공이고 분노는 실패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고자 한다면, 누가 우리의 말을 분노의 표출이라 보지 않게 하려면 분노를 초월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말이 아무리 옳을지라도, 분노를 담아 이야기하면 모든 것을 망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담대하게 이야기하고 아무리 공명정대하게 꾸짖을지라도 그렇습니다. 이 사람이 그들에게 이야기할 때 분노라고는 보이지 않은 것을 보십시오. 예언자들의 말을 상기시켰을 뿐입니다. 그는 끔찍한 수난을 당하면서도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 말은 분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슬퍼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의 모습을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의 얼굴이 그렇게 보인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믿음에 들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분노를 벗어 버립시다. 분노가 있는 곳에는 성령께서 계시지 않으며, 분노에 찬 이는 저주받는 이입니다. 분노가 뿜어 나오는 곳에서는 유익한 것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원수들을 위해 무릎을 끓고 기도한 스테파노

스테파노는 자기를 위해서는 서서 기도했고, 원수들을 위해서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이 복된 순교자의 적은 이처럼 놀라웠습니다. 자신을 체포한 이들에게 믿음 없음을 무섭게 꾸짖을 만큼 열정에 불탔던 그는 사랑으로도 불타는 사람이어서 죽음의 순간에도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완전한 자애

그는 자기를 죽이려는 이들을 위해 죽음으로써 그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형제들을 위해 죽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그것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완전해지기 위해 태어납니다. 사랑이 완전한 상태에 달하면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필리 1,21-24). 그는 그들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었지만, 그 사람들을 위해 살기를 택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요한1서 강해』)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