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사도행전 주해

8,25-33 필리포스와 에티오피아 내시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4|조회수3 목록 댓글 0
8,25-33 필리포스와 에티오피아 내시


25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의 말씀을 증언하고 전파한 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사마리아의 많은 마을에 복음을 전하였다.
26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그것은 외딴길이다.”
27 필리포스는 일어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면서,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29 그때에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하고 이르셨다.
30 필리포스가 달려가 그 사람이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서,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러자 그는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서,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러하였다.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 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8,25 사도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다

 

전장의 장수처럼 행동한 사도들

사도들은 악의 폭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 그들을 잡아 죽이려고 사람들이 날뛰는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바로 전쟁터의 장수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장수들은 전투가 가장 치열한 곳에서 진두지휘합니다. 그들이 사마리아로 간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듯이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박해로 쫓겨 간 것입니다. 이제는 사마리아인들이 아니라 신자가 된 사람들에게로 사도들이 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 보냈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마법에서 해방시키려고 이 들을 보낸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사마리아의 많은 마을에 복음을 전하였다.” 사도들이 여행의 경로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목적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을 눈여겨보십시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8,26 주님의 천사

 

천사들이 선포를 돕다

천사들은 직접 선포를 하지는 않지만 그 일을 하도록 이들을 부릅니다. 이 절의 말씀도 놀라운 일례를 보여 줍니다. 예전에도 희귀했고 지금도 좀처럼 행해지지 않는 일이 여기서는 얼마나 쉽게 일어나며 그들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되고 있습니까?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가자로 가는 길

이 이야기에서 ‘광야’는 가자가 아니라 가자로 가는 길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족의 땅과 이집트의 국경’이었던 옛날의 가자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그것을 대신해 다른 장소에 새로운 가자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의적으로는 예언자들의 가르침으로 배우지 못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서 배제되었던 다른 민족들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에서 이곳으로 가는 길이며 구원의 샘물이 흘렀던 그 길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께서는 천상 예루살렘에서 나약한 우리에게로 ‘내려오셨으며’, 죄가 많아 시커먼 우리를 세례의 물로 희게 만드셨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8,27 에티오피아 여왕의 내시

 

마침내 자기가 구하던 그리스도를 찾은 내시

이 내시는 덕과 마음의 순수함을 지녀 남자로 불렸습니다. 오로지 성경만을 공부했으며 길을 가는 중에도 성경 읽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는 충분히 그렇게 불릴 만했습니다. 또한 여왕의 궁전을 떠나 세상의 끝에서 주님의 성전까지 온 그는 자신의 신앙을 지극히 사랑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합당한 보상으로 “그는 자기가 읽고 있는 글의 뜻을 알고자 하는 동안에, 자신이 찾고 있던 그리스도를 발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히에로니무스가 이야기하듯이, “그는 회당의 금으로 된 성막 안에서가 아니라 광야에서 교회의 샘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에서 예레미야가 사람들이 놀라리라고 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에티오피나 사람이 자기 피부색을 바꾸어’, 곧 자기 죄의 얼룩을 세례의 물로 씻고 하얗게 빛나는 모습으로 예수님께로 올라갔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에티오피아의 여왕은 표상이다

에티오피아의 여왕이 민족들의 보물을 예루살렘으로 보낸 것은 교회가 덕과 믿음의 선물들을 주님께 가져가리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여왕의 이름에도 각별한 뜻이 있는데, 히브리 말로 ‘칸다케’는 ‘교환된’이라는 뜻입니다. “들어라,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여라.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안을 잊어버려라”(시편 45,11)라는 성경 구절과 이어지는 말은 그녀에게 주어진 노래였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칭찬 받아야 할 내시

내시가 지금 왜 여행길에 있는지 아시지요? 그것만으로도 하느님을 경외하는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경배하려고 그가 얼마나 먼 길을 마다 않고 왔습니까? 그 시대 사람들은 아직도 경배는 한곳에서만 올리는 것이라 생각하여, 그곳에서 기도를 올리기 위해 먼 길을 왔습니다. 물론 이 내시도 그래서 하느님께 경배를 바치려고 유대인의 제례가 이루어지는 성전에 온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8,28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다

 

에티오피아 내시의 열정

여행길에 있을 때 물론 수레에 타고 있을 때조차 읽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집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며 성경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내시를 잘 보십시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8,29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말씀하시다

성령께서 필리포스의 마음에 대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영은 보이지 않는 권능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전함으로써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십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8,30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겸손히 공부하는 자

그는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을 고백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배움을 청한 그에게 성령의 은총이 주어졌습니다. 무지함을 고수한 유대인들에게 꼭 맞는 격언이 있습니다. “무지한 이에게는 죽음이 내린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 죄 안에서 죽기 때문이다”(잠언 24,9). (아타나시우스 『축일 서간집』)

 

무지를 인정하는 자

사도가 다가가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내시는 사도를 물리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가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자기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여 그냥 무지한 채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창세기 강해』)

 

8,31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구하는 이는 찾는다

그는 청해야 했습니다.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라는 필리포스의 말은 그 내시가 성경 말씀의 뜻을 모른다는 사실을 필리포스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또한 그 말은 그 책 속에 담긴 보물이 진정으로 귀한 것임을 알려 주기도 합니다.

그는 ‘당신 누구요?’ 하고 묻지 않았습니다. 허세를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 내용을 안다고 하지 않고 모른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배웁니다. 그는 필리포스가 그 내용에 대해 알 뿐만 아니라 기꺼이 가르쳐 주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그 내시는 간절히 알고자 했고 배움의 길을 주의 깊게 찾았기에,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마태 7,8)이라는 말씀이 그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8,32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가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그는 한 마리 양처럼 “희생 제물로 바쳐지기 위하여 끌려갈 때 반항하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스스로 수난의 길을 갔습니다”. 파스카 축제 때의 관습에 따라 양을 잡듯이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1코린 5,7)도 그렇게 희생되셨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 양처럼

그분은 당신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당신의 털로 우리를 입히셨습니다. 불신앙으로 차가운 사람들을 당신의 옷으로 따뜻하게 해 주시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 3,27) 하고 말하는 사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수난을 당하시며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와 대제관들에게는 겨우 몇 마디만 하시고 헤로데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우리를 구원하는 양

그분은 양으로 불리십니다. 우둔한 양이 아니라 고귀한 피로 세상의 죄를 씻는 양,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자코 있을 줄 아는 양이십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8,33 권리를 박탈당하다

 

불의한 단죄

만물의 심판자께서 공정한 심판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죄 없는 그분이 유대인들의 선동과 빌라도의 말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으셨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