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4-48 다른 민족 사람들이 성령을 받다 44 베드로가 이러한 일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성령께서 내리셨다. 45 베드로와 함께 왔던 할례 받은 신자들은 다른 민족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46 이 다른 민족 사람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면서 하느님을 찬송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베드로가 말하였다. 47 “우리처럼 성령을 받은 이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48 그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그들에게 지시하였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러 달라고 청하였다. |
▶ 다른 민족들을 교회로 불러들이는 일에 성령께서 앞장서십니다. 이는 다른 민족들에게 마음이 열려 있는 베드로가 자신의 행위가 하느님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사건은 특별해 보이지만 복음 선포 과정 내내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행위가 조금 더 분명히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현대 주해가들 가운데는 다른 민족 사람들이 어떻게 세례도 받기 전에 성령을 받았는가를 따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세례와 성령의 관계가 다른 곳과 다르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여기서는 성령께서 내리신 뒤에 세례가 이루어진 것으로 기술되는 반면, 사도행전 2,38에서는 세례를 받아야 성령께서 내리시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8,16에서는 세례가 이루어진 뒤가 아니라 안수를 하자 성령께서 내리시며, 19,5-6에서는 세례와 안수가 있고 나서 성령의 은사가 내리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카이사리아에서 일어난 일들은 예외적인 일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루카는 여기에는 정해진 순서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10,44 모든 이에게 성령께서 내리셨다
베드로
하느님의 섭리가 어떤 식으로 역사하는지 잘 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베드로의 설교가 끝나기를, 또 베드로의 지시로 세례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시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마음이 칭찬받을 만한 것임을 확실히 보여 주시자 그로써 가르침이 시작되었고, 그들이 세례는 분명 죄가 용서되는 것임을 믿자 즉시 그들에게 성령께서 내리십니다. 베드로가 자신이 믿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주시고자 하느님께서 일이 이렇게 진행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단지, 성령께서 내리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민족 사람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일이 매우 못마땅했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다른 민족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들과 함께 이 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과 함께 깨닫게 되려고 그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성령의 증언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세례 주는 것을 주저하는 일이 없도록 성령의 증언이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의 물로 성화가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이들에게는 세례의 물로 씻기기도 전에 성령께서 예기치 않게 먼저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런 일은 다른 민족들의 신앙과 관련하여 한 번 일어난 바 있으나 유대인들에게는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쏟아져 내리는 성령
여러분은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내리시는 분은 예수님만이 아니며, 그분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말을 듣는 이에게 실제로 하느님의 영을 전한다는 사실을 알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에게 이야기하는 대목을 보십시오. 코르넬리우스와 그와 같이 있던 사람들은 성령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느님의 말씀을 말하고 깨끗한 양심으로 성실히 그 말씀을 실천한다면, 여러분이 이야기하는 동안에 성령의 불이 여러분의 말을 듣는 이들의 가슴을 태워 즉시 그들을 뜨겁게 만들고, 그들이 자기가 배운 것을 실천하고자 여러분이 가르치는 것을 열렬히 행하게 만들 것입니다. (오리게네스 『로마서 주해』)
10,45 다른 민족들에게도
구분의 벽을 허물라
그들은 더 이상 다른 민족이 아닙니다. 그들이 세례를 받기 전에 성령을 받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루카는 말합니다. 베드로는 이들이 다른 이들과 다른 방식으로, 훨씬 나은 방식으로 세례 받았음을 보여 줍니다. 이 일이 이런 식으로 일어난 것은 베드로를 적대하는 자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야만 그들도 자기들과 동등한 존재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0,46 신령한 언어로 말하다
필요한 정도까지 우리를 놀래시는 하느님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을 때, 거룩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령을 받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했습니다. 불신앙이 최고조에 달한 때였던 만큼 기적이 풍성히 일어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은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는 이들의 구원과 치유와 유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티오키아의 세베루스 『성경 주해 선집』)
10,47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겠습니까?
성령께 복종하는 베드로
베드로의 이 말은 자신이 그런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려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예언하는 것을 듣지 않았더라면, 베드로는 결코 그렇게 선뜻 그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들었기에 그는 “우리처럼 성령을 받은 이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레네우스 『성경 주해 선집』)
물로 주는 세례의 필요성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이렇게도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로 주는 세례가 이루어지기 전에 성령께서 내리셨을 때에, 사도는 일이 거기서 끝났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물에 의한 세례가 필요하며 쓸데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이런 말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성령을 받은 이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이중 정화
사람은 영혼과 몸이라는 두 본질로 이루어져 있어 정화도 이중으로 이루어집니다. 비물질적인 부분은 비물질적인 방식으로, 물질적인 육신은 물질적인 방식으로 정화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물은 육신을 정화하고 성령은 영혼에 인장을 찍으십니다. 성령에 의해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히브 10,22)지는 것입니다.
물로 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을 받기에 합당치 못한다고 여겨진 이고 온전한 은총을 받지 못하며, 행실에서는 나무랄 데 없지만 물로 주는 세례의 인장을 받지 않은 이도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렇게 단언하신 분은 예수님이시십니다. 성경에 코르넬리우스는 천사의 발현을 보는 영광을 입었고 기도와 자선이 하느님 앞으로 올라가 좋게 기억되고 있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갔을 때,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내리시어 그들은 신령한 언어로 말하며 예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성령의 은총이 내린 뒤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지시했다고 전합니다. 그것은 영혼이 믿음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의 육신도 물에 의한 세례로 은총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키릴루스 『예비신자 교리교육』)
10,48 베드로가 세례를 받으라고 그들에게 지시하다
이름의 단일성
거룩한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교회의 규정입니다. 그러나 루카는 이 책에서 세례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언급합니다. 암므로시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름의 단일성을 통해 신비가 완성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라고 말할 때, 그것은 아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아버지 하느님과, 성령을 부음받으신 아들과, 부어지신 성령을 동시에 부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과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버지’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분의 아들과 그분 입에서 나오는 성령을 동시에 지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이라고 할 때, 여러분은 성령의 근원인 아버지 하느님도 부른 것이며, 성령은 아들에게서도 비롯하므로 아들도 부른 것입니다. 그래서 합리적 판다느에 권위를 더해 주듯, 성경은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사도 1,5)라는 말로 우리가 성령으로도 세례 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사도도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1코린 12,13)라고 합니다. 이 문제를 보는 또 다른 시각에 따르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받는 것은 참으로 적절한 일입니다. 사도의 말처럼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로마 6,3) 때문입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