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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11,13-18 할례를 주장하던 사람들이 설득당하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4|조회수1 목록 댓글 0
11,13-18 할례를 주장하던 사람들이 설득당하다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5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 사도행전 11장 13절을 기점으로 논쟁은 율법에 따른 정결함의 문제에서 구원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성령 안에서의 세례에 관한 예수님의 예언적 말씀을 전하는 사도행전 11장 16절은 사도행전 1장 5절의 반복이며, 네 복음서 모두에서 보이는 말씀들과 연결됩니다. 이처럼 루카는 베드로가 그 일을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루카는 한 무리의 다른 민족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내리신 축복을 나누게 되는 이 사건으로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과 한 박해자가 어떻게 차례차례 교회의 일원이 되었는지 그 절정을 보여 줍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이 계시는 일찍이 예고되었던 대로 예루살렘에 크나큰 기쁨을 가져왔으며, 예루살렘 공동체는 이 일이 생명으로 가는 길임을 깨닫게 됩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다른 민족 사람들을 교회에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논쟁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올바른 믿음과 삶의 태도에 근거하여 그들도 믿는 이들에 속함을 단언해 줄 결정적인 사건이 필요했습니다. 현세의 삶에서 일어난 이 사건으로 미래의 심판이 면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성령 안에서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들이 깨달은 것 또 하나는 고치고 회개하는 데 늘 열려 있는, 곧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홀로 성덕을 쌓으려는 것은 유혹임을 깨닫게 된 겸손이었습니다.

 

11,15 성령께서 내리시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음을 보여 주는 베드로

성령께서 내리신 일은 애초부터 사도가 계획한 것이 아님을 보여 주기 위한 보증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자기 생각에 따라 그 일을 행했고 성령께서 내리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처음부터 그들이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도록,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1,16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다

 

세례의 종말론적 성격

사람들은 그리스도만큼 위대하지 못했던 요한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이분이 메시아이실 거야’ 하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요한보다 위대했던 그분이 오셨을 때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눈에 보이는 것이었고, 그리스도의 세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루카 3,16)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십니까? 그분께서는 또 언제 ‘불로’ 세례를 주십니까? 주님은 ‘성령과 불로’ 동시에 세례를 주십니까, 아니면 따로따로 주십니까? 그분께서는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사도 1,5)이라고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신 뒤에 사도들은 ‘성령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로’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요한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독사의 자식들”(루카 3,7)이라며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과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은 받아들였습니다. 이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불 칼”(창세 3,24) 가까이 있는 불의 강에 서 계실 것입니다. 이승을 떠난 뒤 낙원에 들어가고자 죄 씻음을 원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이 강에서 세례를 주시고 그가 소망하는 곳으로 건네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승에서 세례를 받은 표시가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불에 담그는 세례를 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요한 3,5) 세례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불의 강가에 이르면 자신이 물과 성령의 세례를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세례도 으레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영광과 권능이 세세 영원히 있나이다. (오리게네스 『루카 복음 강해』)

 

11,17 하느님께서 똑같은 선물을 주시다

 

자기만 거룩하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베드로는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사람들이 아무 말도 못하게 ‘똑같은’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베드로의 말은 ‘그들이 믿자,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를 믿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는 그들을 깨끗한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또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 모든 일이 그 사건에 대해 명쾌히 보고한 베드로의 웅변을 통해 이루어진 것을 보십니까? 그들은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회개하도록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말을 듣고 겸손해졌습니다. 이로써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1,18 하느님을 찬양하다

 

예고된 찬양

교회는 아직 다른 민족들에게로 퍼져 나가지 못했습니다. 유대아에 사는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는 믿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그리스도께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사도들이 다른 민족들에게 파견되었고, 말씀이 코르넬리우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는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의 친척과 친지들도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세례를 받게 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여러분은 아십니다. 천사가 코르넬리우스가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냈고,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의 집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코르넬리우스는 다른 민족에 속한 사람이었으므로 그와 그의 친지들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그의 일행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주저 없이 복음을 전하도록 하려고 코르넬리우스와 친지들이 세례도 받기 전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신령한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성령께서 세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내리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세례가 주어지기 전에 내리셨습니다. 베드로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어도 좋을지 망설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리셨고,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물이 주어짐으로써 눈에 보이는 성사를 주어도 되는지에 대한 의심이 모두 걷혔고 그리하여 그들 모두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경에 “사도들과 유다 지방에 있는 형제들이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듣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사도 11,1)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시온이 듣고 기뻐하며 유다의 딸들이 즐거워하니”(시편 97,8)라는 시편의 말씀이 가리키는 것은 이들이 바친 감사의 기도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시편 상해』)

 

그들이 하느님을 찬양하다

이런 것이 바로 복된 욥에 관한 책에서 읽는 것입니다. “북녘에서 금 빛살이 솟아오르니 두려운 찬미가 하느님께 바쳐집니다”(37,22). 이는 다른 민족들이 차가운 가슴 안에서 믿음의 광채가 먼저 생명을 얻어 피어오르자, 이 예기치 않은 믿음을 보고 유대인들이 두려움에 떨며 하느님을 찬양한 것을 가리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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