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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13,16-25 바오로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약술하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5|조회수1 목록 댓글 0
13,16-25 바오로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약술하다


16 그러자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18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21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22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 루카는 여기서 처음으로 바오로의 설교를 전합니다. 이 설교는 이스라엘 역사, 곧 하느님께서 여러 지도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보살피신 일과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하신 일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앞에 나온 설교들은 회개를 불러일으키는 과정이 정점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면, 이 설교는 예수님께서 선택된 백성의 역사 안에서 예고되었던 분이심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루카는 바오로의 선교 활동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그가 바르나바보다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바오로의 설교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증언하고 뿐만 아니라, 바오로가 많은 예언을 예증으로 들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 하나로만은 완전히 입증하지 못하며, 두 성경은 서로의 감추어진 뜻을 풀어 주는 열쇠임을 보여 줍니다. 또한 바오로가 인용하는 세례자 요한의 선포도 완전히 계시된 복음에 담겨 있는 위대한 신비들에 대해 암시해 줄 뿐입니다.

 

13,16 바오로가 일어나다

 

바오로를 앞세운 바르나바

바르나바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존경을 받고 있었지만, 요한이 모든 일에서 베드로를 앞세웠던 것처럼, 자신이 타르수스에서 데려온 바오로를 앞세웠습니다. 실로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고, 이 두 사람은 그것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3,18 하느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인의 소행을 참아 주시다

 

하느님의 선의를 강조한 바오로

바오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힘들었던 시절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갑니다. 하느님의 친절하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며 나머지는 그들의 생각으로 남겨 둡니다.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이때에도 바오로는 그들의 배은망덕한 소행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하느님의 친절하심만을 이야기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3,23 이스라엘의 구원자

 

구약성경과 복음서는 서로를 확증한다

바오로는 현재의 일들과 예언자들의 말을 자신의 설교에 인용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보내셨다고 한 다음 요한의 말을 인용하여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다고 합니다. 사도들이 부활의 증인이듯 다윗도 증인입니다. 구약의 증거들은 후대의 증거와 함께 제시될 때 비로소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며, 후대의 증언들도 앞 시대 증언의 보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이 두 가지를 다 사용하여 설득력 있는 설교를 한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3,24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요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구약성경은 그분에 대해 예고했지만 ‘세상에 오신 분’을 보여 주지 않았으므로 ‘복음서’는 아니지만, 신약성경은 그 전체가 복음입니다. 신약 전체가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는 복음서의 시작과 비슷한 방식으로 말하고 있을뿐더러 복음서가 복음이게 만드신 분의 가르침과 그분께 대한 다양한 찬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리게네스 『요한 복음 주해』)

 

13,25 요한은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이 있는 사람

신발에 관한 이 말에 신비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발은 하느님의 아들께서 살과 뼈를 취하심으로써 완전한 인간이 되신 것을 나타냅니다. 당신을 낮추심이 드러난 것은 저승으로 내려가신 것, 곧 영과 함께 감옥으로 가신 일입니다. 베드로는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1베드로 3,18-20)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뜻을 제대로 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으로 부복하여, 예수님께서 저승으로 가실 때 함께 가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신성의 신비는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고자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인성을 당신의 신발처럼 취하신 것입니다. 인성을 취하신 분께서는 죽음도 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로마 14,9)입니다. 그분께서 산 이들과 죽은 이들, 곧 땅의 주민들과 저승의 거주자들을 다 입으신 것은 죽은 이들과 산 이들 모두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몸을 굽혀 그런 분의 신발 끈을 풀 수 있으며, 그 끈을 푼 다음 그것들을 떨어지게 놓아두지 않고 그가 받은 두 번째 것으로, 그것들을 집어 들어 그 뜻을 자기 마음속에 간직함으로써 그것들을 지닐 수 있습니까? (오리게네스 『요한 복음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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