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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13,34-41 바오로가 부활을 선포하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5|조회수2 목록 댓글 0
13,34-41 바오로가 부활을 선포하다


34 또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리시어 다시는 죽음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게 하신 것을, 이렇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다윗에게 약속한 거룩하고 확실한 것들을 너희에게 주겠다.’
35 그래서 다른 시편에서는 ‘당신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가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36 다윗은 일생 동안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고 나서 잠든 다음, 조상들 곁에 묻혀 죽음의 나라를 보았습니다.
37 그러나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키신 그분께서는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38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죄의 용서가 선포됩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여러분이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될 수 없었지만,
39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 안에서 모든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됩니다.
40 그러니 예언서들에서 말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미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41 ‘보아라, 너희 비웃는 자들아! 놀라다 망해 버려라. 내가 너희 시대에 한 가지 일을 하리라.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어도 너희가 도무지 믿지 못할 그런 일이다.’”

▶ 바오로의 설교는 부활의 결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죄의 용서와 모세의 율법과 상관없이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믿음을 통한 의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 대목이 유일합니다. 루카에게 ‘의롭게 됨’은 죄의 용서에 대한 또 다른 표현입니다. 부활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약속의 완성이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넘어서도 사는 이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썩지 않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율법은 사람들을 죽음에서 자유롭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용서는 곧 이 자유를 의미합니다. 이 자유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에게 사람들의 증오에 맞서, 그분의 처형을 요구한 이들에게 조차 그분의 용서를 전할 힘을 줍니다.

 

13,35 당신의 거룩한 이가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의 희망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무덤에서 다시 일어나시어 변치 않는 참된 주님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무덤에서 우리가 고대하는 부활로 일어남으로써 그분께서 거룩한 영광 속에 돌아오실 때 타고 계실 구름을 향해 하늘로 달려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안티오키아의 세베루스 『성경 주해 선집』)

 

13,38 예수님을 통하여 죄의 용서가 선포되다

 

죄의 용서에 대해 설명한 바오로

바오로는 ‘모세의 율법으로는 여러분이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되지 않는다’가 아니라 “의롭게 될 수 없다”고 합니다. ‘누구나’, 곧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합니다. 유익을 가져오지 못하는 규정들은 쓸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불가능한 것을 먼저 이야기한 다음에 용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것이 더 위대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는 ‘그분을 죽인 백성들’ 앞에 ‘그분의 중인들’을 내세웁니다. 이들이 거룩한 권능에 의해 힘을 부여받지 못했다면, 이들은 그분의 증인들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사도 13,33)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 말씀에 기반합니다. 바오로는 그분을 통해 되의 용서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왜 다른 출처들을 대어 그들을 납득 시키지 않았을까요? 그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먼저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면 자른 것들은 논쟁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진실로 죄의 용서는 ‘그분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람들이 이 위대한 것을 갈망하도록 만들고자 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3,39 믿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된다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모세의 율법의 불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키기 어려웠고, 모든 규정을 완벽하게 따른 이들만을 의롭다고 인정했습니다. 율법 아래에서는 한 가지 잘못만 저질러도 모든 되를 저지른 셈이 되는 까닭에 사람들을 바로잡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따라서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만들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의롭게 만들 수 없는 율법이었기에 사람을 바로잡을 수도 없는 율법의 무력함은 사람들이 율법의 규정들을 지킴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암모니우스 『성경 주해 선집』)

 

13,40 조심하십시오

 

이스라엘에게 이로운 것

바오로는 사람들이 자기가 한 말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고 이 주제 조상들의 배은망덕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벌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하며, 그들이 사랑하는 것. 곧 율법이 폐기되는 것을 보여 주고는 그들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크나큰 축복이, 순종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크나큰 재앙이 내릴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가 조상들의 배은망덕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 않고 그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스테파노가 조상들의 배은망덕에 관해 길게 이야기한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곧 죽음을 당하리라는 것을 안 그는 율법이 지금도 폐기될 시점에 놓였음을 그들에게 가르친 것이 아니라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두려운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만 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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