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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14,21-28 제자들을 북돋우고 안티오키아로 돌아간 바오로와 바르나바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5|조회수2 목록 댓글 0
14,21-28 제자들을 북돋우고 안티오키아로 돌아간 바오로와 바르나바


21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은 다음,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24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25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28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 첫 번째 선교 여행이 여기서 끝납니다. 바오로는 단지 복음을 선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여러 곳을 옮겨 다닌 사실을 루카는 여러 번 언급합니다. 바오로가 ‘원로들’을 임명했다는 루카의 말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바오로 서간은 친필 서간이나 차명 서간을 막론하고 수신인이 원로인 것이 한 편도 없고 자기가 지명한 원로들에 대해 본문에서도 이야기하는 적이 없습니다. 교부들은 이 선교 활동 중에 일어난 사건들을 독자들이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도덕적 교훈으로 이용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박해받는 길을 일부러 찾아다니지는 않으며 희생자가 되는 것을 즐기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하는 자들로부터 시련과 증오, 나아가 죽음에 이르는 박해까지도 당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이들에게는 천상의 기쁨과 진복을 약속하셨습니(마태 5,11-12). 이런 예수님의 말씀이 바오로와 바르나바에게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들이 제자들에게 한 말에서만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에서도 보입니다. 이런 어려움들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기보다는 우리를 더욱 튼튼하게 하며 우리의 약함 안에서 작용하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여 줍니다.

 

14,22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환난을 기쁘게 맞는 사람들

이 사도들은 말로도 이렇게 가르쳤고 행동으로도 보여 주었습니다. 사도들과 제자들은 선교 활동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선포의 힘과 그들도 그런 일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였습니다. 믿는 이들이 가만히 앉아서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고대하지 않고 시련을 맞을 태세를 갖추고서 씩씩하게 버틸 수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전에 나에게서 보았고 지금도 나에 대하여 듣는 것과 똑같은 투쟁”(필리 1,30)이라고 한 것입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루카 10,20)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서도 그들은 그것을 배웠습니다. 참되고 순수한 기쁨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떤 고난이라도 겪는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헛된 것을 좇는 사람들

우리는 비난과 혹평으로 잘못된 욕정을 죽이고 건강을 되찾게 해 주는 약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족시키려는 잘못된 욕망에서 선한 척하는 사람들은 어떤 것도 얻지 못하며 참된 삶 자체에 대해 계략을 꾸미는 사람입니다. (대 바실리우스 『도덕 규칙』)

 

믿는 사람은 시련을 이겨 냄으로써 자격을 인정받는다

“주님께서는 온갖 환난에서 나를 구하셨네”(시편 34,5)라고 쓰여 있습니다. 의인의 삶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 길은 좁고 또 좁으며 의인에게는 불행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자신이 온갖 환난을 겪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으(2코린 4,8), 여기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거룩한 이들을 환난에서 구해 주시지만, 그들이 시련을 겪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그들에게 인내라는 축복을 내리심으로써 그들을 구하십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자아냅니다”(로마 5,3-4). 환난을 거부하는 이는 하느님께 인정받을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리는 것입니다. 경쟁 상대 없이는 아무도 승리의 관을 받을 수 없듯이, 고난을 겪지 않고서 자격을 인정받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고난을 겪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으심으로써가 아니라 견디어 낼 수 있도록 고난을 이겨 내는 시련을 거치게 하심으로써 “온갖 환난에서 나를 구하십니다”. (대 바실리우스 『시편 강해』)

 

14,27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신 모든 일을 선포하다

 

선교 활동이 굳건히 자리 잡도록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해 주신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겪은 시련을 통해 이루어진 일들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그곳에 간 것은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굳건히 자리 잡도록 성령께서 섭리로 그들을 인도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오로는 다른 민족들에게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묻지 않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갈라 1,16)라고 한 것은 이것을 가리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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