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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15,1-5 할례에 관한 논란이 일어나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5|조회수1 목록 댓글 0
15,1-5 할례에 관한 논란이 일어나다


1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2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3 이렇게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파견된 그들은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 가면서, 다른 민족들이 하느님께 돌아선 이야기를 해 주어 모든 형제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4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들과 원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
5 그런데 바리사이파에 속하였다가 믿게 된 사람 몇이 나서서,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 주해가들은 이 장을 사도행전의 중심이자 전환점으로 봅니다. 바오로는 갈라티아서 2장 1-10절에서 예루살렘으로 간 것은 계시를 받고 한 자신의 결정이었다고 이야기하는 데 반해, 루카는 안티오키아 교회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 이들을 파견한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바오로의 글에 따르면 이 논쟁은 안티오키아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먼저 제기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누가 이 논쟁을 먼저 일으켰는지에 관해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루카가 이야기하는 사건과 바오로가 이야기하는 사건이 각기 다른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는 반면, 다른 사건으로 볼 만큼 이 두 기사의 차이점이 크지 않다고 주장하는 해석자들도 있습니다. 이 중대한 사건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의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교회 역사의 초기에도 이견과 논쟁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시대의 교회를 통일된 견해를 지닌 작은 집단이라고 보는 낭만적인 시각이 흔하지만, 이교인 켈수스에게 이런 논쟁은 그리스도 신앙의 진실성을 따져 묻는 논거가 되었습니다.

 

15,1 믿는 이들을 가르치다

 

교의 논쟁은 초대교회에도 있었다

켈수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집단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그들은 소수였고 의견도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퍼져 나가 큰 무리가 되면서, 의견이 분분해지고 서로 갈라져서 저마다 자기 파를 만들려 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이런 것을 원했습니다.” 나중에 큰 무리로 늘어났을 때와 비교해서 그리스도교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무척 소수였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자는 또 ‘그들은 의견도 통일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말에서 보듯이, 초기부터 신자들 사이에 어떤 책이 거룩한 책인가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가 있었다는 것도 그자는 알지 못합니다. 적어도,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본 이들이 그분의 계명을 가르칠 때에도 유대인 신자들 사이에서 믿음으로 돌아선 다른 민족 사람들에 관한 결코 사소하지 않은 논쟁이 일어난 바 있습니다. 그때의 문제는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들의 전통 관습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게 된 다른 민족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지 않도록 깨끗한 고기와 그렇지 않은 고기를 구별하는 부담을 지우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리게네스 『켈수스 반박』)

 

15,2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예루살렘으로 가다

 

사도행전과 갈라티아서의 불일치

바오로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갈라 1,17)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그가 자발적으로 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 파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도는 배우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그곳에 갔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할례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나중에 사도들도 그에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그 유대인들은 바오로가 신앙의 사도 자격이 없다고 여겨, 예루살렘에 사는 이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반대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리로 올라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바오로와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고 그에게는 스승이 필요 없었습니다. 형제들은 그가 그 문제들에 대해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바오로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들을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경 주해 선집』)

 

율법의 중요성

초기 교회의 신자들은 큰 열성으로 많이 탐구하며 교의를 논했고, 그런 논의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는 것, 그리고 안티오키아의 신자들이 논쟁 해결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사람을 보내는 일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물음은 신성이나 아들의 강생, 성령, 또는 천사나 권능, 하늘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 생식기의 지극히 작은 부분에 대한, 곧 할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5,18)라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제자들은 스스로 결정 내리기를 겁냈습니다. 그러나 안티노키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의 의견을 물으려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파견한 것을 볼 때 그들은 사소해 보이는 문제들에도 많은 생각을 기울였고, 이에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은 편지를 써서 유다와 실라스 편에 안티오키아로 보냈습니다. (암모니우스 『성경 주해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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