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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15,6-12 베드로가 다른 민족 사람들의 할례를 반대하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5|조회수2 목록 댓글 0
15,6-12 베드로가 다른 민족 사람들의 할례를 반대하다


6 사도들과 원로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다.
7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다른 민족들도 내 입을 통하여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를 뽑으신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8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9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10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11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12 그러자 온 회중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표징과 이적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 베드로의 이 연설은 선교 활동이나 복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교의 결정에 관한 설교입니다. 다른 민족들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이 결정은 이 회의의 유일한 쟁점이었고, 이어지는 야고보의 설교는 다른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역시 예루살렘 교회에서 제기된 문제에 관한 것이었기에 이 자리에 덧붙여졌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자로 나섭니다. 그가 예루살렘 교회의 주도적 인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 회의의 쟁점이 된 문제와 관련해 다른 민족들과 접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설교가 설득력을 얻은 것은 그가 여전히 유대인으로 살며 유대인으로서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하느님의 도구로 선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선택한 백성에게 세 가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첫째, 구원의 선물이라는 것, 둘째, 선성은 마음 안에 있다는 것, 셋째,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안에서 인성이 하나 됨을 보여 주시기 위해 육체적인 차이를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믿음의 힘을 강조하는 한편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모세의 율법대로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확인시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구원 은총을 드러내신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이 유대 백성 가운데 언제나 있어 왔으며 율법과 예언자들은 그 은총의 중개자는 아니지만 그에 대해 증언한 자들임을 알리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15,7 다른 민족들도 복음의 말씀을 듣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도구

베드로는 처음에 이 논쟁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도 유대인의 관습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저에 코르넬리우스와 관련해 그를 비난했던 사람들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을 증인으로 내세웁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를 뽑으신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라는 말은 ‘팔레스티나에서’라는 뜻일 수도 있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여러분’이라고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 입을 통하여”라는 말은하느님께서 그를 통하여 말씀하셨으며 그것이 인간의 말이 아니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고는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인정해 주셨고”. 이는 그들을 성령의 증언에 맡긴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렇게 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경 주해 선집』)

 

15,8 하느님께서 그들을 인정해 주시다

 

다른 민족들이 덕으로도 인정받다

베드로는 다른 민족들이 인정받은 것은 은총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덕을 지녔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보다 결코 못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라는 말은 참으로 옳습니다. 그들이 인정받았다는 베드로의 말은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1코린 7,19)라는 바오로의 말만큼 위대한 말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5,9 그들의 믿음으로 정화되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선물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영의 증언에 맡기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곳에서 다른 민족들을 동등한 지위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으로 우리와 똑같은 선물을 받았다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이것은 반대자들을 깨닫게 하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필요한 것은 행실이나 할례가 아니라 오직 믿음이라는 것을 그들에게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율법을 버리라고까지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율법을 끌어들이는 것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바오로도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비슷한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자랑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로마 4,2). 이 모든 말은 다른 민족들에 대한 옹호라기보다 유대인들에게 주는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정화하는 믿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마음을 정화하며, 깨끗한 마음은 하느님을 봅니다. 그러나 신앙은 때로는 스스로를 속이려는 사람들이 따르는 것이라고 정의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믿기만 하면 충분한 것처럼, 악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기는 믿으니 하늘 나라에 가서 하느님을 뵙게 되리라고 기대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영적 자애심에서 이런 사람들에게 노여움을 표하며 이렇게 묻습니다. “그대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대는 자신의 믿음에 자화자찬합니다. 그대는 많은 불경한 사람이 세상에는 신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는 하느님은 한 분뿐이라고 믿는 사실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야고 2,19). 우리의 믿음은 마귀들의 믿음과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마음을 정화하고, 마귀들의 신앙은 자기들 죄를 알게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신앙이 다름을 알아서,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압시다. 마음을 정화하는 신앙은 이런 믿음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셨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믿음, 어떤 종류의 믿음입니까? 그것은 분명 바오로 사도가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이라고 정의한 그런 믿음일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마귀들의 믿음과 다르며, 방종하고 무모한 사람들의 도덕과도 다릅니다. 그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시는 것을 바랍니다. 이것보다 더 완전한, 더 신중한 숙고 끝에 나온 정의는 없을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성령은 믿음으로 준비된 이에게 내린다

믿음이 진실되어 세례를 받기 전에도 성령을 받을 자격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그런 믿음으로 정화된 마음을 지닌 그들은 정화를 위해 육체의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15,10 하느님을 사랑하다

 

율법이 하지 못한 것을 믿음은 한다

베드로는 예언자들의 말을 끌어다 설교하지 않고, 자기들이 직접 보고 들은 현재의 일을 증거로 듭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먼저 교회 안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도록 허락한 다음에 자신의 의견을 밝힙니다. 그는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하지 않고 ‘다른 민족들’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조금씩 나아가는 점진적 전개가 더 강력한 방법입니다. 이것은 율법이 사라진 뒤에도 구원이 가능한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의 행동입니다. 그는 그들이 위험에 처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믿음은 할 수 있었던 일을 율법은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무너지면 그들이 어떻게 멸망의 길로 떨어지나 보십시오. 그는 모든 사실을 다 입증한 뒤에도 “왜 여러분은 믿지 못합니까?”라며 가혹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믿음의 새로운 법

그들이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면 베드로가 애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율법을 통해 온 것은 치유가 아니라 죄를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로마 3,20-21). 그러므로 그것이 계시 되었다면, 그것은 숨겨져 있었을 뿐이지 그 전부터 존재한 것입니다. 성전의 휘장은 그것이 감추어져 있음을 나타내었고,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것이 드러났음을 알리기 위해 그 휘장이 찢어졌습니다(마태 27,51). 그때 하느님 백성 가운데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의 은총과 원죄』)

 

15,11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받다

 

모든 구원은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해 온다

이 은총의 원수들인 당신들은 옛 시대의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 합니다. 오히려 당신들은 펠라기우스가 그의 책에서 이야기한 방식에 따라 시대를 구분합니다. 그러면서 앞선 두 시대, 곧 율법 이전과 율법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 없었다는 듯이 이야기합니다. 율법 이전의 사람들은 본성에 의해 구원받았고 그 이후에는 율법을 통해 구원받았으며, 이 마지막 시대에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는 당신들은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1티모 2,5)라는 말씀을 무효로 만들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펠라기우스 두 서간 반박』)

 

15,12 온 회중이 잠잠해지다

 

교회에는 교만이 없었다

교회 안에는 교만이 없었습니다, 베드로 다음에 바오로가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막지 않았습니다. 야고보는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 기다립니다. 요한은 아무 말도 안 합니다. 다른 사도들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가만히 있습니다. 야고보는 우두머리의 권한을 받은 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오로를 시샘하지 않았습니다. 영광을 탐할 줄 모르는 이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들입니까?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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