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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15,13-21 야고보도 이방인들 편에 서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5|조회수1 목록 댓글 0
15,13-21 야고보도 이방인들 편에 서다


13 그들이 말을 마치자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4 하느님께서 처음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모으시려고 어떻게 배려하셨는지, 시몬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5 이는 예언자들의 말과도 일치하는데,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6 '그 뒤에 나는 돌아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다시 지으리라. 그곳의 허물어진 것들을 다시 지어 그 초막을 바로 세우리라.
17 그리하여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모든 민족들도 주님을 찾게 되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하고 이 일들을 실행하니
18 예로부터 알려진 일들이다.’
19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20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
21 사실 예로부터 각 고을에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율법을 봉독하며 선포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 베드로는 다른 민족들의 할례와 그들이 모세의 율법에 따라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음식 규정을 비롯한 기타 규범들에 관한 야고보의 설교와 내용이 다릅니다. 현대 성경 주해가들은 이 설교의 사건으로 교회가 유대교와 갈라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고 봅니다. 교부들의 주된 관심은 이 회의의 과정이 교회의 숙고가 필요한 일에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과 율법과의 관계에서 본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특징이 이 기사에 담겨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회의의 쟁점, 곧 다른 민족들은 율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은 누가 발언을 하며 어느 쪽 의견이 우세를 점하느냐에 따라 동요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발언하는 사람들의 순서에도 질서가 있었습니다. 멀리서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들의 말로 시작해,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권위를 지닌 사람이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림으로써 끝납니다.

 

15,13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다

 

주교의 발언

야고보는 주교였습니다. 그래서 제일 나중에 발언합니다. 이로써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중인의 말로 확정지어야 한다”(신명 19,15 ; 마태 18,16)는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옛 시대 예언자들의 말에 근거하여 논증하는 그의 지혜를 보십시오. 그는 베드로나 바오로처럼 경험으로 입증할 것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아닌 곳에서 활동하게 되어 있는 이 두 사람에게 체험을 증거로 제시하는 역할이 주어진 것은 참으로 적절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가르칠 사람인 야고보는 이 논쟁의 원인 제공자가 아니었고 그래서 그들과 의견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태도며, 설교의 내용도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만큼 더없이 완벽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5,14 하느님의 이름을 위한 백성

 

민족들 가운데에서 선택된 이들

야고보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모으시려고”, 단순히 ‘모으셨다’가 아니라 ‘당신의 이름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다른 민족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수치스럽게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영광이 더욱 빛납니다. 야고보의 말에는 참으로 대단한 사실, 곧 이스라엘이 다른 누구보다 먼저 선택된 이들이라는 사실이 암시 되어 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5,16 다위의 초막을 다시 지으리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창조

다윗의 초막은 유대 민족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키루스 유배에서 풀어 주자 유대아로 돌아와 하느님의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파괴된 도성들을 다시 세운 뒤 오랫동안 안정하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모든 민족이 하느님께 의지해야겠구나 하고 깨닫게 하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감추어져 있는 진실한 해석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실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으로 떨어졌던 당신 성막 안에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생명으로 돌아오시자마자 곧 하느님께서 그분의 육신을 다시 살리시자마자 인간의 모든 것을 원래의 질서대로 돌려놓으시고 무너졌던 우리의 모든 것에 새로운 존귀함을 부여하셨습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2코린 5,17). 우리도 그때 그분과 함께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모든 것의 초막을 부수었지만, 아버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들을 다시 세우신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성경 주해 선집』)

 

율법이 새로워지다

다윗의 초막은 바리사이들의 배반으로 타락하고 조각난 율법의 흔적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돌아오심으로써, 다시 말해, 그분께서 육신의 모습으로 나타나심으로써 다윗의 초막은 하느님에 의해 영적 은총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도 모두 그분의 이름을 찾게 되었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15,19 하느님께 돌아선 다른 민족들

 

옛 율법을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다

반대자들은 다른 민족들을 믿음에 들여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율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강경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 사람들이 동요하자,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그들을 달랬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우리의 것이었으며 옛날에 우리가 받은 것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사실을 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자 성경에 쓰여 있지 않은 것에 관해 숙고합니다. 그러고는 적절한 순간이 왔을 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곧, 그들을 당황스럽게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부르셨다면, 이런 규정들로 그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께 대항해 싸우는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5,20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을 멀리하라

 

모든 이를 위한 법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일러라. ‘누구든지 이스라엘 집안에 속한 사람이나 너희 가운데에 머무르는 이방인이나, 어떤 피든 먹으면, 나는 그 피를 먹은 자에게 내 얼굴을 돌려, 그를 자기 백성에게서 잘라 내겠다. 생물의 생명이 그 피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 자신을 위하여 속죄 예식을 거행할 때에 그것을 제단 위에서 쓰라고 너희에게 주었다. 피가 그 생명으로 속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너희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 머무르는 이방인도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레위 17,2-12). 이스라엘 자손과 이방인들에게 똑같이 주어진 피에 관한 이 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믿는 다른 민족들에 속한 우리도 지키고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에 있는 이방인은 너희보다 점점 높아지겠지만, 너희는 점점 낮아질 것이다”(신명 28,43-44)라는 말에서 보듯이 성경은 다른 종교에서 개종한 이들을 이방인이라 부르는 때가 많습니다. 축복받은 사도회의가 피에 관하여 율법에 그렇게 쓰여 있다는 것을 알고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는 가르침을 글로 써서 다른 민족들에게 지시했기 때문에 다른 민족들의 교회도 이스라엘 민족과 마찬가지로 피에 관한 법을 따랐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속한 사람이든 그들 가운데에 머무르는 이방인이든, 먹을 수 있는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였을 때에는, 그 피를 흘리고 나서 흙으로 덮어야 한다”(레위 17,13-14). (오리게네스 『로마서 주해』)

 

15,21 모세의 율법을 선포하는 이들

 

초대교회는 유대교 율법의 일부 규정을 지켰다

지금은 다른 민족 출신 신자들에게 이 규정들을 엄격하게 지키라고 짐을 지우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 그들이 자주 율법서와 예언서를 읽게 되면 그들도 점차 생명의 원칙과 서로 사랑할 것을 요구하는 규정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초대교회는 그때도 유대교의 관습을 일부 지켰으며 이 서책들을 안식일 예배에 계속 사용했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야고보가 율법의 족쇄를 풀다

그들은 지금도 모세의 말을 듣습니다. 나약한 이들에 대한 이 얼마나 훌륭한 양보입니까! 야고보는 율법이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는 일에서는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교사로 세우고 아무것에도 해되지 않는 격려로 그들을 북돋우며 이 문제들에 관해 모세의 말을 듣도록 허락하는 한편, 다른 민족들은 그것에서 벗어나게 해 줍니다. 야고보의 지혜를 보십시오. 그는 모세를 받들고 그를 자기 민족이 따라야 할 권위로 세우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다른 민족들은 왜 모세에게서 배우면 안 되는 것입니까? 이 일들이 그들에게 낯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유대인들조차도 이 필수 사항들 이상은 지킬 필요가 없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그 규정들을 글로 써 보내지 않는 것은 그들이 그 이상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이 결정을 알려 줄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야고보는 ‘그들의 마음을 거스르지 말자’거나 바오로가 갈라티아서에서 말했듯이 ‘그들을 돌려세우지 말라’고 하지 않고 ‘그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자’고 합니다. 그는 이런 문제에 있어 성공은 성가신 일만 낳는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야고보는 이런 식으로 이 문제에 결말을 지었습니다. 그는 이 율법 규정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율법을 보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들만을 택함으로써 율법의 족쇄를 푼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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