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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16,25-34 믿음을 받아들인 간수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5|조회수4 목록 댓글 0
16,25-34 믿음을 받아들인 간수


25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26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27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28 그때에 바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하고 말하였다.
29 그러자 간수가 횃불을 달라고 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30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32 그리고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33 간수는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34 이어서 그들을 자기 집 안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였다.

▶ 베드로가 사마리아 마법사를 꾸짖었듯이(사도 8,9-24), 바오로는 그리스 로마계 점쟁이를 꾸짖습니다. 바오로와 실라스의 투옥은 사도들을 절망에 빠뜨리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느님을 찬양함으로써 우리가 시련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보기를 세워 주었습니다. 바오로와 실라스가 때어 있을 필요가 있었던 것은 단지 우리에게 밤새워 기도하라고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간수가 자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약함 안에서 그러나는 그리스도의 권능은 강한 이가 힘없는 자가 되고, 힘없는 자가 강력한 자가 되고, 죄수가 해방자가 되고, 감금의 수단이 수원의 방편으로 변모하는 이 사건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16,25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다

 

시편 저자의 본을 따른 사도들

그들은 “한밤중에 당신을 찬송하러 일어납니다”(시편 119,62)라고 한 시편 저자의 본을 따랐습니다. (암모니우스 『성경 주해 선집』)

 

찬미의 제물을 바치는 사도들

성경은 그들이 사람들 귀에 들리도록 찬미가를 불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큰 소리로 나 주님께 부르짖네. 큰 소리로 나 주님께 간청하네”(시편 142,2)라는 시편의 말씀대로였습니다. 행동으로 큰 명성을 얻은 사도들은 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 찬미의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 제물은 바오로가 말하듯이,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히브 13,15)입니다. 다윗도 같은 말을 합니다. “찬양받으실 주님을 불렀을 때 나는 원수들에게서 구원되었네”(2사무 22,4). (안티오키아의 세베루스 『성경 주해 선집』)

 

깊은 감방에서 찬미가를 바친 사도들

여기에는 사도들의 진심 어린 마음과 기도의 위대한 힘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깊은 감방에서 찬미가를 바쳤고, 그들의 찬미는 지진을 일으켜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리고 문들이 열리게 했으며 마침내 감옥 속에 묶여 있던 사람들의 사슬을 풀었습니다. 다시 말해, 믿는 이는 누구나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 없는 기쁨으로 여깁니다”(야고 1,2).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힘이 자신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자신의 약점을 자랑합니다”(2코린 12,9). 이런 사람은 바오로와 실라스와 함께 어두운 감옥에서 찬미가를 바치며 시편 저자처럼 주님께 이렇게 노래할 것입니다. “당신은 저의 피신처. 곤경에서 저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환호로 저를 에워싸십니다”(시편 32,7).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역경 속에 있을 때 더욱 힘이 나는 사람들

그들은 매질을 당한 뒤 엄청 얻어맞고 모욕을 당하고 엄청난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차꼬를 찬 채 가장 깊은 감방에 갇힌 그들은 잠자려 하지 않고 깨어 있었습니다. 의인들은 심한 환난을 겪습니다. 우리는 아무 두려움 없이 밤새 포근한 침상에서 잠을 잡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런 상태에 있었기에 깨어 있었을 것입니다. 폭군인 잠도 그들을 붙잡지 못했고, 고통은 그들을 굴복 시키지 못했으며, 두려움은 그들을 낙담시키지 못했습니다. 이런 일은 그들을 더욱 힘이 나게 만들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6,26 문들이 모두 열리다

 

구원에 필요한 유일한 기적

다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으로 간수가 마음을 돌리고 믿음을 받아들이는 데 충분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위험에 처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들입니다. 이 일은 밤에 일어났습니다. 사도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을 위해 일했기 때문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역으로 행하시는 하느님

감옥이 흔들린 것은 믿음 없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무너뜨리고 간수를 자유롭게 풀어 주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차꼬의 본성이 어떻게 차꼬를 없애 버리는지를 보십시오. 주님의 죽음이 죽음을 죽음에 처했듯이, 바오로의 차꼬는 수인들을 자유롭게 하고 감옥의 기초를 뒤흔들었으며 감옥의 문들을 열었습니다. 원래 차꼬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정반대의 일을 합니다. 본래 차꼬는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지만, 이 차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런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6,28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이 일이 한밤중에 일어난 까닭

이 일은 한밤중에 일어났습니다. 사슬이 다 풀리고 문들이 모두 열렸습니다. 그것은 간수를 위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일어난 것입니다. 바오로의 말을 보면 죄수들은 자신들이 자유로워진 것을 몰랐던 것이 분명합니다. “바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라고 했다고 전하기 때문입니다. 죄수들은 감옥 문이 모두 열렸고 자신들이 자유로운 몸이 된 것을 알았더라면 그 안에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죄수들은 낮에는 그렇지 않지만 밤에는 대체로 묶여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다시 제대로 잘 묶였는지 자고 있는지를 간수가 잘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낮에 일어났더라면 큰 소동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6,29 간수가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리다

 

믿은 이와 믿지 않은 이들

그 무서운 일이 일어난 뒤 간수만이 믿은 것은 자기 안에 힘을 지닌 사람만이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그들은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리고 문들이 모두 열리는 순간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하느님을 경멸하는 그자들은 그러한 표징을 보고서도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이 간수나 바오로의 제자들에게 그러한 이적이 일어난 이유를 들었더라면 아마도 분명 믿음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의 말씀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짧은 시간 동안 죽음을 맛보시며 저승으로 내려가셨을 때 그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땅의 기초가 뒤흔들리고 사슬이 모두 풀렸습니다. 구원자를 뵈러 가서 그분을 믿은 이들은 모두 이 간수와 그의 집안처럼 구원받았습니다. 바오로를 따르던 이들이 사슬이 모두 풀린 뒤 아침에 감옥에서 나왔던 것처럼, 이른 새벽 어둠 속에서 저승에서 돌아오시어 자유롭게 되신 그리스도께서도 부활하신 뒤 가장 먼저 당신의 충실한 제자들과 마리아와 함께 다니던 여인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며 그들의 믿음을 굳건히 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신 다음 하늘로 올라가시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감옥에서 나온 실라스의 제자들도 리디아의 집으로 가 형제들을 만나 격려해 주고 떠났습니다. (암모니우스 『성경 주해 선집』)

 

16,30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간수의 마음의 문을 연 사도들

간수가 믿음에 응답한 것은 자신이 구원받아서가 아니라 사도들의 덕에 감탄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는 하녀가 귀신에게서 풀려났고, 사람들은 사도들이 하녀를 귀신에게서 풀어 주었다는 이유로 그들을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지금은 사도들이 간수에게 문이 열린 것을 보여 주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음의 문을 열고 겹으로 채워진 사슬을 풀었으며 빛에 불을 당겼습니다. 그의 마음 속의 빛은 원래 밝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간수가 안으로 뛰어 들어가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그는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바오로는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오로와 실라스는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그 간수는 그들을 씻어 주었고 그 자신도 씻음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도들의 상처를 씻어 주었고 자신의 죄를 씻음 받았습니다. 성경은 그가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받은 것은 복된 희망과 말뿐이었습니다. 그런 데도 시뻐한 것은 그가 믿었다는, 모든 것에서 풀려났다는 표시였습니다. 그가 기뻐한 것은 자신의 생명을 구했을 때가 아니라 “하느님을 믿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6,33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다

 

신앙을 받아들인 비천한 이들

간수는 더럽고 비열하고 무식하고 온갖 죄를 안고 있고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민족 사람들도 이렇게 말합니다. 무두장이와 자색 옷감 장수와 내시와 간수, 노예들과 여자들 말고 누가 믿었느냐고 묻습니다. 우리가 높은 신분에 지위도 높은 사람들, 백인대장과 지방 총독과, 그때부터 지금까지 믿음에 든 통치자들과 황제들을 내세우면 그들은 무어라고 할까요? 이 비천한 사람들을 한 번 봅시다. 여러분은 무엇이 놀라운 일입니까? 놀라운 일은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원래 있던 어떤 것에 대해 설득되었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누가 이 비천한 사람들에게 부활에 대해, 하늘 나라에 대해, 헌신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여 그들을 설득한다면, 그것은 그가 지혜로운 사람들을 설득한 것보다 더 놀라운 일입니다. 위험이 없는 일에서 설득했다면, 그것은 그들이 무지해서 넘어간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그에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하늘 나라가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쉽게 인도되는 그 사람을 쉽게 설득했습니다. 실로 이런 것들을 그가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그의 무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참으로 위대한 영혼을 지녔음을 말해 줍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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