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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18,1-4 바오로가 아퀼라와 프리킬라 부부와 함께 지내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5|조회수2 목록 댓글 0
18,1-4 바오로가 아퀼라와 프리킬라 부부와 함께 지내다


1 그 뒤에 바오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갔다.
2 거기에서 그는 폰토스 출신의 아퀼라라는 어떤 유다인을 만났다. 아퀼라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모든 유다인은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자기 아내 프리스킬라와 함께 얼마 전에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바오로가 그들을 찾아갔는데,
3 마침 생업이 같아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였다. 천막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생업이었다.
4 바오로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이 서기 49년에 반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은 칙령이 반포되고 5년쯤 지나였습니다. 그리스어에서 육체노동을 암시하는 단어들은 오래전부터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육체노동자의 사회적 지위와 거주 이전의 자유는 달랐지만, 육체노동을 경시하는 것은 고대 시기의 일반적인 시각이었습니다.

내세에 더 관심을 두는 그리스도교는 도회지에 살거나 수도생활을 하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때때로 허투루 넘겼던 시각으로 인간의 노고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생활에서 노동은 자활의 기본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사람을 자신 밖으로 끌어내어 공동생활에 참여하도록 하고 나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유용성이 있습니다. 바오로가 육체 노동을 했으며, 기술자의 집에 묵었다는 사실을 높이 사기보다는 재미있어 하는 도시민 청중들에게 맞섰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오로는 게으르고 사치한 삶이 잘못된 것임을 가르쳐 주는 첫째가는 본보기였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는 이 명백히 세상적인 행위는 사도로서의 그의 소명과 관계없는 것이 아니었으며 바오로가 청중들과 교회들 그리고 우리에게 남긴 영적인 유익을 나타내 주는 것이었습니다.

 

18,3 생업이 같다

 

생업의 고귀함

손으로 벌어 먹고사는 사람들은 절대 창피스러워하지 마십시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아무런 목표도 없이 키워지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많은 종을 거느리며 드넓은 정원을 가질 사람들입니다. 쉼 없이 일하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철학의 본질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정신은 더 순수하고 더 힘찹니다. 일에 몰두해 있는 사람은 행동에서건 말이건 생각에서건 불필요한 것을 성급히 취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영혼은 온종일 수고로운 생업에 온통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손으로 일해 먹고사는 사람들을 경멸하지 말고, 바로 이런 이유로 그들은 복된 사람들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오로는 천막장이 집에 머물며 가죽을 꿰맸습니다. 천사들은 그를 존경했고 마귀들은 그를 보고 떨었지만, 그는 주저 없이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사도 20,34)고 말 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게으르게 살지 않았던 바오로

바오로는 천막장이들과 함께 지냈고,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머물 적합한 곳을 찾자 그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은 그에게 왕궁보다 훨씬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전사에게는 금으로 된 칼보다 괴로 된 칼이 더 유용합니다. 바오로는 복음 선포를 하면서도 노동을 했습니다. 말씀 선포에 종사하지도 않으면서 게으르게 사는 우리는 부끄러운 줄 압시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성실히 일해 먹고사는 것

바오로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스스로 일해서 먹고 살았습니다. 마침 생업이 같아 아퀼라의 집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함께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통상적인 방법으로 이런 것들을 얻으려고 하느님의 군대에 들어가려는 사람, 곧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이런 것들을 얻는 데 눈이 가 있는 채로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을 꾸짖으신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가르침은 이러한 규칙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얻음에 있어서도 우리 마음은 늘 하느님 나라에 가 있어야 하며,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할 때는 이런 것들에 조금도 생각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한다면, 때로 생계가 곤란해질지라도 우리의 결의가 약해지기는커녕 더욱 확고해져 시련과 검증을 무사히 치러 낼 수 있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주님의 산상 설교』)

 

바오로의 노동에 담긴 영적 의미

천막은 완전한 영혼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하느님을 보다’라는 뜻에서 온 이름 ‘이스라엘’도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천막들이 “골짜기처럼 뻗어 있고 강가의 동산 같구나, 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나무 같고”(민수 24,6)라고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성막을 세울 때 주님께서 보여 주신 모형은 분명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자, 내가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모형대로 만들어라”탈출 25,40)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이 천막들의 모습대로 자신들의 천막을 만들어야 하며, 우리 각자는 스스로 재료를 마련하여 자신의 천막을 세워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베드로와 안드레아, 그리고 제베대오의 아들들이 어부였고 바오로가 천막장이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고기를 잡고 살던 그들이 주님께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 하고 부르시자 변모하여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었듯이, 바오로의 생업도 그들의 경우와 비슷한 변모를 거쳤습니다. 그들이 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 바뀌었듯이, 바오로는 지상의 천막을 만드는 사람에서 천상의 천막을 만드는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는 구원으로 가는 모든 길을 가르치고 천상의 복된 거처로 가는 길을 보여 줌으로써 천상의 천막들을 지었습니다. 바오로는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로마 15,19)하며 곳곳에 교회를 세움으로써도 천막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도 ‘하느님께서 산에서 모세에게 보여 주신’ 천상 천막의 모형대로 천막들을 지은 것입니다. (오리게네스 『민수기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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