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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주해

19,1-7 성령께서 에페소에서 열두 사람에게 내리시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5|조회수3 목록 댓글 0
19,1-7 성령께서 에페소에서 열두 사람에게 내리시다


1 아폴로가 코린토에 있는 동안, 바오로는 여러 내륙 지방을 거쳐 에페소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제자 몇 사람을 만나,
2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묻자, 그들이 “받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 바오로가 다시 “그러면 어떤 세례를 받았습니까?” 하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요한의 세례입니다.”
4 바오로가 말하였다.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주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분 곧 예수님을 믿으라고 백성에게 일렀습니다.”
5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6 그리고 바오로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어,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을 하였다.
7 그들은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

▶ 루카는 에페소에서 두 번째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뒤에도 여전히 요한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려 했습니다. 루카가 어째서 또 어떤 의미에서 이 사람들을 벌써 ‘제자들’이라고 부를 수 있었는지에 관해 교부들은 논의합니다. 교부들의 가장 큰 관심은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사람들이 주는 세례의 관계를 밝히는 데 있습니다. 루카와 마찬가지로 교부들도 성령의 역할에 주목합니다.

 

19,2 성령을 받았습니까?

 

요한의 세례만으로는 부족하다

바오로는 그들에게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하고 묻지 않고 “여러분은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이 부족한지 알고 그것을 청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바오로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어,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을 하였다.” 그들이 예언을 하기에 이른 것은 세례 덕분이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이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불충분한 세례였습니다. 그 세례는 이들이 이런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인정받는 준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뒤에 오실 분을 믿도록 만드는 것이 요한의 세례에 담긴 취지였습니다. 이 일은 세례를 받으면 죄가 완전히 씻긴다는 교의를 알려 주기도 합니다. 그들이 완전히 깨끗해지지 않았다면, 성령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고 즉시 그런 은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겨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가르치지 않았는데, 아폴로는 아직 성령도 받지 않았는데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 사람만큼 열정적이지 않았고 또 그만큼 배우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폴로는 많이 알았고 무척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폴로가 예수님에 관한 사실들을 정확하게 가르쳤다고 해도, 더 정확한 사실들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그 열정으로 인하여, 코르넬리우스와 그의 친구들이 그랬듯이 성령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고 하겠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그리스도께서 세례에 권능을 부여하시다

그때 그리스도께서는 세례가 요한만 아니라 그 누구의 세례도 필요 없었습니다. 오히려 세례가 그리스도의 권능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때 부족했던 것, 곧 세례 받는 이들이 성령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인정받는 데 필요했던 것은 모든 축복 가운데 으뜸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그곳에 왔을 때 이 고귀한 성령의 선물을 보태 주었던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여러분은 성령을 받았습니까?

이 말은 여러분은 세례를 받고 나서 안수를 받았느냐는 뜻입니다. 성령께서는 안수를 통해 내려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19,4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

 

회개의 세례

바오로는 요한의 세례는 회개를 가르치는 것일 뿐 죄를 용서하지는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옛 선조들에게 할례가 그들이 따르는 믿음의 표시였듯이, 참회하는 사람들은 신심의 고유한 표시로 이 씻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장차 죄의 용서를 가져올 그리스도의 세례를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한편으로는 거룩하지만 한편으로는 거룩한 것이 아닌 요한의 세례

주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인가 땅에서 온 것인가를 물으신 적이 있습니(마태 21,25). 물신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들은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식도 모자라고 그래서 믿음도 모자라지만, 요한의 세례가 하느님께서 명하신 것이라는 점에서 거룩하나 그 권능에 있어서는 거룩한 것이 아니라는 정도는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 일을 위해 요한을 보내셨다는 것을 성경을 읽어서 압니다. 회개는 인간 의지의 문제이고, 회개를 촉구한 선포자 요한은 거룩한 것을 베푼 사람이 아니라 거룩한 분께서 오실 길을 만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당연히 회개할 마음도 없었습니다. 회개가 인간적 범주에 속한 일이라면, 이 요한의 세례도 똑같은 본질을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거룩한 것이었다면, 성령도 내리게 하고 죄도 용서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말고는 아무도 죄를 용서하지도 성령을 내리게 하지도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먼저 아버지께로 올라가셔야 성령께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승께서 아직 주시지 않은 것을 종이 줄 수 있을 턱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사도행전에서도 우리는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으며 성령에 대해 들은 바도 없다는 사실을 읽었습니다. 이처럼 요한의 세례는 거룩한 것을 주지 못했으므로 하늘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 『세례』)

 

19,5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다

 

그리스도의 세례가 참된 세례다

바오로 사도가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그 이유를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오로가 동등한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또 세례를 준 것이라면, 당신들 모두가 다시 세례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더 훌륭한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세례를 베푼 것이라면, 당신들은 로가투스가 세례를 준 사람들에게 또 세례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주어지는 세례는 세례를 행하는 사람의 세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세례이므로 그것을 주는 사람의 덕이 비록 모자라더라도 그것을 받는 이들에게 똑같은 효력이 미칩니다. 바오로가 어떤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세례를 준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세례가 아니라 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당신도 이제는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서간집』)

 

성령을 받은 것과 성령의 역사하심 안에 있는 것

요한의 세례는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었을 뿐 죄를 정화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곧 신자들의 세례는 죄의 용서라는 선물을 준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세례를 베풀면서 “나는 내 뒤에 오실 분을 위하여 너희에게 세례를 준다. 너희는 그분을 믿어라. 그분은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6-29) 하고 말했습니다. 충실항ㄴ 세례를 베푸는 사람은 여러분이 삼위일체께서 동일 본질임을 믿도록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는 세례 받는 사람을 속속들이 씻기고, 그에게 남아 있던 미신을 모조리 걷어 내고, 그리스도라는 옥을 새로 입히며 순결하게 참신앙을 선포합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 세례 받는 사람들에게 안수할 때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신다는 것이고, 둘째는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만을 받은 아폴로는 영으로 타올랐다고는 하지만, 그 영이 성령이라고 쓰여 있지는 않습니다. 사실 그는 신령한 언어로 말하지도 못했고 예언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영으로 타오르는 것과 영령을 지닌 것은 다른 것입니다. 성령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성령께서 그 안에 거하십니다. 그리고 영은 사람 안에서 스스로 말을 합니다.

이에 관한 많은 내용이 앞에서 나왔습니다. 영이 필리포스에게, 베드로에게, 사도들에게 그리고 바오로와 그의 동료들에게 말씀하셨을 때나 또 여러 도시에서 이들에게 언제 말하고 언제 입을 다물라고 지시했을 때가 그때입니다. 영으로 불타는 사람은 누구나, 천사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사람처럼, 영에게 인도되는 사람으로서 외부에서 오는 빛과 자극을 받아 이런저런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제게 ‘영을 함께 나누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영을 불타오를 수 있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보이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근거로 입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은 참으로 뜨거우며 우리의 내적 인간을 불타오르게 하는 성령께서 비록 우리 안에 살지 않고 바깥에 계신다고 해서 그렇게 못하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 안에 불이 들어 있지 않더라도 불타오르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암모니우스 『성경 주해 선집』)

 

성령을 간절히 구하는 이유

많은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성령의 존재에 관해 알려 줍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시편 51,13)라고 하고, 다니엘서에는 “네 안에 계신 거룩한 영”(다니 4,6)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성령의 존재에 관한 증거가 무척 많습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 위에 내려 오셨다고 하는 구절이나(마태 3,16),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하고 말씀하신 것, 그리고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루카 1,35)라는 말,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라고 한 바오로의 가르침, 세례 때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이 주어졌다”(사도 8,18)는 사도행전의 말씀이 그런 것입니다. 이 모든 것에서 우리는, 성령은 참으로 고귀하고 위대한 존재인 까닭에 구원의 세례도 지극히 훌륭하신 삼위일체의 권이,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 행해지지 않으면 완전한 세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리게네스 『원리론』)

 

19,6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다

 

그리스도교 세례의 우월성

여기서 우리는 “하는 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루카 7,28)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봅니다.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면에서 볼 때 바오로는 사도들 가운데 마지막이었지만, 요한의 세롁다 주지 못한 것을 바오로의 손이 지그 세례 받는 이 사람들에게 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암모니우스 『성경 주해 선집』)

 

19,7 열두 사람쯤 되었다

 

열두 사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도들을 맞을 자격이 없다고 여겨졌던 아시아 땅이 사도의 숫자 열둘로 축성되고 예언의 선물을 받음으로써 높이 들어 올려집니다. 성령께서 당신께서 오신다는 표징을 전에 예루살렘에서는 백이십 명 안에서 그리고 여기서는 이 열두 제자들 안에서 보여 주셨다는 점도 유념하십시오. 전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현시와 그리스 도시인 에페소에서 일어난 이번 현시는 유대인 출신 신자건 다른 민족 출신 신자건, 성령께서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보편 교회의 일치 안에 있는 사람들만을 채워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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