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1-17 악령들에게 혼이 난 스케우아스의 아들들 11 하느님께서는 바오로를 통하여 비범한 기적들을 일으키셨다. 12 그의 살갗에 닿았던 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들에게 대기만 해도, 그들에게서 질병이 사라지고 악령들이 물러갔다. 13 그러자 구마자로 돌아다니는 몇몇 유다인까지도 “바오로가 선포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명령한다.” 하면서, 악령 들린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해 보려고 시도하였다. 14 그런데 스케우아스라는 유다인 대사제의 일곱 아들이 그렇게 하자, 15 악령이 그들에게 “나는 예수도 알고 바오로도 아는데 너희는 누구냐?” 하였다. 16 그때에 악령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모조리 억누르고 짓누르는 바람에, 그들은 옷이 벗겨지고 상처를 입어 그 집에서 달아났다. 17 이 일이 에페소에 사는 모든 유다인과 그리스인에게 알려지니,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주 예수님의 이름을 찬송하였다. |
▶ 스케우아스의 아들들이 바오로의 이름과 예수의 이름을 외쳐서도 악령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말에는 그리스도교는 마술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강조하려는 루카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는 이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신자들의 몸을 통하여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또 구마가 어떤 식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입증하는지 알려줍니다.
19,12 바오로의 살갗에 닿았던 앞치마를 병자들에게 대기만 해도 낳았다
부활의 가장 확실한 증거
그리스도의 말씀은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한 것보다 더 큰 일도 나의 이름으로 하게 될 것이다”(요한 14,12)라는 뜻입니다. 이들이 한 것이 바로 ‘더 큰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그림자가 죽은 이들을 살린 것 말입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권능이 더욱 확실히 선포되었습니다. 그분께서 살아 계실 때 기적을 일으키신 것보다, 그분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그분의 이름으로 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욱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부활의 증거였습니다. 그분께서 그곳에 나타나셨더라도 이 정도로 사람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셨을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경 주해 선집』)
19,13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다
예수님의 이름은 믿음으로 말할 때만 권능을 발한다
그들은 믿을 마음은 조금도 없이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해 마귀를 내쫓으려고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몰래 그 일을 했지만, 무력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이름은 믿음으로 입에 올릴 때에만 권능을 발합니다. 그들은 바오로가 그곳에서 위대한 사람으로 여겨진다고 생각해 바오로의 이름까지 덧붙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마귀가 왜 구마자들의 속임수를 거드는 대신 그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의 연극을 폭로했는지 의아히 여기는 사람도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마귀가 중대한 위험에 처한 사람처럼 무척 화가 났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보잘것없는 한심한 존재가 자기를 내쫓겠다고 나서자 자신의 분노를 온통 그자에게 쏟아부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일이 없으려면 먼저 그분을 고백하고 그 고백을 허락으로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자격 없는 사람들이 행하는 구마
요세푸스는 솔로몬 임금이 사람한테서 쫓겨난 더러운 영들이 감히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구마법을 고안해 내어 백성들에게 가르쳤다고 전합니다. 이런 일은 보고 듣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또는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이 단죄 받도록 일어나며, 때로는 비난할 만한 사람들에 의해서도 행해집니다. 이는 사람들이 이런 표징을 행하는 자들은 경멸할지언정, 당신의 이름을 통해 이런 위대한 기적을 일으키신 하느님의 영광은 알아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악령보다 더 비뚤어진 심보를 지닌 스케우아스의 일곱 아들
그자들은 마치 악령이 그분을 모르기라도 하는 듯, “바오로가 선포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명령한다” 하고 말했습니다. 악령의 대답을 보면 악령은 그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구마자들은 ‘세상의 구원자이신 부활하신 분’이라고 말해야 했을 것을 단순히 ‘예수님’이라고만 했습니다. 그분의 영광을 인정할 뜻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악령이 그들을 혼내 줍니다. 그들에게 달려들어 “나는 예수도 알고 바오로도 아는데 너희는 누구냐?”고 합니다. 이는 ‘너희는 믿지도 않으면서 그 이름을 입에 올려 더럽히는구나. 그래서 신전은 황폐해졌고, 인간은 쉽게 먹이가 되는구나. 너희는 설교자들이 아니라, 나의 부하들이다’ 하는 말과 같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직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한 악령들을 능히 이기는 권능을 지닌 사도들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 큰 권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9,14 스케우아스의 일곱 아들
스케우아스의 일곱 아들
“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합니다”(2코린 11,14). 그래서 사탄은 자기 부하들도 자기와 똑같은 거짓 모습으로 위장하는 것을 조금도 거리끼지 않습니다. 성령의 선물을 일곱이라는 숫자로 나타내는 것은 통례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악령을 내쫓으려던 스케우아스의 아들도 일곱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믿어서가 아니라 시험해 볼 요량으로 그들의 이름을 입에 올렸기 때문에, 그 교활한 속임수에 대해 하느님께만이 아니라 마귀들에게서도 마땅히 단죄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스케우아스의 아들들로 불린 이유입니다. 이런 자들에 관해 교회의 수호자들에게 주어진 명령이 있습니다. “잡아라, 저 작은 여우들을 우리 포도밭을 망치는 저 작은 여우들을”(아가 2,15).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19,15 너희는 누구냐?
악령을 제압하는 권능보다 더 강력한 권능이 있다
그는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마라”(루카 10,20)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께서 기꺼워하시고 공동의 유익이 되는 것들을 추구한다면, 더 위대한 길은 따로 있습니다. 사람들한테서 악령을 쫓아내는 것보다 그들을 죄에서 구하는 것이 더 위대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하늘 나라에 가는 것을 막는 것은 악령들이 아닙니다. 악령들은 비록 그들이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악령 들린 사람을 더 분별 있게 만듦으로써 그에게 도움을 줍니다. 반면 죄는 그를 하늘 나라에서 쫓아냅니다. 저도 여러분니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또 다른 이유, 곧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라도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악령이 떠나지 않아도 죄가 떠난다면, 사람을 죄에서 풀어 주는 것은 더 위대한 선행이라고 말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9,16 악령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
말로만 하느님을 고백하는 그자는 행동으로는 하느님을 부인합니다. 이는 단순히 생각으로만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령이 유대인 구마자들에게 “나는 예수도 알고”라고 한 것은 모순이 아니며, 다른 악령들도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께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 같은 말을 하곤 했습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야고 2,19) 라는 말씀도 이런 종류의 말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악령들이 의로운 믿음을 지녔다는 증거는 결코 되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가 읽는 구절과 관련해 우리는 이렇게도 이야기해야합니다. ‘예수님께 치유를 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 덕분에 치유를 받은 것이고, 악령을 쫓아내는 일이나 또 다른 치유를 위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도 그들의 믿음으로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악령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너에게서는 내가 그 이름을 들을 때 자주 느꼈던 권능이 느껴지지 않는구나.’ (장님 디디무스 『성경 주해 선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