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성지하면 가장 먼저 이스라엘을 떠올리게 된다. 성지순례자라면 그 중에서도 누구나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싶어 할 것이다. 예루살렘을 성지 가운데 최고의 성지로 뽑는데 그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성지순례자들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고 그들과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평지'이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예루살렘의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평지에 대한 나의 애착과 미련 때문일 것이다.
90년대 중반 나는 예루살렘에 있는 미국 성지연구소(현 예루살렘 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그 곳에서 나는 성경과 지리, 역사와 고고학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지도와 성경을 들고 이스라엘의 산과 광야 그리고 골짜기 이곳저곳 성경사건이 일어났던 현장들을 찾아다녔다. 때로는 들판에서 비닐 한 장을 깔고 침낭 속에서 밤을 보내야하는 수고로움은 있었지만 교실 안에서 얻을 수 없는 흥미, 애착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즈음 해서 한국 교회에서는 성지순례 붐이 일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한국 성지순례 객들로 넘쳐났다. 어느 곳에 가든지 여행사에서 단체 선물로 준비해준 빨강색이나 파란색 등산용 조끼와 모자 또는 가방을 멘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때 생활비와 학비를 현지에서 벌어야만 했던 나는 참으로 우연치 않게 성지순례 객들을 안내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평지에 대한 애착과 미련은 이 시절에 얻은 병이 분명한 것 같다. 그 많은 단체들 가운데 평지를 답사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단체는 만나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다. 아마도 평지를 성지로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간 때문에 그 곳에 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 스스로를 위로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짧은 시간에 기념교회를 방문하기도 벅차 빨리 빨리를 연발해야만 하는 판에 기념교회 하나 없는 평지에 시간을 할애 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보여주고 싶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사람만이 느낀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지도를 가지고 찾아다니며 느꼈던 감동을 누구나가 똑같이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애당초 없지만, 그러나 기념교회들 보다는 그 곳이 비록 황량한 골짜기와 들판일지라도 확실한 성서사건의 현장에 그들을 우뚝 세워놓고 싶었다. 동쪽의 먼 나라에서 고생을 하며 이곳까지 왔는데! 그때 얻은 병이 지금 나로 하여금 성지답사의 첫 장을 예루살렘이 아닌 평지로 가도록 만들고 있다.


성경에 쓰인 땅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대했던 사람이라면 평지에 이르는 순간 최소한 두 번은 놀라게 된다. 예루살렘은 700-800 미터에 이르는 산악지역에 위치해 있는 도시이다. 그 곳에서 산봉우리 사이로 굽이친 비탈길을 따라 서쪽 지중해 해변에 세워진 현대도시 텔아비브로 가다보면 마지막 가파른 내리막길을 지나게 된다. 이 가파른 내리막 골짜기 길을 통과하자마자 나지막한 산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지점이 산악지역 끝이요 평지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비로소 여기가 우리가 첫 번째로 놀래야만 하는 장소인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권에서 평지는 평야와 같은 평평한 지형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성경을 읽으며 평지라는 단어를 대할 때 산들을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대상27:28, 대하1:15) 그러나 평지에 들어서는 순간 산들이 낮아졌을 뿐 아직도 산들이 멀쩡하게 눈앞에 보인다.
한글 성경에 평지로 번역된 지역을 성경은 '쉐펠라' 라고 불렀다. 쉐펠라는 '겸손' 또는 '낮은'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다. 그래서 '쉐펠라'가 어느 장소나 지역을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될 때 이는 낮은 지역(Lower Land) 또는 장소(Place)를 의미하게 된다.
성경에서 쉐펠라로 불려진 지역은 대략 동서 15킬로미터, 남북으로 60킬로미터에 이르며 100-500미터에 이르는 산들과 골짜기들로 구성된 아주 특정지역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지역을 한번도 평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600-1000미터 산악지역에 주로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지역은 쉐펠라 즉 낮은 지역일 뿐이었다. 아마도 그 땅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번역했다면 지금까지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오해를 미연에 막을 수 있었으리라.

평지에서 서쪽 지중해 방향으로 가면 갈수록 양 옆의 산들은 점점 낮아지며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평야와 같이 넓은 계곡을 지나게 된다. 이쯤이 우리가 두 번째로 놀래야만 하는 곳이다. 평야와 같이 드넓은 이곳을 성경은 골짜기라고 부른다. 나는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일을 당한 것이다. 나는 처음 이곳을 보고 골짜기라면 산악지역에 수없이 많은데 왜 이렇게 넓어 마치 평야와 같은 곳을 골짜기라고 불렀을까 의아해 했다. 그러나 골이 깊든 아니면 평야와 같이 넓든 산과 산 사이를 골짜기라고 부르는 성경 속의 사람들을 내가 이해해야지 누구를 탓하겠는가.
이렇게 하여 첫 번째로 만나는 곳이 아얄론 골짜기이다. 평지에 있는 다섯 개의 골짜기 가운데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가장 넓은 골짜기인 것이다. 아얄론 골짜기 중에서도 나는 벧호른 비탈길에서 아얄론 골짜기를 내려다볼 수 있는 한적한 곳이나 반대로 벧호론 능선이 올려다 보이는 야얄론 골짜기의 한적한 곳을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곳을 종종 찾았던 이유는 역사적 사건들을 마음속에 재현해 볼 수 있으며 그 때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평지의 골짜기들은 자연스럽게 지중해 해안에서 산악지역으로 올라가는 도로 역할을 해왔다. 그 중에서도 아얄론 골짜기는 벧호른 능선 길로 연결되어 예루살렘의 북쪽 기브온과 사무엘 선지자의 고향 라마와 연결되는데 고대로부터 이 골짜기와 비탈길은 산지로 올라가는 고속도로의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아얄론 골짜기는 평지에 있는 골짜기 가운데 가장 넓은 골짜기인 동시에 이 골짜기와 연결되는 벧호론 비탈길은 산악지역에 펼쳐진 해발 650미터의 고원지대와 연결되는 가장 짧은 길이기 때문이다. 이 중요성을 지혜의 왕 솔로몬은 간과하지 않고 이 골짜기와 비탈길에 요새 성 구축을 잊지 않았다.(왕상9:17, 대하8:5)
그 결과 이 골짜기와 비탈길은 역사의 고비마다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전쟁을 위해서 산지로 올라가는 군인들도, 전쟁에서 패하여 도주하는 군인들도 이 골짜기와 비탈길을 이용했다. 이집트 파라오의 군인, 아시리아 군인, 바빌론 군인, 페르시아 군인, 알렉산더 군인도, 로마의 군인도 이 길을 통과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사무엘과 사울 그리고 다윗에게 쫓기는 불레셋 군인들도 이 비탈길과 골짜기로 도주했다.(삼상7:5-12; 13:15-18; 14:31, 대상14:8-17) 그러나 내가 이 골짜기와 비탈길 한적한 곳에서 만난 사람은 이집트의 파라오, 알렉산더, 로마의 장군이 아니라 바로 여호수아였다.
초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위해서 그 땅의 가나안 거민들과 격렬한 전쟁을 벌여야만 했다. 그 가운데 잊을 수 없는 전쟁 사건이 여호수아 9-10장에 기록되었다. 야간 행군까지 강행하면서 길갈에서 900미터 고지의 가파른 산길을 단숨에 올라와야만 했던 여호수아, 그리고 기브온 거민과 여호수아의 화친 소식을 접한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야르뭇, 라기스, 에글론 왕과 연합군을 형성하여 기브온을 공격해야만 했던 이 전쟁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보다 더 고도의 전략과 전술이 묻어있는 전쟁이었다. 이 전략과 전술의 배경이 되는 지리적 상황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언급하기로 하겠다.
여호수아 10장에 요약된 이 전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방적으로 승리를 거둔 너무나 싱겁게 끝나버린 전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벧호론 비탈길 저 꼭대기 기브온 고원에서 벌어진 그날의 전쟁은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치열한 전쟁이었다. 여호수아나 아모리 사람들에게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전쟁이었으며 여호수아에게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대 사명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끝을 보아야만 했던 전쟁이었다.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었던 박빙의 전쟁은 드디어 하나님의 개입으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된다.
나의 생각이 이쯤에 이르면 나는 여호수아의 그 기도를 떠올린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수10:12)
바로 내 앞에 펼쳐진 저 골짜기의 하늘이 그날 저 달이 멈춰선 곳이다.
2004년 1월과 2월 나는 목회자로 구성된 답사팀과 함께 이 골짜기를 몇 년 만에 다시 찾아갔다. 도로의 한쪽 곁 산기슭에 펼쳐진 넓적한 바위에 일행 모두가 올라섰다. 아얄론 골짜기와 벧호론 비탈길을 바라보며 두서없이 지형과 전략적 중요성 그리고 역사적 사건들을 열심히 설명했다. 별로 조리 있게 하는 말도 아니었는데 모두가 내 말이 이해가 되는 듯 동조의 눈빛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성경을 들고 현장검증 절차에 들어갔다. 나의 현장검증이라야 땅을 파고 유물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현장을 비교하는 일이다.

일행 중 한분에게 여호수아 10장을 읽도록 부탁했다. 순간마다 나는 손을 들어 "저기가 바로 벧호론 비탈길입니다. 저 비탈길 꼭대기가 태양이 멈추었던 기브온 입니다. 이 하늘이 달이 멈췄던 아얄론 골짜기입니다. 우리가 서있는 곳이 바로 우박이 내렸던 곳입니다. 이 길을 가로질러 가면 아세가로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성경사건의 현장에 서있는 것입니다" 아! 이보다 더 확실한 검증이 어디 있겠는가.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서로 짝을 지어 손을 들고 기도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저 멀리 벧호론 비탈길로 도망쳐 내려오는 가나안 군인들의 아우성소리, 그들의 퇴각로를 따라 아세가까지 내렸던 우박소리, 그 뒤를 추격하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함성이 나의 귓가에 맴돈다. 그들 모두가 이 한적한 아얄론 골짜기에 서있는 나의 앞을 지나간다.
여호수아여!
태양과 달을 멈추었던 그 담대한 기도를 우리도 배우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