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4장 36-43절 / 평강이 없는 이유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 후 제자들은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노출될까봐 낮엔 거리를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시장을 갈수 없고, 식당을 갈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근심하며 신음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강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중의 축복입니다. 한국정교회 본부 교육관 벽에는 이런 글이 쓰여져 있습니다. "평화를 찾아라. 그리하면 네 주위의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본회퍼는 "평화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계명"이라고 했고 존 브로우더스는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 일보다 하나님을 닮은 일은 없다"고 역설했다. 심지어 랍비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샬롬(평화)이라고 붙였습니다.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왜 제자들은 평강하지 못했을까요?
부활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38-39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사람은 누구나 처음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합니다. 존 번연도 여러 번 의심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쓴 “천로역정”에서 그는 “의심의 골짜기보다 더 위험한 곳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잠깐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그 땅은 피곤한 나그네를 죽음에 이르는 깊은 잠에 빠지게 한다. 하나님의 종인 한 사람이 전도 여행을 할 때 갑작스레 마음에 크나큰 실망이 생겼다. 그로 인해 그는 많은 어려움을 당했고, 참으로 혼란하고 고통스런 세상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을 저버렸다고 느꼈다. 그는 한 동굴 안에 들어가 자신의 괴로운 심정과 버린바 된 상황을 하나님께 자세하게 기도로 올려 드렸다. 그 는 계속해서 기도하며 자신의 마음속의 생각을 하나님 앞에 모조리 털어놓았다. 시간이 지나자 그의 눈은 동굴 속의 어둠에 익숙해져 사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때서야 그와 매우 가까운 곳에 늑대가 그의 새끼와 함께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늑대는 그를 잡아 삼키려고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원래 젖먹이 새끼를 키우는 어미 늑대는 어떤 맹수보다도 더 흉악한 법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버림받았다고 여길 때 그를 십분 평안하게 보호해 주셨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의심하면 그때부터 번뇌가 시작됩니다. 정말 신이 있을까? 부활이 있을까? 성공할 수 있을까? 치유될 수 있을까?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면 사람은 회의적이고, 염세적인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3년 동안 동고동락을 했지만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의심했습니다. 의심하니까 불안하고 초조하고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의심하는 것은 죄입니다. 불경죄입니다. 큰 죄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런 죄인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크면 조건 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41절입니다.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영은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육신이 있어야 먹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영과 육이 함께 부활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제자들에게 평강이 없었던 것은 부활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의심하면 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죽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냉냉한 기도는 화살촉이 달려 있지 않은 화살, 칼날이 붙여져 있지 않은 칼, 날개 없는 새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과녁을 꿰뚫을 수도 없고, 조금도 벨 수 없으며, 또한 하늘에 닿을 수도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않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