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세대의 장벽을 넘어서다. 요엘 2:28-32안두익 26-06-01
6/14일은 우리 동성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지 창립 57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지나온 57년의 세월 동안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셨고, 이제 다가올 미래를 향해 새로운 문을 열어주고 계십니다. 오늘 이 아침, 요엘 선지자가 보았던 성령의 비전이 우리 안에 임하여, 세상의 모든 장벽을 넘어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29:18의 말씀에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묵시’라는 말이 곧 하나님의 이상이요, 꿈입니다. ‘방자히행한다’는 히브리어 단어의 뜻은 ‘신중함이나 자제력을 상실한 경거망동’을 의미합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꿈이 없으면 인간이 경거망동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상이란, 꿈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비전을 가진 사람의 시선은 오늘을 뛰어넘어 언제나 먼 곳을 향해 있습니다. 먼 곳에 시선이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시선이 맞닿아 있는 거기에 자기 자신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꿈을 먹고 산다는 것, 꿈을 위해서 뛴다는 것,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우리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우리의 희망찬 삶을 살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꿈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해 줍니다. 꿈이 큽니까? 그 사람은 대인입니다. 꿈이 작습니까? 그 사람은 소인입니다. 꿈이 고상하면 그 사람도 고상하고 꿈이 천박하면 그 사람도 천박해집니다. 꿈이 선하면 삶이 선해지고 꿈이 악하면 삶도 악해집니다.
이 아침!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어떤 값을 치루고 있습니까? 이 비전의 사람에게는 열정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그 비전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동성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전 세계의 정보를 얻고, 인간이 상상하던 많은 것들이 현실 기술로 나타나는 화려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화려함의 이면을 조금만 들여다보십시오. 참 역설적이게도 오늘을 사는 수많은 인생들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장벽' 속에 갇혀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세대 간의 장벽은 날로 높아져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하고, 계층과 신분의 장벽, 성별의 장벽은 갈수록 공고해져 서로를 향한 분노와 혐오가 가득합니다. 겉은 풍요로우나 속은 메말라가는, 참으로 기갈 가득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엘 선지자의 시대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전무후무한 메뚜기 재앙과 가뭄으로 땅은 황폐해졌습니다, 요엘 2:2절에 보면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고 표현한 것은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 현실이었습니다. 메뚜기 떼가 하늘을 뒤덮으면 대낮인데도 태양 빛이 차단되어 밤처럼 캄캄해졌고, 그 날갯짓 소리는 마치 군대의 병거 소리나 불이 초목을 사르는 소리(요엘 2:5)처럼 온 땅을 진동시켰습니다. 요엘 선지자가 직면했던 메뚜기 재앙은 단순히 '농사가 좀 망했다'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고, 먹을 곡식은 물론 하나님께 드릴 제물마저 한 톨 남지 않아 국가 전체가 숨이 멎어버린, 그야말로 철저한 절망의 장벽이었습니다.
이런 환경 앞에 백성들의 마음에는 절망의 장벽이 높이 솟아 있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캄캄한 현실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요엘을 통해 전 우주적인 대선언을 하십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인간이 쌓아 올린 절망의 장벽, 소외의 장벽을 단숨에 깨뜨리시겠다는 하나님의 거룩한 선전포고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신약 시대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찬란하게 성취되었습니다.
Ⅰ.성령은 세대의 장벽을 넘어 소통하게 하십니다. (28절)
본문 28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예언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인간의 세상에서는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당연한 상식처럼 여겨집니다. 살아온 경험이 다른 어르신들과, 패기가 다른 청년들, 그리고 앞으로를 살아가야 할 어린 자녀들은 결코 한 곳을 바라보기 힘듭니다. 생각의 장벽이 너무나 두껍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 성령이 임하시면 이 인간적인 한계와 세대의 장벽이 단숨에 무너집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오.
자녀들이 예언을 하고, 노인이 꿈을 꾸고, 청년이 이상을 본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언과 꿈, 이상은 각자 다른 주장을 하거나 다른 꿈을 꾼다는 뜻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 믿고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무언가 보고 산다는 것입니다. 보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꿈이 있다는 겁니다. 미래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비전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이라는 단 하나의 위대한 비전을 의미합니다. 성령 안에서 어르신들이 기도로 심어놓은 거룩한 꿈이 청년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비전이 되고, 그 비전이 자녀들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는 놀라운 영적 대통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비전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이라는 단 하나의 위대한 비전을 의미합니다. 성령 안에서 어르신들이 기도로 심어놓은 거룩한 꿈이 청년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비전이 되고, 그 비전이 자녀들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는 놀라운 영적 대통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꿈을 먹고 산다는 것, 꿈을 위해서 뛴다는 것,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우리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우리의 희망찬 삶을 살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꿈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해 줍니다. 꿈이 큽니까? 그 사람은 대인입니다. 꿈이 작습니까?
그 사람은 소인입니다. 꿈이 고상하면 그 사람도 고상하고 꿈이 천박하면 그 사람도 천박해집니다. 꿈이 선하면 삶이 선해지고 꿈이 악하면 삶도 악해집니다. 이 아침!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어떤 값을 치루고 있습니까? 이 비전의 사람에게는 열정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그 비전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동성교회가 지난 57년 동안 든든히 서 올 수 있었던 비밀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성령 안에서 온 세대가 기도의 바통을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다음 주 창립 57주년을 기점으로, 우리 교회의 모든 믿음의 선배들과 청년들, 어린 자녀들이 하나님의 비전을 통해 성령으로 하나의 심장으로 뛰기를 소망합니다. 세대의 장벽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비전으로 정렬되는 역사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Ⅱ. 성령은 신분과 차별의 장벽을 넘어서는 비전 (29절)]
2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이 말씀은 당시 고대 사회의 배경에서 보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영적 대혁명'이었습니다. 그 시절 '종'이나 '여성'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세상의 지식과 권력, 심지어 종교적인 특권까지도 기득권자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선언하십니다. "내 영을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남종과 여종에게까지 조건 없이 부어주겠다!“
여기서 ‘부어준다’는 것은 단순히 감질나게 몇 방울 떨어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메마른 대지를 완전히 뒤엎는 폭포수 같은 쏟아부어 주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에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남종과 여종’ 같은 자들에게 당신의 가장 고귀한 영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조선 말기 양반의 서슬 퍼런 그늘 아래서, ‘박수무당’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천하고 소망 없는 삶을 살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백사겸입니다.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던 그 비참한 인생에, 어느 날 하나님의 영이 임했습니다. ‘그레이엄 리’ 선교사를 통해 복음이 들어가자, 그의 영혼을 묶고 있던 추악한 사슬이 끊어지고 천한 무당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전도사’로 신분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 부어주심의 은혜는 백사겸 전도사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은혜의 강물은 그의 아들 백낙준에게로 흘러갔습니다. 소망 없던 가문에서 자란 그 아들이 은혜를 입고 자라나, 마침내 이 땅의 어둠을 밝히는 연세대학교의 총장이 되고 한국 교육계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꿔놓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사람을 외모로, 재산으로, 신분과 조건으로 끊임없이 나누고 차별하여 장벽을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임하시면 세상이 그어놓은 모든 계급이 사라집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완전한 평등과 가치를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세상에서 가장 소외당하던 자가 하나님의 거룩한 계시를 전하는 예언자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주인공이 됩니다.
Ⅲ. 성령은 절망의 장벽을 넘어 구원의 소망을 보게 하십니다. 30-32
30-31절말씀을 보면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고 하셨습니다.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는 그 무시무시한 환난의 때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요엘서 2장 30절 이하를 보면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두려운 재난이 선포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재난의 목적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너뜨리고 멸망시키려는 데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도리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 안의 안일함과 죄를 찢으며 통회하는 진정한 회개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손길입니다. 그리고 그 회개의 자리 끝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본심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고 하신 성령의 강력한 역사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캄캄하고 재난 같은 위기가 닥쳐올지라도, 성령의 역사가 임하면 그곳에 구원의 놀라운 열매가 맺힙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신 이 약속이 우리의 삶 속에 선명하게 성취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그 어둠의 장벽만 보고 주저앉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장벽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 고난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살길은 단 하나입니다 . 바로 32 절 상반절에 보면 "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 " 이라는 약속입니다 . 이것이 바로 신앙의 핵심입니다 . 세상이 피와 불과 연기로 가득 차도 ,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그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임합니다 .
사도행전 2장에서 제자들이 마가 다락방에 모여 간절히 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렸을 때, 바로 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이 아닌, 오직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늘 문을 여는 자들이었습니다. 행2장의 베드로를 기억하십니까? 그 베드로는 불과 50일 전만 해도 한 여종 앞에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두려움에 떨던 사람, 예수님을 따라갈 용기조차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께서 그 안에 들어오신 후, 같은 베드로가 수천 명의 유대인들 앞에 담대히 서서 외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그리고 그 설교 한 편에 삼천 명이 회개합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베드로가 갑자기 영웅이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안에 성령께서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사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 안에 계신 성령께서 사신 것입니다.
32절을 함께 고백하겠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할렐루야! 역사의 대혼란 속에서도 오직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영원한 피난처가 열립니다!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마가다락방에서 성령 충만을 받고 거리로 뛰쳐나가 외쳤던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기초가 흔들릴 때, 오직 예수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담대히 선포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피할 자', '남은 자'는 자격이 있어서 살아남은 자들이 아닙니다. 환난 중에도 오직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믿음을 지킨 자들이요,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 동성교회가 바로 이 마지막 시대의 영적 피난처, '시온산과 예루살렘'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두려움의 장벽이 우리를 압박해 올 때, 우리는 더욱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장벽 뒤에서 떨고 있는 영혼들을 향해 영원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남은 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장벽이 아무리 높고 단단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그 모든 장벽은 무너져 내립니다. 성령의 역사는 세대의 장벽을 허물어 온 세대를 하나의 비전으로 묶어줍니다. 성령의 역사는 세상의 차별과 신분의 장벽을 깨뜨려 우리를 주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는 종말의 두려움을 넘어서 영원한 예수의 구원을 선포하게 만듭니다.
우리 동성교회가 이제 다음 주면 창립 57주년을 맞이합니다. 57년 동안 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에서 멈추지 마십시다. 성령의 놀라운 감동과 역사를 통해,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청년들과 어린 자녀들이 다 함께 손을 잡고 하나의 거룩한 꿈을 꾸는 교회가 됩시다.
세상이 그어놓은 모든 장벽을 예수의 이름으로 넘어서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힘차게 이루어가는 복된 동산교회와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