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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유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열심 - 킹 제임스 성경의 역사 2 (1)

작성자나팔수|작성시간12.06.03|조회수25 목록 댓글 0

공공의 유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열심 - 킹 제임스 성경의 역사 2

 

Micheal A. G. Haykin / 김범준 역

 

1. 청교도가 제안한 새로운 번역

 

 스코들랜드의 제임스 6세(1566-165)가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로 영국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을 때, 청교도들은 엄청난 기대와 흥분을 가지고 이를 환영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임스는 유럽에서 가장 개혁주의적인 곳 중에서 하나인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다.

 

 청교도들은 그런 교육을 받은 제임스라면 다른 스코틀랜드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자신들의 신학적, 예배적 관심사를 잘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왜냐하면 제임스는 왕권신수설, 곧 왕의 군주권이 오직 하나님께로 와서 그 정치적 합법성을 인정받기에, 이 땅의 어떠한 권세도 왕에게 어떠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제임스에게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평등주의는 자신의 군주체계를 견제하는 것이요, 자신의 통치를 곤란하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평등주의보다 잉글랜드 감독교회의 계급주의를 더 선호한 것은 당연했다. 1)

 

 그가 통치 초기에 말한 것처럼, 그에게 있어서, '장로회주의와 군주제는 하나님과 마귀처럼 닮은 데가 없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는 청교도들의 불만들이 적힌 1000인의 청원서(Millenary Petition, 1603) 목록을 건네 받았을 때, 런던 근교에서 위치한 햄턴 궁(Hampton Court)에서 정식으로 회의를 개최해,(1604년 1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다. 3)

 

 그 회의를 위해서 4명의 온건한 청교도들이 청교도들의 의견을 대변하도록 초대되었다. 그 인물들로는 회의에서 대변인으로 활약한 옥스포드의 코퍼스 그리스도 칼리지(Corpus Christi College, Oxford) 학장인 존 레이놀즈(John Rainolds, 15649-1607)와, 히브리어 헬라어 학자이자, 훌륭한 설교자였던, 케임브리지 엠마누엘 칼리지(Emmanuel College, Cambridge) 학장 로렌스 채더튼(Laurence Chaderton, 1537-1640)과 4) 영국 동부 서퍽 지역에서 교구목사로 있었던 존 뉴스텁스(John Knewstubs,1544-1624), 그리고 영국 동부 링컨셔 지역의 목회자 토마스 스파크(Thomas Sparke, 1548-1616)가 있었다.

 

 그리고 1월 14일 토요일부터 1월 18일 수요일까지, 5일 동안 이어진 회의에서 9명의 주교들이 국교회 진영을 대표하여 참여하였다. 그들 중에는 런던 주교로 있다가 회의 몇 달 후, 국교회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켄터베리 대주교에 오른 리처드 뱅크로프트(Richard Bancroft, 1544-1610)와 일곱 명의 지역교구 주임사제들이 있었다.

 

 그 사제들 중 한 사람이었던 랜슬롯 앤드류스(Lancelot Andrews, 1555-1626)는 당대 잉글랜드에서 가장 박식한 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는 15개 국어에 능통했고, 신학과 교회조직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훗날 앤드류스는 킹 제임스 성경번역위원에 포함된다.

 

 여기서 주목하고 넘어가야 할 점은 국교회 대표단의 몇 인물들이 청교도 측 인물들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이다. 칼라일 지방의 주교 헨리 로빈슨(Henry Robinson, c.1553-1616)은 레이놀즈의 가장 오랜 친구였고, 레이놀즈와 다른 청교도들처럼 복음주의자이자 칼빈주의자였다. 아담 니콜슨은 서로 다른 진영에 있었던 이 두 사람이 회의 중에, '분열적이기보다는 연합적'이었다고 하였다. 5)

 

 그리고 청교도 진영의 체더튼과 뉴스텁스는 국교회 진영의 앤드류스와 과거에 케임브리지에서 함께 공부했었고, 당시 세 사람은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지던 사이였다. 그리고 체더튼과 뱅크로프트의 관계이다. 비록 후에 뱅크로프트가 체더튼이 변호했던 청교도주의를 맹렬하게 반대하기는 했지만, 그와 체더튼은 한 때 가장 절친한 사이였음은 틀림 없었다. 6)

 

 햄프턴 궁정회의에 참여한 4명의 청교도들을 상대하기 위해 국교회 진영에서는 18명이나 되는 국교회 감독파 지지다들이 참석했다. 회의는 감독파 진영에게 유리하도록 판이 짜여 있었고, 실제로 회의는 청교도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으며, 결국 청교도들의 관심사항들은 하나도 다루어지지 않았다. 회의에서 왕이 보인 태도는 국교회 주교들에게 상냥했다고 볼 수 없지만, 청교도들에게 보인 자세는 매우 엄격했다.

 

 후에 제임스는 말하기를, '(나는) 사안들을 조목조목 다루는 데서 피하기 위하여, 청교도들을 맹렬히 몰아 붙임으로써 (청교도들 중) 어느 누구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답변할 수 없도록 하였다.'고 했다. 7) 청교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회의는 완전히 실패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 결과 청교도 운동을 이끌었던 몇 명의 주요 인물들은 더 이상 정치적 개혁은 성취될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회중주의적 교회정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8)

 

 1월 16일 월요일, 회의가 시작되고 둘째 날이 흐른 뒤 오후가 되었다. 한 겨울날 해가 저만치 저물어 가고 있을 때, 레이놀즈는, '교회에서 읽혀져야 할 권위 있는 통일된 성경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9) 이는 놀랄만한 제안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청교도들이 만족하게 여기고 있는 제네바 성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담 니콜슨(Adam Nicolson)은, 레이놀즈가 그렇게 제안한 동기는 엘리자베스 1세가 장려한 주교성경(The Bishop's Bible)을 다시 번역하기 위해서였다고 타당성 있게 말하고 있다.

 

 그 주교성경은 막대한 비용과 정성을 들여서 출간되었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었다. 그것은 청교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 성경은 의심할 바 없이 튜더 왕가에서 출판된 성경들 중 가장 초라하다고 할만큼 수준 낮은 번역이었다. 10) 그러나 데렉 윌슨(Derek Wilson)의 주장을 이어받은 데이비스 다니엘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그는 레이놀즈의 제안이 히브리어와 헬라어 학문의 진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제네바 성경이 출간된 시점부터 레이놀즈가 새로운 성경 번역을 제안하기까지 5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 동안 이루어진 원어 연구의 진보는 새로운 성경 번역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11) 레이놀즈의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었든지 그의 제안은 제임스에게 큰 흥밋거리였고 곧바로 그를 새 번역 작업에 뛰어들게 했다.

 

 제임스 왕의 강력한 가정교사였던, 당대 역사가이자 인문주의자로 알려졌던 조지 부캐넌(George Buchannan, 1506-1582)이 제임스에게 철저하게 가르치고 주입시킨 성경도 바로 제네바 성경이었다. 12)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던 번역본도 제네바 성경이었다. 그러나 제임스 왕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제네바 성경을 매혹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13) 왜냐하면 제네바 성경의 몇몇 본문들이 그의 절대적인 군주체제를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폭군(tyrant)'이라는 단어가 1599년판 제네바 성경에는 30회나 나타난다. 이에 반해 제임스가 나중에 공인한 킹 제임스 성경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14) 그리고 출애굽기 1장에서 산파들이 갓 출생한 히브리 남자아이들을 살려줌으로써 파라오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장면에 대하여 제네바 성경은, "산파들의 거짓말은 명백하게 '악'한 것이지만 그들의 불순종은 합법적이었다."라는 주석을 달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제임스가 새로운 번역을 위한 지침 목록에서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원어의 근원을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경에 난외주를 전혀 두지 말라고 명시한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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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ilson, People's Bible, 80 81.

2) Nicolson, God's Secertaries(현대판), 56에서 인용

3) 1000인의 청원(Millenary Petition)에 관해서는 로렌스 사세크(Lawrence Sasek)의 편집본인 Images og English Puritanisim: A Collection of Contemporary Sources 1589 1646 (Baton Rouge/London: Louisiana State University Press, 1989), 338 341을 보라.

4) 한 번은 채터튼이 2시간 동안 설교를 했을 때, 청중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그가 설교를 맺으려고 하자, 회중들은 소리쳐, "하나님을 위해서라도, 체더튼 목사님 계속하세요! 계속하세요!"라고 한 일화가 있다. Wilson, People'Bible, 83에서 인용, 채더튼에 관해서는 포터(H.C. Porter)의 Reformation and Reflection in Tudor Cambridg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8), 239 241와 니콜슨(Nicolson)의 God's Secretaries, 130 131을 보라.

5) God's Secretaries, 45

6) Nicolson, God's Secretaries, 45 46

7) Nicolson, God's Seceretaries(현대판), 54에서 인용.

8) Daniel, Bible in English, 432. 햄턴 회의에 관해서는 Nicolson, God's Secretaries, 42 61을 참고하시오.

9) Nicolson, God's Secretaries(현대판), 57에서 인용.

10) 주교 성경에 관해서는 Daniel, Bible in English. 338 347을 참고하라.

11) Daniel, Bible in English, 435 436; Wilson, People's Bible, 86 87과 니콜슨이 릴랜드 라이켄(Leland Ryken)의 질문에 대한 다니엘의 답변을 기록한 부분, '왜 청교도들은 그들이 선호했던 "제네바 성경"이 이미 갖추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번역을 요청했는가?'라는 부분을 보라. in The Legacy of the King James Bible. Celebrating 400 Years of the Most Influential English Translation (Wheaton, Illinois: Crossway, 2011), 46

12) 부캐넌이 어떻게 킹 제임스 성경으로부터 지도를 받았는가에 관한 그의 젊은 시절에 관한 것은 데이비드 팀즈(David Teems)의 Majestie: The King Behind the King James Bible (Nashville: Thomas Nelson, 2010), 40 49을 보라.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오역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캐넌은 생전에 킹 제임스 성경을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이니 말입니다.

13) Basil Hall, "The Geneva Version of the English Bible: Its Aims and Achievements" in W.P. Stephens, ed., The Bible, the Reformation and the Church: Essays in Honour of James Atkinson (Sheffield, Englan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5), 125 126.

14) Nicolson, God's Secretaris, 58 '폭군(tyrant)'이라는 단어가 제네바 성경에 400번이 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1599년판 제네바 성경 PDF버전을 살펴보면 약 30회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언급한 횟수는 제네바 성경 원본, 곧 1560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15) 지침들에 관해서는 데이비트 노튼의 A Textual History of The King James Bibl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m 2005), 7-8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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