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The Unevangelized)의 구원 1
(부제 :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어느 정도 성경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해 보았을법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조금 넓게 생각해 보면, 인류 역사를 통하여 가장 자주 반복되었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관한 한, 개인적인 동시에 전체적이며, 기초적인 동시에 근본적인 물음입니다.
성급한 분들은 이 질문에 대하여 yes냐 또는 no냐는 식의 짧고 굵은 답변 얻기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한 단답형 답변으로 이해될만한 차원의 물음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이 물음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의 핵심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좀 더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물음을 던지고 답하는 사람의 영혼과 관련하여 영원한 생명 혹은 영원한 사망에로의 갈림(분기점)이 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이 문답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인간본위적인 관심과 이성주의적인 호기심으로부터 접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지요. 누군가 복음을 듣지 못한 이유 때문에 구원에서 제외된다면 개인에게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 될 뿐더러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들을 만한 기회조차 주지 않은 하나님은 결코 공평정대한 신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을만한 형편에 처해 있지 않은 사람에게 그것을 빌미로 책임을 묻고서 결과적으로 구원의 자리에서 박탈하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과연 그 분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풍성한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대개 이러한 인식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님을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확실한 근거로 삼거나 혹은 자신의 의도 안에도 하나님의 뜻을 허용하거나 판단해도 괜찮은 합당한 이유로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과 그 분의 뜻에 관하여 오도된 사색과 왜곡된 결론에 이르게 할뿐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커다란 죄악이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분노를 사는 일이 됩니다.
따라서 가능한 한 이 문제에 관하여 개인적 편견과 이성적 선입견을 버리고 사안의 본질을 바르게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물음과 답변에 관하여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를 정확하게 분별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이 물음을 답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 그 진술에 의존하여 설명드릴까 합니다. 그중에서도 구원에 관한 도리를 가장 잘 소개하고 있는 로마서 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 후에 성경을 가장 탁월하게 해설하고 있는 개혁주의 교리(신앙고백)에 언급된 내용을 통하여 이 물음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을 재차 확인 및 정리해 드리고자 합니다.
1. 로마서 본문을 중심으로...
로마서는 바울이 제국의 수도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보내기 위해 기록한 성경책입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를 위하여 이 서신을 기록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올바르게 증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복음을 규명하는 일이 중요한가 하면,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없이는 온전한 구원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과 구원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16-17을 통하여 이 사실을 이렇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
우리는 여기서 구원에 관한 긍정적인 두 가지 요소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복음은 누구에게나(‘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 없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구원은 거저주시는 은혜, 곧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방식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길은 특정한 부류에게만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차별없이 모두에게 열려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도달할 수 있도록 충분히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다음 구절에서 이렇게 확증하듯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런데 바울은 동시에 구원에 관한 부정적인 관점을 분명하게 피력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본래 ‘죄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롬 3:9)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는 것은 통상적으로 누구나 인정하듯이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다’라거나 ‘잘못을 범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 없다’라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부패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러한 인간 타락의 정도를 로마서 3장에서는 너무나 사실감 있는 어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3:10-18)
위의 본문은 성경에서 말하는 타락이란 영적으로 완전히 죽은 상태, 즉 하나님이 만족할만한 도덕적 견해와 능력도 없거니와 어떠한 의도나 행위로도 구원의 일부분이라도 쟁취할 수 없을만큼 완벽하게 부패해져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바울은 인간 타락의 존재상을 에베소서 2장 초두에서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엡 2:1)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죄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은 ‘이미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 있는 존재다’라는 의미입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죽은 자에게는 썩고 부패하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죽은 자는 생명과 관련된 어떠한 마음도 가질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실행에 옮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죽음은 최초를 죄를 범한 아담과 더불어 그의 모든 후손에게 동일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다시 말해서 우리의 처음 조상의 죄와 죄책이 인류 후손에게 그대로 전가되었습니다. 그러한 결과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죄 안에서 부패한 본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죄 안에서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공적인 불순종, 즉 원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죽음의 법 아래서 태어나게 되었고 이러한 근원적 부패로 인해 모든 하나님에 대하여 무감각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에 대하여 무능하며 모든 일에 악한 성향을 가지며 실제적인 범죄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7:13-19)
원죄와 자범죄의 실제적 원인이 되는 부패한 본성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모든 부패한 양상들은 모든 사람은 실제적인 죄인이라는 것과 모든 죄에 따르는 죄책(값)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과 공의로운 처벌을 받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여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롬 5:16)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롬 5:18)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롬 5:19)
이렇게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부패한 본성과 죄에 대한 애착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자못 치명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의 마음과 자연 가운데심어 두신 하나님에 관한 바른 지식과 그 분을 순종해야 할 온전한 법을 고의적으로 거부하며 완전히 왜곡하여 하나님과 상관없는 다른 신과 다른 종교와 다른 신앙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롬 1:20-25)
그야말로 모든 죄인은 불법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람은 금세의 불행과 영적 불행 뿐 아니라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정한 모든 저주와 책망과 심판을 받지 않으면 안 될 자리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개입과 죄사함과 실제적으로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특별한 조치가 없이는 누구라도 스스로는 죄와 심판의 굴레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이나 어른이나, 과거인이나 현재인이나 미래인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아담의 후손은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죄를 사함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6-10)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만이 모든 죄인이 감당해야 할 빚을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대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택한 자들에게 이 놀라운 사실은 깨달을 수 있도록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구원은 사람에게서 난 어떤 것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것임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4-28)
구원에 관한 이 놀랍고 신비로운 비밀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이 복음은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며 전제적인 조건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처음 타락의 순간부터 구원에 합당한 복음을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제시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 복음을 통하여 택한 자를 부르셨습니다. 혹자는 구약과 신약 시대에 살았던 성도들의 차이점을 부각하여 구원을 얻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만, 구약과 신약에 언급된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언약(약속)은 본질과 실체에 있어서 동일합니다. 즉 죄인이 구원을 받는 원리와 과정과 목적은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나며 적용됩니다.
“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9-13)
바울은 이같은 진실을 좀 더 설득력있게 증거하고자 구약 시대의 대표적인 복음 증거자였던 모세와 이사야의 예를 듭니다. 과거에 그들이 증거한 복음은 현재 자신이 전하는 복음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다름이 있다면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에 따른 진리의 판명성의 정도차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롬 10:19-20)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의 복음을 듣고서 믿음을 갖도록 하시기 위해 어느 시대에나 복음의 일군을 세우시고 그들을 세상 가운데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을 증거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말씀(복음) 안에서 믿음과 들음의 역사, 확신과 깨달음의 역사를 경험하는 기회를 부여하셨습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4-17)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사람의 입으로 복음이 증거된다고 하여 구원을 사람의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증거자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시지만, 복음의 참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은 성령의 주도적인 역사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참 복음과 참 구원을 이해함에 있어서 성령의 개입과 인도는 절대적인 요인입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친히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게 하시며(롬 8:16),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며(롬 8:26), 그리스도에 관한 참 말을 우리의 양심 가운데 증거하시며(롬 9:1), 말씀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십니다(롬 15:16).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복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구원의 전 과정은 말씀과 더불어 함께 하는 성령의 전적인 역사로 보아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성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성자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같이 바울이 증거하는 구원에 관한 교훈은 명백합니다. 이것은 바울 개인의 사색이나 경험에서 나온 논리나 주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전체가 말하고 있는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복음은 인간의 타락과 함께 주어졌습니다. 귀로 듣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하더라도 그보다 더 확실한 마음과 자연 가운데 보편적인 계시의 형태로서 차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알려졌습니다. 명문화된 율법 조문을 보지 못했고, 누군가를 통하여 구체적인 복음을 제시받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본성과 양심을 통하여 부패한 죄성과 그로 인한 준엄함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정죄 의식을 갖습니다.
“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3-14)
타락한 본성과 양심은 비록 하나님에 대하여 분명한 앎을 상실하고 하나님께 대한 회복에 관심이 없지만, 그렇다고하여 그것이 불의를 좇아 행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와 심판에 대하여 하등의 핑계거리 되지 못함을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타락한 본성과 양심으로서는 아무리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하고 공로를 쌓는다고 할지라도 구원에 이르기는커녕 오히려 정죄와 심판 받을 합당한 이유가 된다는 것을 마지막 날에 알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롬 3: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롬 5:18)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롬 2:16)
윗 구절들은 우리가 복음을 들어야만 하는 이유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에 대한 어떠한 관심이나 애정도 없으며, 오히려 복음을 듣고 순종하는 일을 거부하고 조롱하는 어떤 이들은 최종적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 일을 두고서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려 합니다. 그러고는 하나님을 ‘사랑이 없으시다’, ‘공평하지 않으시다’, ‘부당하며 독단적이다’ 라며 하나님을 향해 온갖 몹쓸 말들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인의 죄값을 물으시는 것과 죄책에 대하여 정확하게 반응하시는 것과 구원받지 못할 자들을 공의롭게 대접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신적인 주권이며 특권입니다. 만약 하나님께 모든 삶의 죄를 원인없이 간과할 것을 요구하고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조차 인심써서 구원해 주실 것을 바라며,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똑같은 방식으로 다루어주실 것을 부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주권자이신 하나님으로서의 자격과 권한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긍휼을 베풀셔야 할 의무가 결코 없으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기쁘신 뜻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한 방식으로 긍휼을 베푸실 수 있는 권리를 갖고 계십니다. 누군가 구원과 복음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면 후자의 경우 때문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라고 말합니다. 은혜는 받는 자 편에서 요구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받는 자 편에서 어떠한 자격이나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서 하나님께 무조건 요구하여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닙니다. 혹자는 왜 하나님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구원의 기회를 제공해 주시지 않는가라며 푸념을 늘어 놓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요구조차 할 수 없을만큼 하나님께 원수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중에 어떤 이들에게 복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놀라운 비밀(이제는 더 이상 감추어진 비밀이 아니지만)을 사도 바울은 감격적인 어조로 이렇게 고백하면서 복음과 구원에 관한 진술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2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