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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에 기대어 / 윤경희(김진길)

작성자김보람|작성시간26.06.15|조회수4 목록 댓글 0

청령포에 기대어

 

윤경희

 

떠나온 그 여린 몸 섬 하나 되어갔지

 

기댈 곳 없는 마음은 가마득한 절벽

 

두고 온 그리움들이 달빛 아래 피어났네

 

​구부러진 물길처럼 버텨야 했던 세월

 

단절의 적막 한 채 너부시 노를 젓네

 

이제야 목 놓아 우는가, 붉은 저녁 물소리

 

- ≪나래시조≫ 202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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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에 기대어 나를 유배하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1,700만 명을 맞았다고 합니다. 수양대군의 핍박을 받아 강원도 영월의 한 유배지로 쫓겨난 어린 단종의 삶과 그의 마지막을 거둔 엄흥도의 이야기를 영화화했는데 대박이 났습니다. 영화의 흥행으로 인해 예나 지금이나 유배하기 딱 좋은 오지의 영월 땅에도 모처럼 활기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외지인들의 방문이 이어져 올해 열린 단종제는 더욱 의미 있는 행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래시조2026년 봄호에서 만난 윤경희 시인의 청령포에 기대어는 단종이 머물렀던 청령포를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피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 닿은 청령포. 그곳의 지형은 거센 물살에 에워싸인 외딴섬과 같아서 나룻배가 없이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소용돌이가 심해서 여름철 익사 사고가 잦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 옛날, 어떻게 저런 지점을 찾아냈을까. 청령포는 그야말로 최적의 천연 감옥이었습니다. 시인의 노래에서도 그 현장은 다음과 같이 잘 드러납니다. ‘떠나온 그 여린 몸 섬 하나 되어 갔지’, ‘기댈 곳 없는 마음은 가마득한 절벽’, ‘두고 온 그리움들이 달빛 아래 피어났네’. 처절한 단종의 심경과 청령포의 외경이 잘 어우러집니다. 그리움의 크기와 깊이, 그리고 그 결을 어찌 가늠할 수 있겠냐마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독자에게도 복합적인 공감이 작동합니다. 그런 마음이 흘러 닿은 둘째 수. ‘구부러진 물길처럼 버텨야 했던 세월’, ‘단절의 적막 한 채 너부시 노를 젓네’, ‘이제야 목 놓아 우는가, 붉은 저녁 물소리’. 역사적 사건이 있고 나서 참 많은 세월이 흘렀고, 세월의 강물을 따라 그만큼 사람도 흘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의미 없이 흘러간 것은 아닌 듯합니다. 똑같은 사건일지라도 새롭게 조명되고, 관심이 증폭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마냥 흘러가는 그 물줄기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시인 역시 그 절절한 물소리를 포착하여 지면으로 독자를 만났습니다. 창작은 그렇게 대중에게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갑니다. 청령포에 기대어 나를 유배시켜 봅니다. 여전히 관음송이 푸릅니다.(김진길 시인)

 

― ≪나래시조≫ 2026년 여름호

 

200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집시, 은하를 걷다』 『밤톨줍기』 『화석지대』 『거미의 협상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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