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회관 가는 길
박명숙
이른 아침 골목에 햇살 한 상 차려진다
할매들이 걸음을 밀며 물고기처럼 몰려들고
해풍에 젖은 그늘은 수초처럼 싱싱해진다
일렁이며 늙어가는 아침의 문장들은
주름도 완강하여 절독을 할 수 없는데
햇살은 뱃살 불리며 골목을 구독 중이다
- ≪시조미학≫ 202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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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있는 한 아직 따뜻한 골목
최근 정부의 주민등록 통계에 의하면 대한민국 전체 세대 중 1인 세대가 42%로 가장 많습니다. 2025년 말 기준 1인 세대는 1,027만 2,573세대로 1,000만 세대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연령별 1인 세대는 70대 이상(21.60%), 60대(18.90%), 30대(16.92%) 순이었습니다. 1인 세대의 증가는 혼자 사는 고령 인구 및 이혼, 미혼 등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뒤따릅니다. 일각에서는 혼자 사는 일상을 행복으로만 포장한 TV 예능 프로그램의 탓으로 화살을 돌리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의 깊은 고독과 무관심의 아픈 그림자가 아른거립니다.
《시조미학》 2026년 봄호에 발표된 박명숙 시인의 「마을회관 가는 길」에서 그런 풍경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 풍경은 참으로 따뜻합니다. ‘이른 아침 골목에 햇살 한 상 차려진다/ 할매들이 걸음을 밀며 물고기처럼 몰려들고/ 해풍에 젖은 그늘은 수초처럼 싱싱해진다//’ 첫째 수를 감상해 보면 이곳은 밤사이 드리웠던 어둠이 걷히고 동살이 비쳐오는 어느 바닷가의 마을 풍경인 듯합니다. 부지런한 할매들이 불편한 몸을 유모차 같은 보조기에 의지하며 골목길을 가는 모습입니다. 밤사이 적적하고 눅눅했던 생각들은 햇살 속에서 활기가 넘치며 외려 뽀송해집니다. 사람의 온기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설렘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풍경의 내면을 잘 알기에 시인은 이 골목에서 눈을 뗄 수 없었나 봅니다. ‘일렁이며 늙어가는 아침의 문장들은/ 주름도 완강하여 절독을 할 수 없는데/ 햇살은 뱃살 불리며 골목을 구독 중이다//’ 인생은 나그네처럼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입니다. 아침에 뜨는 햇살도 저녁이면 늙고, 저물어 갑니다. 물론 다음날 해는 다시 떠오르겠지만... 그래서일까요. 한 번 뿐인 인생은 삶의 모양대로 절절한 서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팽팽하고 활력 넘치던 그런 시절을 지나 주름만 깊어진 서사의 주인공들은 이제 혼자가 되어 고독합니다. 그 우울의 터널을 벗어나려고 이른 아침부터 유일한 위안을 찾아 나섭니다. 해초처럼 싱싱해진 표정으로 오가는 골목을 햇살은 외면할 수 없어서 더욱 배를 불립니다. 골목은 조명 속의 런웨이runway와도 같습니다. 햇살이 있는 한 아직 골목이 따뜻한 이유입니다.(김진길 시인)
― ≪나래시조≫ 2026년 여름호
200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집시, 은하를 걷다』 『밤톨줍기』 『화석지대』 『거미의 협상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