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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봉투 / 양상보(김석이)

작성자김보람|작성시간26.06.15|조회수4 목록 댓글 0

월급봉투

 

양상보

 

과거는 빛바랠수록 기억이 영롱하다

삼십여 년 가지런히 뭉텅이로 묶인 채

벽장 속 옛날 그대로 옹송그려 앉아있지

 

이것저것 제하느라 주판알 털어가며

시장통 선술집에 삥땅까지 감추느라

새로 쓴 월급 내역서, 그래도 당당했지

 

한 사람은 모르지만 평생 나는 기억하지

얄팍했던 그 봉투를 지금까지 모셔놓고

젊은 날 꿈의 자리를 더듬고 있는 아내

 

- ≪나래시조≫ 202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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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봉투, 그 활력의 보고寶庫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월급봉투를 벽장 속에서 한 묶음 발견한 날, 생생한 과거의 기억 속으로 달려간다. 얄팍했지만 젊은 날의 꿈들이 차곡차곡 남아 있는 월급 봉투는 곧, 나의 삶이고 희망이라고 이 시조는 말한다. 지금 생각하니 젊은 날 꿈의 자리를 더듬고 있는 아내가 더없이 고맙기만 하다. 월급봉투에 스며있는 시인의 생생한 기억에서 그 시절을 떠올려 본다. 1990년대 초반 컴퓨터 전산망이 보급되면서부터 사라지기 시작한 월급봉투는 이제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월급을 봉투로 받던 박봉의 시절, 이것저것 제하고 시장통에서 마신 술값까지 1/N 하면 더 얄팍한 봉투가 되었고, 미리 준비한 새로 쓴 봉투로 갈아 넣었던 비밀 하나쯤, 가슴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 당시에는 봉투 겉면에 지급 내역이 적혀 있거나, 풀로 봉인했기 때문에 면도칼로 봉투 밑바닥을 살짝 떼고 돈을 빼내어 삥땅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월급날이면 외상값 받으러 오는 사람, 어떻게 알았는지 소매치기도 기승을 부려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양복 안주머니에 옷핀을 고정한다거나, 신발 밑창에 깔고 오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남편이 월급봉투를 들고 귀가하면 온 가족이 방안에 둘러앉았고 빳빳한 신권 뭉치를 침 발라 돈을 세는 모습, 식구들끼리 맛난 음식을 차려놓고 즐겁게 먹고 있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진다. 월급봉투는 단순한 돈주머니가 아니라 가장의 권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활력의 보고寶庫였다. 스마트폰 알림음 한 번으로 끝나는 요즈음 월급은, 그때의 무게감이 주는 특유의 낭만과 긴장감을 앗아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의 꿈자리는 밤하늘을 수놓는 별이 되어 반짝반짝 빛난다. 그 반짝임을 등에 업고 그때는 그랬었지고개를 주억거리는 추억을 공유한다. 지나고 보면 시간은 아무리 힘들었어도 힘든 과정을 지워버리고 좋았던 기억만을 되살리는 원근법을 가진 듯하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또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며 활기차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김석이 시인)

 

≪나래시조≫ 2026년 여름호

201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천강문학상, 중앙시조신인상 수상.

시집 『심금의 현을 뜯을 때 별빛은 차오르고』외 3권.

2019년『소리 꺾꽂이』아르코 나눔 도서 선정.

동시조집『빗방울 기차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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