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탐방]- 김재용
익산시립황등도서관
시간은 총알택시보다, KTX 보다, 시애틀행 비행기보다도 더 빠르다. 그 빠르고 빠른, 시간을 쫓아서 여행 간다. 여행은 시간을 고체화固體化 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 했던가? 익산시에는 시립도서관 9곳이 있다. '영등' '마동' '부송' '금마' '유천' '모현' '황등' '모인여행숲도서관' '수도산그림책도서관'이다. 익산은 황등석으로 유명하다. 석공예의 미적 탐구探求를 위해 익산시에서 제일 작은 황등도서관을 찾았다. 하지만 우선 급한 것이 민생고다. 도서관 오는 내내 배고픔을 참으며 온 터라, 도서관에 주차하고 바로 식당으로 향한다. 오는 날이 장날이다. 황등면 전통시장 주변은 장사꾼들 좌판이 도로를 점거해 번잡하다. 비빔밥으로 유명한 식당은 늦은 점심시간임에도 붐빈다. 지역 이름이 붙은 육회비빔밥은 찰지고 맛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황급히 식당을 나와 황등역에 왔다. 황등역은 나훈아 노래 '고향역'의 배경이 된 역이다. 기차 모형 석조공예품에는 '고향역' 노랫말과 가수 나훈아의 얼굴이 조각된 거대한 화강암 구조물이 '돌의 도시'답게 버티고 있다. 훈아 형과 어색한 조우도 없이 돌아서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도서관은 황등노인복지관 건물 2층에 있다. 직원이 상냥하게 인사를 건넨다. 열람석에는 네다섯 명의 이용객이 책 속에 묻혀있다. 조그마한 도서관은 여느 도서관과 달리 특별한 곳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석재 코너이다. 석탑, 석등, 석조미술, 채석가공, 암석 암반 등의 서적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이 유명한 황등석의 고장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대목이다. 익산시 일대를 한때는 '이리裡里'라고 불렀다. 본래 솜리, 솜니, 솝리 등으로 불렀는데 한자로 옮겨 쓰면서 이리가 되었다. 조선총독부가 만경-김제평야에서 수탈한 쌀의 수송을 위해 호남선을 부설하고 익산역(당시는 이리역)을 세우고 호남선(대전-광주)과 전라선이 교차하는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1995년 도농통합 때 '이리시'와 '익산군'을 통합하여 익산시가 된다. 통합 당시 '이리시의회'가 이리시가 아니라 익산시라는 명칭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유는 이리역 폭발 사고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가 생긴 점, 동물 이리를 연상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도 나이 지긋한 분들은 익산 시내를 이리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익산'하면 익산군의 이미지 때문에 더 작은 지역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익산益山은 '산이 더해지다'란 뜻이다. 고려 때는 '익주益州'였는데, 조선 태종 대에 전국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주州'로 끝나는 고을이 너무 많아 격에 맞지 않는다고 해 그중 일부를 '산山'이나 '천川'으로 개칭하면서 익주 역시 '익산'으로 개칭되었다. 우리나라 화강석 판석은 포천석, 문경석, 거창석과 황등석이 있다. 황등석은 이곳 황등면에서 채굴되며 건축 자재와 조각, 석재 조형물에 쓰인다. 국회의사당, 대법원 청사, 청와대 영빈관 등에 건축 자재로 사용되었다. 도서관 근처 '석제문화체험관'이 있어서 더 많은 석공예품을 볼 수 있다. 익산에는 국립익산박물관, 백제왕궁박물관, 익산보석박물관, 익산근대역사관, 천호성지가톨릭성물박물관, 원광대, 우석대박물관과 가람문학관이 있다. 내일은 월요일이라 휴관하는 곳이 많다. 가람문학관을 찾아 걸음을 재촉한다.
가람문학관
'가람문학관'은 현대 시조의 거장 가람 이병기 선생의 업적과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7년 개관했다. 시조문학과 국문학, 그리고 한글을 지켜온 한 지성인의 삶이 있는 역사 공간이다. 천여 년에 걸쳐 뿌리내린 한민족 전통 시문학인 시조를 재정립하여 현대화 시킨 분이 가람 선생이다. 일명 현대시조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선생은 「시조란 무엇인가」, 「율격律格과 시조」, 「시조원류론時調源流論」, 「시조는 창唱이냐 작作이냐」, 「시조는 혁신하자」, 「시조의 발생과 가곡과의 구분」 등 20여 편의 시조론을 언론이나 학술지에 발표하며 시조의 현대화를 이끌었다. 시조와 현대시를 동질로 보고 시조창時調唱에서 분리, 시어의 조탁과 관념의 형상화, 연작連作 등을 주장하여 시조 혁신을 선도하면서 그 이론을 실천하여 1939년 『가람시조집嘉藍時調集』(문장사)을 출간하였다. 가람 선생이 남긴 시 한 구절, 한글 한 자 한 자에는 민족에 대한 사랑, 말글에 대한 열정과 교육자로서의 소명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 '가람문학관'과 그의 생가 '수우재'가 그림같이 풍경화를 연출하는 봄날. 넓은 주차장을 지나면 동상과 기념비와 대표작 「창窓」이 보인다.
우리 방으로는 창窓으로 눈을 삼았다.
종이 한 장으로 우주宇宙를 가렸지만
영원히 태양太陽과 함께 밝을 대로 밝는다.
너의 앞에서는 술 먹기도 두렸다.
너의 앞에서는 참선參禪키도 어렵다.
진기한 고서古書를 펴서 서권기書卷氣나 기를까.
나의 추醜와 미美도 네가 가장 잘 알리라.
나의 고苦와 낙樂도 네가 가장 잘 알리라.
그러나 나의 임종臨終도 네 앞에서 하려 한다.
'수우재守愚齋'는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인 가람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생가이다. 소박한 초가에서 태어나 한글과 시조, 우리 말글을 지키고 가꾼, 가람 이병기 선생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수우재'는 '어리석음을 지킨다.'는 뜻. 마당에 자리한 우담愚潭과 우석愚石에서 보듯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살자'라는 뜻이다. 생가 바로 옆에는 수령 약 200살 정도 탱자나무(전북특별자치도 자연유산 지정)가 있다. 사랑채는 수우재守愚齋 모정에는 승운정勝雲亭 현판이 걸려있다. 생가는 초가지붕이며 건물 자체에는 특징이 없으나 안채와 사랑채에서 고풍스러움이 묻어난다. 안채는 ㄱ자형 3칸의 고방채와 안채 뒤쪽 장독대가 있다. 뜰에는 감나무, 대추나무, 자두나무, 모과나무, 복숭아꽃이 벙글고 있다. '수우재'는 선생이 태어나고 숨을 거둔 곳이다. 스스로 삼복지인三福之人이라 자처할 만큼 술과 시조와 제자를 사랑한 분.
빼어난 가는 닢새 굳은 듯 보드롭고
자짓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대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 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히 않고 우로雨露 받어 사느니라
-「난초4」전문이다. 술을 사랑하고, 제자를 아끼며, 유별날 정도로 난초를 좋아했다. 가람의 일기에 적힌 난의 종류만 해도 다양하다. 건란, 복주한란, 풍세란, 사란, 오란, 십육라한, 철골소심, 관음소심, 신죽소심, 일경구화, 옥우란, 자한란, 대만한란, 도림란 등이다. 이 중에서 도림란은 춘란의 일종으로, 가람의 도움으로 이름을 얻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서 1년 만에 풀려나 집에 돌아온 선생은 말라 죽은 난을 보고 극히 슬퍼하였다고 한다. 생가 뒷산에 대나무가 있어서 운치를 더하고 있다. 대나무밭 뒤쪽에 가람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묘소에는 '가람선생묘'라는 작은 비석만 묘소 옆을 지키고 있다. 대나무를 스쳐 부는 바람이 휑하니 지나간다. '삼복지인三福之人' 가람 선생의 시조 사랑을 되새기면서, 미륵사지 석탑을 찾아 발걸음을 재촉한다.
미륵사지
미륵사는 백제의 최대 규모의 가람伽藍이었다. 신라의 황룡사, 고구려의 금강사와 함께 삼국시대의 각국을 대표하는 절 중에 하나다. 또 가장 거대한 백제 석탑이 있는 절터이다. 현재 미륵사지 드넓은 절터에 반쯤 남은 석탑과 당간지주만 덩그러니 서 있다. 서탑 주변에는 석탑의 잔해인 듯 많은 돌이 줄지어 누워 있다. 삼국유사에 백제 무왕이 639년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선화공주와 서동 설화와 관련된 여러 이견異見들로 설왕설래하는 상황이다. 삼국유사에는 미륵사와 관련된 설화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법왕이 처음 짓기 시작 무왕이 마무리를 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서동이 무왕이 되어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 아래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백제 땅 궁남지 남쪽에서 마를 캐서 팔아 살아가던 서동은, 서라벌에서 우연히 만난 선화공주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신분과 출신 나라가 서로 다른 처지라 꾀를 내어 서동요를 퍼뜨린다. 결국 궁까지 그 노래가 전해지고. 추방되는 선화공주를 서동은 백제로 데려와 결혼한다. 황금을 발견하고 부자가 된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신망을 받아 백제의 왕이 된다.
미륵삼존불의 출현을 꿈에서 본 선화공주의 이야기를 토대로 서동(무왕)은 미륵사를 짓는다. 미륵사는 유래를 찾기 힘든 가람과 탑의 배치 등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삼탑삼三塔 삼금당三金堂의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졌다. 중앙에 거대한 목탑을 건축하고 동쪽과 서쪽에 석탑을 쌓았다. 세 개의 탑 뒤에는 불당이 각각 자리했다. 무왕武王이 35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전한다. 무려 1,338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백제 최대의 사찰 미륵사다. 조선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전해지며 미륵사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서쪽에 탑만 반파된 채 휑하니 남아있었다. 미륵사지 서탑을 해체하던 중 2009년 1월 첫 번째 심주석心柱石 안에 봉안된 사리병과 금제사리봉영기, 구슬, 사리장엄구 등이 나왔다.
반쪽이나마 탑의 형체는 유지되고 있었던 서탑과 달리, 미륵사지 동탑은 사진과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근현대에는 이미 땅에 묻힌 기단부를 제외하고 완전히 소실된 뒤였고, 탑의 부재만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미륵사지 주변에는 민가 주변에 많은 돌이 흩어져 있었다. 이 돌들은 후에 탑의 층수를 바로잡는 데에 쓰였다. 미륵사지 석탑은 원래 7층 이상으로 추정되며, 1층은 사방에 입구가 있는 십자형 내부 구조로 설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체·보수 과정에서 6층까지만 남아있었고, 1915년 일제 보수로 콘크리트가 덧씌워진 흔적이 남아 원형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복원 전의 콘크리트를 걷어낸 정도 외에는 복원 상태가 다소 미흡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왕궁리 유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유적에 왔다. 이미 날은 어둡고 밤공기는 차갑다. 비상용으로 준비해 간 방한 코트를 꺼내입어도 소소리바람은 겨드랑이를 파고든다. '백제왕궁박물관'은 적막 속에 묻혔다. 만개한 벚꽃 아래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미륵사지나 왕궁리 유적 등이 등재되었다. '왕궁리오층석탑'은 1단의 기단 위로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 해체·수리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탑의 기단은 네 모서리에 8각으로 깎은 주춧돌을 기둥 삼아 놓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길고 큰 네모난 돌을 Z형 모양으로 맞물리게 여러 층을 쌓아 올려놓아 목조탑의 형식을 석탑에서 그대로 재현했다. 탑 1층부터 5층까지 탑신부 몸돌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1층 몸돌에는 다시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 모양을 조각했다. 지붕돌은 얇고 밑은 반듯하나,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위로 치켜져 있으며, 방울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각 층 지붕돌의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해 다른 돌을 끼워놓았다. 5층 지붕돌 위에는 탑머리 장식이 남아있다.
왕궁리오층석탑은 화려하지도 크지도 과하지 않는 단아하면서 균형미가 있는 탑이다. 오랫동안 탑돌이 해도 발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익산은 가는 곳 어디에나 석조 구조물을 많이 볼 수 있다. 1991년 제29회 무역의날에 100만 불 수출탑을 수상하며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황등석이 지역 경제의 버팀석이 되었다. 익산시 예술의전당, 청소년수련관, 실버건강문화센터, 중앙체육공원, 배산체육공원 등 어디 가도 석조공예품들이 버젓하게 서 있다. 불국사를 창건할 당시 재상 김대성은 가장 뛰어난 석공이라 알려진 백제의 후손 아사달을 불러 석가탑 조성을 맡긴다. 아사녀는 남편 아사달이 탑을 하루빨리 완공하고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지만, 끝내 남편을 만나지 못하고 무영지에 몸을 던진다는 슬픈 전설과 선화공주와 서동의 인연 때문일까? 경주시와 익산시는 자매결연 도시이다. -불꽃이 이리 튀고 돌조각이 저리 튀고, -임의 손 간 데마다 돌옷은 새로 피고-, 초정草丁 김상옥 선생의 시조「다보탑」의 한 구절처럼 석공의 섬세한 손길을 떠올리게 한다. 익산은 돌이 별처럼 빛나는 돌의 도시(stone city)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 게요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가람 이병기 선생의 「별」전문. 1973년 익산시 여산 남초등학교에 시비와 흉상이 건립되었고, 작품 「별」이 새겨져 있다. '왕궁리5층석탑'이 조명 아래 별처럼 눈부신 밤. 벚꽃잎 꽃비 되어 내리는 탑 언저리를 달구벌 나그네는 하염없이 서성인다. 나 홀로 빛나는 탑은 하늘 아래 표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