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에 북천에는 첫서리가 내렸습니다.
초록잎에 보랏빛이 감돌던 고구마 줄기가 순식간에 까맣게 시들었더군요.
차를 타고 오고갈때마다 눈길이 갔는데 서리맞은 고구마줄기를 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생각이 많아 집니다
저 밭 주인장이 언제 고구마를 캘까. 줄기를 걷기 전에 잎따서 반찬하면 좋을낀데.
곧 추워진다는데 도회지 나간 아들 며느리 손을 기다리고 있을까.
식구들이 와서 얼른 캐 갔으면 좋겠는데... 하는 부질없는 염려들로 자꾸 곁눈질을 하게됩니다.
들판의 풍경들이 차창옆으로 휙휙 지날때마다 어릴적 이맘때 기억이 새록새록해서 가을 들판이 묵혀둔 앨범같습니다.
고구마 줄기 걷어서 겨울 먹거리 찬거리 채비를 하던 엄마 생각도 열렸다 닫힙니다.
일을 거들어준다는 게 오히려 엄마를 귀찮게 하는 짓이 되어 고구마 밭에서 쫒겨났던 생각도 나고, 일이 반도 못되어
선하품을 해대며 집에는 언제 갈거냐고 투정부리다가 엄마가 벗어놓은 옷가지를 뭉쳐 안고 아무렇게나 잠들기도 했던
기억. 길섶에 쭈그리고 앉아 갱조개 껍데기랑 풀잎이랑 잔돌맹이들을 줏어다가 반주깨비 살던 생각도 납니다.
엄마의 들일은 왜그렇게 더디고 지겹기만 했는지 어둑해진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전등 스위치부터 누르고
이불밑에 발을 묻고서 듣는 밖의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소리였습니다.
그 어떤 것도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수돗가에서 바가지로 물퍼는 소리 쌀 씻는 소리 솥뚜껑 여닫는 소리를 들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던 그때.
그 소리 그 냄새 그 빛깔들이 가슬바람에 같이 묻어 와 있습니다.
지금 이곳 북천면 직전리 14-28번지 ,
어느집에선가 깻단을 털었는지 고소한 들깨 냄새로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