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국주의 망령’ 절대 안 된다!
<관부연락선>-이병주, 한길사
일본의 대북 선제공격론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늘 시비 걸고 쌈질만 하고 다녔던 녀석이 슬그머니 몽둥이를 꼬나들면서, “시비 걸려는 게 아녀. 방어만 할껴” 하는 격이다. 각목에 야구방망이, 쌍절곤에 체인, 도끼, 회칼까지 들고선 “저 새끼 인상이 날 공격할 것 같아서 불안해. 내가 먼저 패도 괜찮다고 해줘” 이런 꼴이다.
언젠가 일제강점기 사진전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중 한 장은 아직도 선명하게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다. 어린 일본 병사가 해맑게 웃으며 포즈를 취한 것이었다. 왼손에는 죽은 독립군의 머리를 들고, 오른손에 든 칼로는 쓰러진 독립군의 배를 찌른 채. 요즘 고이즈미 총리와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모습 위로 그 일본 병사의 얼굴이 자꾸만 겹쳐보이는 건 왜일까?
정말 선제공격하겠다는 게 아니라 아베가 차기 총리를 노리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인기를 얻기 위해서든 아니든 해서는 절대 안 되는 말이 있다. “아니 아니, 내가 죽이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냥 사진 찍으려고 그랬던 것 뿐이라니까” 이러면, 이미 죽은 독립군은 어쩌란 말인가.
관부연락선은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던 배다. 하지만 단순한 운송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하나의 상징적 통로”였다. “지배자인 일본인이 한국인을 죄수 취급”하는 데에서 두 나라 사이를 집약적으로 표현해 주었던 것이다. 또 하나,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운항을 시작함으로써 “대륙 경영의 통로” 역할을 했던 것. 스스로 자신을 회색 지식인이라고 칭했던 나림 이병주의 눈에 비친 당시 모습의 일면이다.
당시 진주를 비롯한 지리산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눈에 익은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가령, ‘C시와 N강이 흐르는 C루(樓)와 S대(臺)’가 나오는데 ‘진주시와 남강이 흐르는 촉석루와 서장대’를 지칭한 것이다. 나림 자신이 옛 진주중학을 나왔고 해방 후 진주농대에서 강의한 적도 있어서 그의 작품에 진주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반가운 배경과 달리,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말과 행동에서 보이는 당시 지식인들의 속마음은 실망스럽다. 처절한 민족차별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센징’의 처지에 비관하고, 차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제의 내선일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비굴한 생각, 은연중 배어있는 민족에 대한 모멸감 따위가 그것이다. 그런 그들의 내면세계가 아직도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식민사관으로 고래심줄보다 더 질기게 살아남아 끊임없이 내부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걸 보면, 아, 정말 치가 떨린다.
특히 전쟁에 참여한 일본인 철학교수의 궤변과 변명은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반발해야 하는 체제 속에서 병사로 참전하는 것이 곧 저항의 하나라는 둥, 일본이 착각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전 세계가 착각 속에 빠져 있으니 일본만 탓할 수는 없다는 식이다. 흡사 지금 일본 내 지식인들의 속마음을 보는 듯해서 씁쓸하다.
읽다보면, 왜 문학평론가 임헌영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지금 우리가 일본의 선제공격론을 비롯한 군국주의 망령을 깨부수지 못한다면, 다시 한 번 이 소설 속에 그려진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