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알렉산드리아 / 이병주
나는 눈을 감은 채 염불 외우듯 하는 시의 한 구절이 있다. 한용운선생의 다음과 같은 시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사상, 너는 모를 것이다. 재에서 잿물을 만든다는 사실을. 무엇이든 타면 재가 남는다. 모두들 재가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끝장이라고 생각한 재에서 만든 잿물로써 인간이 입는 옷의 때, 아니 인간의 때를 씻는 것이다. 어떻든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사상엔 구원이 있다.
나의 정신은 이 구원으로 해서 빙화를 면한다. 그러니 걱정할 건 없다. 영하20도는 영하 31도보다는 덜 차다. 설혹 영하 30도가 된다고 하더라도 영하 31도보다는 덜 차가울 것 아닌가. 인간의 극한 상황이란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을 두고는 없다.
아침 세수하러 나가면서 보니 천지는 백설에 뒤덮여 있었다. 높은 담벼락 위에, 띄엄띄엄 배열된 붉은 벽돌의 옥사 위에 앙상한 고목의 가지마다 은빛 눈이 흐뭇했다. 나는 그러한 건물과 수목 사이를 걸어 세면장으로 가면서 오면서 북구라파의 어떤 설국雪國의 어떤 대학의 캠퍼스를 걷고 있는 것 같은 환각을 가져보았다.
그랫는데 지금의 나는 너와 더불어 알렉산드리아에 있다는 환각을 얻으려고 애쓰고 있다. 진짜의 나는 너와 더불어 알렉산드리아에 있고, 여기에 이렇게 웅크리고 있는 나는 나의 그림자, 나의 분신에 불과하다는 환각을 키우려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우, 웃지마라, 고독한 황제는 환각 없인 살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