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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낭독

이병주 소설 <변명> 낭독 / 박순희

작성자진효정|작성시간20.09.10|조회수410 목록 댓글 0



 

변명

이병주

 

이십 년 만에 밝혀진 전몰자 명단을 읽으면서도 나는 그다지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가깝게 6·25동란의 쓰라린 기억이 있었고 이십 년이란 세월이 흐른 탓인지도 몰랐다. 다만 나는 역사를 위한 변명이 가능하자면 이들 전몰자들의, 그 죽음의 의미가 그들의 죽음을 보상할 수 있게 밝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일본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2차대전 중, 동원된 한국인의 수는 22, 그 가운데 22,000명 가량이 전사했다. 그 일부인 2,315명의 명단이 밝혀진 셈인데 그 유골은 일본 후생성 창고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되어 있다고 했다. 그날 나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미군의 특수부대가 6·25 때 전사한 그들 동포의 유골, 또는 시체를 찾기 위해 이 나라 방방곡곡을 헤매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찾은 유골, 또는 시체를 일본 고쿠라, 요코하마 기지로 옮겨가서 정중하게 선별 납관한 뒤 성조기를 둘러 본국으로 송환하는 것이다. 인간을 존중한다는 것은 사자死者까질 존중해야 한다는 정성을 나는 거기서 배웠다. 일본은 십여 년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써서 태평양 전역에 걸쳐 그들 전사자의 유골을 찾았다. 단 한 구의 시체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남방의 정글을 수십 명의 조사원이 헤맸다는 기록을 나는 가지고 있다. 2차대전 때 전몰한 동포의 수는 2만이 넘는다고 하는데 겨우 2천 수백 명의 명단이 밝혀졌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그 유골이 전쟁이 끝나고도 이십 년 동안 일본 후생성 창고에 방치되어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 살아 일제의 무자비한 마수에 번롱당하고, 가혹한 운명 속에 죽어서 이십 년이란 장장한 세월 동안 창고의 먼지를 쓴 채 있어야 하다니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영혼들이다. 예기禮記사이불황死而不荒이란 말이 있는데 이들이야말로 죽어도 죽을 수 없고 죽어 눈을 감을 수 없는 사이불황의 망자들이다 …….”

 

일기는 이 정도로 끝내버렸지만 나의 감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렸다. 나는 다시금 명단 위에 눈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 알듯말듯한 이름들이 시각과 뇌리 사이로 간혹 왕복했기 때문이다.

성명이 있고 본적이 있고 전사한 곳이 적혀 있었는데 성은 일본식이고 이름은 한국식인 것이 눈에 거슬리면서 야릇한 감회를 돋우기도 했다. 그런데 전사한 지명이 다양했다. 가장 빈번히 나타나는 지명이 필리핀과 유황도硫黃島(=이오 섬)였다. 그밖에 영인트라크라바울사이판파라오뉴기니웨이크뉴브리튼인도네시아마카사르발리셀레베스브라운마로에라프솔로몬말레이비스마르크…… 등 태평양 전역의 도서 이름이 차례로 나타나 있었다. 나는 그 인명과 지명들을 읽어내려가며 나도 모르게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느꼈다. 태평양에 점재한 섬마다에 우리 동포의 핏자국이 있다는 느낌, 태평양 바다 깊이 물고기가 뜯어먹다 만 앙상한 뼈다귀가 깔려 있다는 느낌! 나는 선뜻 이러한 대화를 연상해보았다. 그 대화란,

 

이웃집 아저씨는 전쟁터에서 돌아오셨는데 십 년이 넘도록 우리 아버지는 왜 돌아오질 않죠?”

열두세 살 되는 딸의 물음을 받고 어머니는 조용히 말한다.

네 아버지는 태평양 넓은 바다, 그 바다 밑을 걸어서 오시느라고 이렇게 늦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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