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낭송/낭독

이병주소설<바람과 구름과 비>낭독/주경희

작성자진효정|작성시간20.09.10|조회수198 목록 댓글 0



 

이병주 작가님 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 1

제목 : 추상 백운과 더블어

 

 

 

청령(鯖蛉)의 날개에 미끄러지는 햇빛에 추색(秋色)이 있었다.

뒷산에 매미 소리가 아직도 요란했지만, 그 소리엔 이미 쇠락하는 가을의 가락이 물들어 있었다.

 

점각일엽경추漸覺一葉驚秋

잔선조만 殘蟬條晩

소상시서 素商時序

 

(나뭇잎 하나 떨어져 가을을 놀라게 하는데, 아직도 메미 소린 늦게까지

시끄럽기만 하니, 정작 소상 가을이 시작되는가 보다)

 

이렇게 하잘 것 없는 유영柳永의 글귀까지 심상의 표면에 떠오르는 것을 보면, 최천중의 심중은 짐작 할만 했다.

 

양주 매리에서 은거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이미 한 달, 그 나날이 한가 하기에

가을의 도래를 누구보다도 최천중이 먼저 감지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회현동 황 여인 집을 떠나온 그날부터, 최천중은 거의 열흘 동안

사경에서 헤맸다.

 

열흘이 지나자 신열이 풀리고 정신이 회복되긴 했는데, 거의 완치에

가까워 있었던 발바닥이 상처가 급격하게 악화되어 요양 생활을 그냥

계속 해야만 할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처도 아물어 가고, 지팡이를 짚고 산책할 수 있을 만큼

되어 있었다. 최천중이 거처하고 있는 곳은 허윤許允이란 의원이 가지고 있는 산정山亭이었다. 그 산정에서 구철륭의 시중을 받고 요양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칠월에 들어 백낙신이 방면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오만 냥의 돈이 고스란히 최천중의 몫으로 된 셈이다.

만리동 집과의 연락은 평소에 선심을 베풀어두었던 소금장수가 도맡아 하기로 돼 있었고, 회현동 황 여인으로 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와 기타 일용으로 쓸 물건이 보내져 왔다.

 

그런데 가장 궁금한 것은 미원 촌의 일이었다. 지금쯤은 왕씨 부인의 잉태 여부가 완전히 나타났을 것이니, 그 궁금증은 당연했다.

섣불리 누구를 시켜 알아볼 수도 없는 일이니, 좀처럼 빠지지 않는 다리의 부종이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이런 시름을 최천중은 지팡이를 짚고 산책하면서 달랬다. 혈액을 좋게 하기 위해선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것이 좋다는 의원의 권고가 있기도 했다.

산책을 하면 자연 생각나는 글귀가 있다.

 

만래천기호晩來天技好 산보중문전散步中門前이란 백거이의 시다

 

(해질녘 날이 좋아서, 산책 중에 어느, 집 문 앞에 이르렀는데,)

 

그러한 나날의 어느 밤, 최천중은 산정 중허리에 있는 노송아래로 지팡이를

끌고 갔다. 그 밤 따라 만감이 가슴에 벅찼다. 황 여인을 그리는 마음이 그 가운데서도 간절했다. 그는 문득 위응물의 시를 읊었다.

 

회군속추야懷君屬秋夜

산보영량천散步詠凉天

산공송자락山空松子落

유인응미면幽人應未眠

 

(그대 그리운 가을밤, 산책을 하며 서늘한 하늘을 향해 시를 읊는다.

산에 인적이 없고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 숨어 사는 그대도 아직 잠들지 않았을 것이려니.)

 

최천중의 심중에 이 시 마지막의 유인이란 글자가 가인으로

바꿔져 있었다.

가인이란 즉 황봉련!

 

황 여인! 그대도 아직 잠들지 않았겠지,’하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최천중은 발을 걷고 마루로 나갔다.

이제 막 샛문을 들어선 소금장수 양 서방이 벗은 지게를 그늘진 담장에

기대어 놓고 있는 참이었다

그는 한아름 보퉁이를 안고 다가와 그 보퉁이를 축담에 놓고 절을 했다.

최천중은 빨리 마루로 올라오라고 일렀다.

댁내는 두루 무고합니다

마루에 걸터 앉은 소금장수의 첫말이었다.

턱으로 보퉁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뭔가

입성허구, , 유과, 과일입니다

 

그거 잘 가져왔군”,

 

 

최천중은 산정의 주인 허 생원의 손자를 생각하며 말했다

허 생원의 손자는 금년 여덟 살 되는데, 총명하기 짝이 없었다.

구철룡의 글을 가르치기 겸해 그 아이에게도 맹자를 가르치고 있는데,

소재와 이해력이 뛰어났다.

가히 신동이라고 할 만했다

 

그런데 꼭 말씀 드리라는 게 있습니다”.

뭔데?”

 

미원 촌에서 왔다는 고한근이라는 사람이 도사님을 뵈려고 하는데,

이번엔 뵙지 않곤 돌아갈 수가 없다면서 삼개 여사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옵데요”.

 

최천중은 가슴이 뜨끔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