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키워내는 인간적인 교사로 남고 싶다
「교사와 학생사이」를 읽고
지은이 : 하임 기너트
옮긴이 : 김순희
펴낸곳 : 종로서적
펴낸날 : 1980년 12월 30일
읽은날 : 2004년 4월 10일 ~ 5월 18일
전부터 집에 있던 책이었는데 한겨레 신문사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아주 잘해주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손에 든 책이다. 나도 참 이상하다. 아니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냥 책꽂이에 있으면 별 가치없는 책이고 매스컴에 한번 오르면 대단한 책이라 생가하는 그런 편견 말이다. 생떽쥐베리가 어린 왕자에서 정장을 입고 강의하는 사람과 허름한 옷을 입고 강의하는 사람을 놓고 그 전하는 내용보다는 단지 옷으로 판단하는 청중을 비판했는데, 바로 내가 그 꼴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로 읽은 책이지만 교사로서 아이들과 관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소중한 것들을 많이 담고 있었다. 교사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다른 책과는 달리 내가 교사로서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에 대해서는 표시를 해가면서 읽어서 그런 말들을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우선은 “교사들이 말하는 교사”에서는 간단한 토론상황을 설정하여 대화식으로 생각을 전개했다. 교사직에 대한 흥분과 기대감으로 시작한 사람들이 교육제도와 정체된 틀 속에서 좌절과 절망을 겪게 된 얘기에서부터 처음부터 교직에 대한 희망이 없이 시작한 사람들, 나름대로 뭔가 희망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얘기들이 오갔다. 그 얘기들을 읽으면서 “애정어린 위엄은 힘에 근거를 둔 위엄보다 더 큰 위력이 있다”라는 말에 소중한 의미를 느꼈다. 교직에 많은 절망을 하는 교사들의 대화를 주욱 늘어놓고서 지은이는 이런 절망으로 이끌어가는 교육제도를 변혁시켜야 하지만, 그 때까지 작지만, 소중한 공간인 교실을 이끌어가는 교사로서 우리가 해야할 일들에 대해서 이 책을 쓴다고 하였다.
두 번째 장 “최선의 해결책”에서는 이론과 실제를 논하면서 역시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노련한 솜씨를 발휘하는 태도라고 한다. 우리는 훌륭한 교육이론을 알고 있고 사랑, 포용성, 아이들의 독특한 개성 등에 대한 이론을 잘 안다고 할지라도 이런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개념들이 현장에서는 그리 긴하게 사용되지는 않는다고 비판한다. 즉 수천달러짜리 수표가 커피 한 잔 마시는 데나 택시를 타거나 전화 한 통화하는 데 전혀 소용이 없듯이 말이다. 맡은 학급을 잘 이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사소한 심리적인 면, 사소한 다툼, 갑작스런 사건 등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특별한 솜씨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실제 효과적으로 학급을 잘 이끌고 개개인을 잘 대하는 교사들의 사례를 들고 있다.
불평하며 우는 아이에게 짧은 위로의 편지를 써주거나 동정적인 대화와 관심,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여 아이들을 힘들게 하기보다는 아이의 자리에서 간단한 배려를 해주는 재치,
교사를 비꼬는 그림을 칠판 위에 그린 아이를 보고서는 “어찌나 잘 그렸는지 그냥 지우기 아까우니 종이 위에 옮겨주겠니?”하면서 보이는 여유,
어떤 사건에 대해 또는 울고 있거나 화가 단단히 나있는 아이에게 그 원인을 꼬치꼬치 캐묻기보다는-주로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인데- 당장 필요한 위로를 해주거나 그 아이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대화를 해나가는 현실적이고 원만한 문제처리방법 등이다.
나는 아이들이 싸움을 하는 데 대해서는 정말 엄청나게 화를 낸다. 속에서 끌어오르는 화를 참기가 무척이나 쉽지 않다. 그런데 이 부분은 너무나 단순하게 현실적인, 그러니까 아이들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그 아이가 되어서 이해해보라는 말로써 해결책을 제시한다. 내가 무던히도 넘어가야할 산이지 싶다.
세 번째 장 “최악의 사태”에서 지은이는 “교사는 억압 밑에서도 우아함을 보여주며, 사려깊은 반응을 보인다. 결코 충동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는 갖가지 상황에서 교사가 적합하지 못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야기되는 불상사들을 우선 제시하고 있다.
“너는 천성적으로 느림보냐? 네 자리로 가서 앉는 데 무슨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니?”,
“뭘 꾸물대는 거지? 좋아하는 것을 말하면 되쟎아?”
“너는 내가 설명하는 동안에 어디 가 있었니? 전혀 듣지 않은 모양이구나. 언제나 장난만 치니까 그렇지. 이제 와서 한 번 더 설명해달라는 말이냐?”,
“너는 게으르고 책임감도 없는 아이야”,
이렇게 비꼬고 빈정대며 모욕감을 주는 말들이나 아이들 앞에 세워놓고 큰 소리로 오랫동안 수다스럽게 일러주는 교훈들, 이 글에서도 제기되고 요즘 자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교사들의 폭행, 폭언 등에서 아이들은 복수심을 위한 칼을 간다는 섬득한 말로 경고하고 있다. 교사들 몰래 말이다. 아이들이 그런다지만 지은이는 사실은 교사들의 태도와 말과 행동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복수심을 경감시키는 것은 교육적인 관심사라고 말한다. 다른 어떤 것이 아닌, 교육적인 관심사말이다.
네 번째 장 “적합한 대화: 교사와 학생과의 의사소통”에서는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하기보다는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는 말로 시작한다. 여기서는 내가 많은 것을,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많이 고쳐야할 부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선 정성을 다해 가르치는 교사들은 아이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려고 하지만 사태를 악화시키는 교사들은 학생들의 성격과 인격을 판단하려 한다고 비판하며 그것을 효과적인 대화와 비효과적인 대화의 본질적인 차이라고 말한다. 즉 교사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과 이야기해야지 개성이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사들이 화를 내는 것에 죄의식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교사는 아무리 유능하다 하더라도 자학자나 순교자, 천사가 아니기에 자신이 갖는 감정을 숨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능한 교사는 화내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학생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안다고 한다. 보통 교육학에서 얘기되는 “나-전달법(I-message)”를 말하는 것 같다. 화는 내되 모욕적인 언사를 피하는 것이 교사의 자세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학교를 왜곡된 감수성을 지닌 교사들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교사들로 가득찬 실생활의 복사판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한다고 한다.
이 장에 제시한 사례와 제언들은 아무리 어린 아이들일지라도 아이들에게서 협력을 구해내고 그들이 스스로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라는 것이다. 또한 결코 빈정대거나 모욕적인 말을 하지 않으며 아이의 생각이나 지각능력을 무시하지 않고 그들의 소망과 꿈을 좌절시키지 말며 성격을 손상시키지 말라는, 너무나 당연한 말들로 이어져있다. 하지만, 나의 모습은 너무나 이 말들과는 멀게만 느껴진다.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이런 생각과 행동에 맞추어 해보려고 했지만, 오늘 아니 최근에는 영 딴 사람이 됐다. 이런 지은이의 생각과는 무관한 사람말이다. 특히 지은이는 아이들의 꿈이나 미래에 대한 불길한 예측은 절대 금기라고 한다. 교사의 이같은 한마디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심리적인 균열을 초래하며 지층에 단층이 생기듯 아이들에게 재난을 가져오는 결과가 된다. 아이의 꿈을 깨며 상상의 날개를 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어른의 역할이 아니다.
아이가 교사에게 들고 오는 문제에 대해 교사는 성급하게 도와주기보다는 그 문제를 귀담아 들은 후 학생 스스로가 쉽고도 명확하게 그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하여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신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로써 아이는 스스로 해답을 찾게 되며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신뢰감을 가질 수 있다. 아이가 잘 못했을 때 지루할 정도로 길게 잘못한 것을 말하며 공부를 방해할 정도로 야단을 치기보다는 간단하게 요점만 말하고 넘어갈 수 있다. 사실 이건 그렇다. 나도 똑같은 사건을 두고서 어느 때는 간단하게 해결하고 넘어가지만, 어느 때는 너무 오랫동안 붙잡아놓고 수업에는 안중에 없는 사람처럼 길게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돌아보면 그때 아이들은 내 말을 듣고 있을까 하는 데는 의문이다. 물론 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말이라 생각하며 열변을 토하는 때도 있지만 말이다.
여기서 지은이는 교사를 아이의 입을 빌어 약간 비꼬는 투로 한마디 던진다.
“방과 후에 선생님을 만나서 개인적으로 얘기를 하면 깜짝 놀라곤 해요. 왜냐하면 인간적으로 대해주니 말이에요. 그러나 교실에서는 마치 로버트처럼 무표정하게 걸어다니며 무슨 잘못이라도 하지 않나 하고 눈을 두리번거려요. D 선생님만은 예외죠. 그분은 교단에 서 있을 때도 인간이거든요.”
참 슬프다.
다섯 번째 장 “위험스러운 칭찬”은 간단하게 정리되지 싶다. 아이를 칭찬할 때는 그저 “잘했다, 착하다, 대단하다, 장하다, 좋다, 훌륭하다”하는 등의 판단하는 칭찬이 아닌 그 아이가 행한 그 일의 상태나 결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칭찬을 하라는 것이다.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 시를 썼구나, 재미있게 말하는 걸, 너는 노래를 즐겁게 부르는구나”라는 식으로 해당되는 행동에 대해서만 말하라는 것이다. 만일 판단하는 칭찬을 하게되면 그 아이는 마약중독자처럼 늘 그런 ‘착한 아이’라는 칭찬에 중독된 아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자신이 하는 그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받을까만 생각하는 ‘칭찬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비교하거나 겉치레로 하는 칭찬보다는 정말 고마움에 찬 칭찬을 해야 한다. 비교는 또 다른 비교를 불러와서 늘 다른 사람을 경쟁자로만 생각하여 자신이 못하면 자기도 비교대상이 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게 되며 겉치레 또는 터무니없는 칭찬은 아이들이 자학과 자조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칭찬을 할 때 단순하게 “이랬다 저랬다”하기보다는 좀 창의적인 칭찬, 재치있는 칭찬, 그리고 약간은 문학적인 말들을 사용하여 칭찬하라고 충고한다. 시를 잘 쓴 친구에게 펜클럽 회원후보에 올린다느니, 잘 쓴 글을 신문에 실어도 된다느니 하는 말들 말이다.
여섯 번째 장 “훈육: 어떻게 해야 하나?”는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내용이다. 지은이는 훈육의 기본적인 것으로 벌을 주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라 한다. 학생에게 벌을 주는 것은 그들의 격분을 사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비교육적이라는 것이다. 벌을 받으면 학생들은 적개심을 품고, 원한을 가지고 복수심에 불타고 분노에 가득차서 공부는 뒷전에 놓는다. 그래서 훈계를 할 때는 미움을 사는 일을 피하며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한다. 훈육은 아이에게 큰 해를 끼칠 수도 있고 훌륭한 교육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내게 너무나 부족한 것을 지은이는 꼬집는다. 교사는 불쑥 화를 내거나 모욕을 주어서도 안 되며 독설적인 언사를 쓰지 않는 자제력이 휼륭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한 교사가 하는 말을 싣고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는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조용히 하라고 하면서 고함을 치며 싸움을 말리기 위해 폭력을 쓰며 예의없는 녀석은 거칠게 다루며 나쁜 말을 하는 녀석을 호되게 꾸짖는다는 역설적인 사실입니다.”
정말 맞다. 이 글을 읽으면서 너무나 나를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사실에 놀랐다. 바로 나다. 교사의 도덕적 권위를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훈육방법이 괴이하거나 태도를 바로 잡아주려는 행동이 잔인해서도 안 된다. 학생이 훈계를 무시하고 도전해 온다 하더라도 연민의 정으로 대해 주어야 한다고 한다. 마치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왼쪽 뺨도 돌려대라는 예수님의 말씀 같다. 너무나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교사인 나를 무시하는 말을 하거나 흘기는 눈짓이나 태도에 나는 너무나 화가 치밀어 어찌할 바를 몰라 정신이 없다. 예전에는 주먹으로 칠판을 쳤던 적도 몇 번 있었다. 지은이는 학생을 훈계할 때 교사가 기분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특히나 개인적인 보복감정은 아이에게 복수심만 남게 하는 것이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 교사인 내가 넘어가야 할 또 하나의 산이다.
훈육은 교사의 관용에 있는 것이지 잘 잘못을 가리는 정확성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교사의 권위는 학생을 다루는 유능한 솜씨와 잘 설복시킬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학생을 폭력으로부터 신뢰로 이끄는 교사가 훌륭한 교육자라고 한다.
비행과 처벌은 서로를 상쇄시킬 수 있는 반대의 성질이 아니라 오히려 비행이 늘면 처벌도 늘고 처벌이 늘면 비행도 잦아지는 상관관계에 있다. 따라서 벌은 비행의 수법이 더 교묘하게 하는 원인제공이 될 수도 있다. 엊그제 한 아이가 내 앞에서 바로 밝혀질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서는 아주 뼈저리게 느꼈다. 지은이는 학생들이 벌을 받으면서 ‘이제는 하지 말아야지 좀더 착한 사람이 되어야지’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데서 벌은 무익하다고까지 말한다. 아이들은 벌이 자신들을 이롭게 하기보다는 벌을 주고 싶은 어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살인죄를 선고받은 사형수를 보고 그 아버지가 “그 애가 잘못하면 늘 종아리를 때리곤 했는데...”했다는 것이다. 누가 한지 모르는 잘못에 대해 듣고 있는 그 누군가에게 악담을 하고 빈정대며 욕을 하고 결국 단체기합을 주는 모습을 비판하는 데서 나는 아픔을 느낀다. 나 자신에 대한. 그는 간단한 재치로 넘길 수도 있는 일들을 교사가 오히려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학급운영에서 벌은 참 편리하다. 벌이 어떤 상황, 어떤 아이에게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은이는 간단하게 쪽지를 보낸다든지 재치있게 넘긴다든지 사소한 것은 무시한다든지 간단한 말로 혼낸다든지 글로 쓰게한다든지 하는 여러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관건은 얼마나 교사가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가 하는 것과 현실적인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만의 방법을 강구해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동료교사들에게서 조언을 구하는 것도 필요하지 싶다.
일곱 번째 장 “교사와 학생 사이에 충돌이 생겼을 때 부모의 역할”에서는 교사인 내게는 그리 필요없지 싶지만, 나 또한 학부모이기에 또한 교사로서 부모와 상담할 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가 집에 와서 학교에서 당한 부당한 행위나 불만족스런 일들을 토로할 때 부모가 거기에 그냥 동하여 함께 불만에 가득차기보다는 우선 아이의 마음상태를 인정하고 동의하며 그 아이가 스스로 화를 풀어가도록 유도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편지를 사용하여 교사나 학교 당국에 사실 확인과 잘못된 것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교사나 학교당국의 잘못을 시정하려는 접근보다는 고발이라는 감정적인 접근이 사용되기도 하여 예전과는 달리 인간적인 관계가 많이 없어진 듯하다. 어찌보면 사회가 황폐해져가고 있는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교단에 있으면서 교사와 아이들 외에 학부모는 교육을 이루어가는 데 아주 중요한 한 축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기에 집에서 부모가 어떻게 아이들을 대하고 어떤 교육관을 가지고 아이들을 양육하는지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여덟 번째 장 “숙제: 교사와 부모와 학생과의 관계”는 숙제를 내주는 교사와 숙제를 해야하는 학생, 그리고 학생의 숙제를 돕는 부모로 그 역할이 규정된 상황에서 특히나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아이가 성숙하게 자라려면 자신이 자치권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임을 깨달아야 한다. 즉 부모는 아이에게 삶의 중대한 문제에 대한 선택권을 주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숙제와의 관계에서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간접적인 도움을 주어야 하며 아이가 숙제로 인해 화가 나 있을 때는 우선을 화를 가라앉혀야 한다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수영을 가르칠 수 없는 것과 같이.
아홉 번째 장 “동기유발에 관하여”에서는 아이들은 벌이나 공포심, 지능에 대한 모욕이나 허무맹랑한 말로 제시되는 동기유발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솔직하면서도 적절한 지시를 통한 동기유발이 났다. 불난 집에 자고 있는 사람을 구하는 방법은 그를 깨우는 것이다. 아이를 깨우면 그 아이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싫증을 내거나 잠을 자는 아이에게는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 교사는 아이들의 능력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끝으로 지은이가 맺는말로 제시한 것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그대로 옮겨 적는다.
존경하는 선생님들께
나는 집단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 곳에서 나는 어느 누구도 감히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목격했습니다.
훌륭한 기술을 익힌 엔지니어들에 의해서 조성된 가스실,
교육받는 의사들에 의해 질식되어 죽어간 어린아이들,
훈련된 간호원에 의해 살해된 유아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총을 맞고 불타 죽은 부인과 어린아이들,
나는 이 모든 참상을 목격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깊은 회의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에 대한 요구가 있다면, 그것을 학생들을 인간이 되도록 도와주자는 것과 여러분들의 노력이 교육받은 괴물들이나 아이히만과 같은 살인귀를 배출해 내는 것이 되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읽기, 쓰기, 산수 들은 다 중요한 학습과정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을 더 인간답게 키우는 데 도움이 될 때에만, 그것들은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기보다는 하나, 아이들을 인간으로 키워가고 나 또한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이들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로 서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이 또한 너무나 우리의 교육현실과 동떨어져서 제기된 내용이라 더욱 힘들다. 그래도 개혁이 일어나 적합한 교육환경과 제도가 자리잡기 전까지는 교실은 우리의 노력을 요구한다. 무척이나 힘들고 어쩌면 지루한 노력들을 말이다.
아이들은 내게 행복한 웃음을, 삶의 의미를 던져주는데,
나는 아이들을 인간으로 키우고 싶은데,
오늘도 나는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비인간적인 교사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