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
지은이 : 이오덕
펴낸곳 : 삼인
펴낸날 : 2005.11.25
읽은날 : 2007. 7.1 ~ 7.29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글쓰기 교육에 대해서는 몇권 읽었었지만 이렇게 교육에 대한 생각을 읽은 것은 처음이지 싶다. 책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것은 역시 그분의 겸손이다. 늘 그렇듯이 무언가 배움을 얻고 싶은 분들은 자신이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하시고 별 배울 것도 없는 사람들은 늘 가르치려고 한다.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말이다.
이 글들은 이오덕 선생님이 책으로 내시려고 묶어 두셨던 것을 돌아가신 후에 한분(최종규)이 정리를 맡아 하신 것이다. 글 하나하나에 그분이 가지고 계셨던 교육에 대한 생각들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이 책은 일곱 개의 장으로 나눠져 있다. 하나 하나 제목만 살펴봐도 그 내용을 어림잡을 수 있다.
하나. 삶을 등진 교육.
둘. 아이들을 믿어야 하는 선생님.
셋. 부모님보다 더 훌륭한 선생님은 없다.
넷. 아이들을 죽이는 어른들의 나라.
다섯. 아이들한테 배우지 못하면.
여섯.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
일곱. 아이들 살리자는 운동이 없다.
이 제목들이 이오덕 선생님이 주장하는 교육의 모습이다. 지난 한주간 1정 연수를 받으면서 늘 느꼈던 것들, 지난 몇 년간 교육 현장에서 있으며 가졌던 생각들과 너무나 비슷하다. 아이들에게서 아이들로서 삶을 빼앗아간 지 오래다. 우리 어른들이 말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로 해서 아이들의 현재를 다 빼앗아 가고 있다. 아이들은 그렇게 늘 현재를 빼앗기며 살아가고 있다. 담보되는 ‘미래’는 늘 오지 않는 현재로 남아있다. 아이들은 그렇게 환상 속에 살아가고 있고 그런 아이들을 몰아가는 어른들 또한 언론과 한국 사회 주류집단의 획책 속에 놀아나고 있다. 그렇게 어른들은 아이들의 숨통을 조여가고 있다. 여기 저기서 아이들이 자살하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자기 아이만 아니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 자살할 생각이 있으면 그 힘으로 죽자살자 공부를 하지’ 그런다. 단지 요즘 아이들은 끈기도 없고 패기도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다시 자기 아이들에게로 돌아온다. 아이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현실에 대해서는 그냥 ‘어쩔 수 없다’는 한마디로 끝난다. ‘자기만 힘든 것이 아닌데... 남들도 다 하는데... 왜 그 애만 그런 선택을 했느냐...’ 과연 자신의 아이와 관계있는 일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어쨌든 사회는 이렇게 무관심 속에서 아이들의 삶이 사라져가고 있다.
‘오늘’이라고 하는 삶을 늘 빼앗기며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늘 재능교육이요 기술교육이요 경쟁력만을 키워가는 교육에 지나지 않는다. ‘삶을 등진 교육’이 그것이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어떤 삶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이들에게 진실한 삶이요 행복한 삶인지에 대해서는 그냥 스쳐지나간다.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이 판치는 정글사회에서 패배주의적 감상에 젖어있는 한심한 사람으로밖에는 보지 않는다.
1정 연수를 받으면서 과연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나 어느 정도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 현장에 있는지 모르겠다. 늘 가르치는 자로 아이들 앞에 서는 교사들이 연수를 받는 동안은 학생이다. 그런데, 정말이지 아이들이 없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돌아보고 아이들에게 진실한 삶을 돌려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없다. 진도빼기에 바쁘고 시험문제 알아가기에 정신이 없다. 진실한 논의도 없다.
아이들에게 뭘 잘하고 못하고에 앞서 먼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고 싶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기에만 급급한 사회에서 이런 길을 가르쳐준다는 것이 공허한 메아리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도 원하지 않고 학부모도 원하지 않는 그런 가르침을 해야만 하는, 어쩌면 어리석게만 보여지는 그런 가르침. ‘부모보다 훌륭한 선생님은 없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아이교육은 철저하게 부모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부모들은 혼란 속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하는 것을 말이다. 사회 주류가 만들어놓은 미래의 환상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는 그런 환상의 사회 속에서 ‘우리 아이’가, 더 직접적으로는 ‘내 아이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 하는 고민을 우선적으로 한다.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니면 “나도 이런 사회가 싫으니 누가 좀 바꿔놓으면 좋겠다”하고 말이다. 그래서 돈이 좀 되면, 돈이 좀 안되면 억지로라도 구해서 아이들을 외국으로, 대부분은 미국으로 보내려고 한다. 아니 가족 전체가 그리로 떠나기도 한다. 회피, 도피하는 것이지만 그런 그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들의 책임만은 아니기 때문에.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아이들로서 삶을 돌려주고, 아이들에게 삶다운 삶을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것이 교육이다. 그것이 먼저 삶을 살아가는 자(先生)로서 마땅히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