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시대나 그 이전부터 돌과 같은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경기가 있었다. 한편 중세에 접어들면서 독일에는 힘 자랑으로 돌던지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돌던지기나 돌들어올리기와 같은 경기는 힘겨루기 방법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근대적인 역도 경기가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부터이다. 그 이전인 영국 엘리자베스 왕조 시대에 덤벨을 사용하는 운동경기가 있었다고 하나 이와 같은 운동이 확실하게 자리잡게 된 것은 독일의 구츠무츠나 얀에 의해서였다. 얀의 제자 아이젤렌에 의하여 덤벨 운동의 지도서가 만들어졌다.
1869년 제 1회 올림픽 대회에서는 역도가 체조의 한 부분으로 다루어졌는데 그 종목은 한손에 의한 저크와 두손에 의한 저크가 있었을 뿐이다. 또한 현재와 같은 체급도 없었다. 1920년 제 7회 올림픽 대회부터 독립된 경기로 인정을 받았으며 이때에는 5개체급으로 나누어 체중별로 경기를 하게 되었다. 드디어 1928년 제 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부터 양 손에 의한 프레스(추상), 스내치(인상), 저크(용상)의 세 종목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추상 종목은 1973년부터 폐지되었다.
현재와 같은 역도가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28년 역기라는 칭호를 가지게 된 후이다. 1936년에는 조선 역기 연맹이 조직되었으며 1946년 해방 후 조선 역도 연맹이 발족되었고 다음해인 1947년에 우리나라 역도 사상 최초로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올림픽에서 한국선수가 처음 출전한 것은 15회 헬싱키 대회 때이며 이때 김성집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역도경기가 근대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에 들어와서 부터이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드 시대에 덤벨에 의한 운동이 행해졌다고 하는데 이것을 확립시킨 것이 구츠무츠(1749∼1839)의 청년체조라든지 야안의 제자인 아이제렌(1739∼1848)에 의하여 1833년에 「덤벨체조소서 」가 공포된 이후부터라고 한다.
1890년대를 전후해서 무거운 덤벨이나 바벨에 의한 역도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유럽이나 미국에 서는 많은 역사들이 서커스나 뮤직홀 등의 무대를 장식했다고 한다. 1896년 제 1회 아테네 올림픽경기에서는 체조의 한 종목으로 운동장 중앙의 모래 바닥에서 경기가 거행되었다. 이때는 체중에 의한 체급 분류는 없고 종목은 한 손에 의한 용상과 두손에 의한 용상의 2종목이 실시되었다. 이때의 경기는 고정된 덤벨에 의한 들기였으므로 중량이 제한되어 횟수등에 의해 승부를 결정 하였다. 제 7회 앤트 워프 올림픽(1920)에서는 으늘날과 같이 중량의 조절이 가능한 바를 사용하였으며 체급을 5체급(60kg, 67.5kg, 75kg, 82.5kg, 82.5kg 이상)으로 분리 실시하여 한 손으로 하는 인상이 추가되었다.
제 8회 파리 올림픽에스는 7회 대회의 3종목 이외에 두 손으로 하는 추상과 두 손에 의한 인상 을 추가해 5종목으로 역대 대회중 가장 많은 종목을 실시하였으며, 9회 암스테르담대회(1928)에서 한 손에 의한 인상·용상이 제외되고, 1972년 뮌헨대회이후로 I. W. F는 추상 종목을 제외시켜 인 상, 용상 합계에 의해서만 메달을 수여키로 하고 I. O. C에 인가를 요청하였다. 제 21회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1976) 불가리아, 체코, 미국, 폴란드, 루마니아, 스웨덴 선수들의 약물 복용으로 자격이 정지되었다.
체급은 1948년 제 14회 런던 올림픽대회를 계기로 5체급에서 6체급, 7체급, 9체급으로 점차 세 분되어 오다가 1980년 제 22회 모스크바 올림픽대회부터 10체급으로 실시되어 오고 있다. 제 22회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에 대한 미국 등 동조세력의 불참으로 소련 연방세력만 참여하는 반쪽대회가 되었고, 제 23회 로스엔젤레스는(1984) 소련의 보복 불참으 로 역도 강국인 동구권 선수들이 불참하여 역시 반쪽 대회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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